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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볼라벤 경로 조작"... 기상청 "있을 수 없다"

태풍 중심위치 '논란'... 일본 기상청 "한국 판단 우리와 다를 수 있다"

등록|2012.08.30 12:22 수정|2012.08.30 13:28

▲ 지난 27일 오후 11시 45분 현재 천리안 위성이 찍은 태풍 볼라벤 영상 ⓒ 기상청


지난 28일 전국을 긴장케 했던 15호 태풍 '볼라벤'의 이동경로를 놓고 <조선일보>가 기상청의 조작의혹을 제기했다. 이 신문은 30일 익명의 기상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진로를 맞추려는 과도한 부담감이 작용해 당초 틀린 예보를 끝까지 고수했다"며 "28일 오후에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하자 기상청이 예보 정확도에 그만큼 더 민감해졌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예보된 이동경로와 다르게 태풍이 움직였지만 기상청이 억지로 이를 맞췄다는 주장이다.

기상청은 강하게 반발했다. 기상청은 곧장 반박자료를 내 "전문가들이 상호 협의를 거친 분석결과는 홈페이지와 각종 정보를 통해 공개된다"며 "국제적으로도 실시간 공유되는 만큼 자료의 조작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대통령의 방문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국가기상업무는 과학과 전문성에 기반을 둔 업무로서, 대외 여건과 태풍 분석업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태풍 관련 전문가들과의 공개 토론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볼라벤이 올해 발생한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으로 기록됐지만 당초 예상했던 것과 달리 서해상을 따라 북상하며 세력이 약해져 서울과 수도권에 미친 영향은 미비했다. 이에 태풍의 위력이 과장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있는 가운데 이번 기상청의 조작 의혹은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논란의 가장 핵심쟁점은 태풍이 지나 간 이후 발표하는 실제 진로의 판단과 외부 작용에 따른 조작 가능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 "MB 방문에 민감했을 수도"...기상청 "전문가 공개토론하자"

▲ 30일자 <조선일보> 보도 화면 ⓒ

<조선일보>는 이날 보도에서 "조작 의혹은 28일 서해에서 북상 중이던 태풍 볼라벤의 진로에 대해 세계 유수 기상 기관들과는 달리 한국 기상청만 유독 다른 결과를 발표한 데서 비롯됐다"며 "(태풍의 위치가)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와 일본기상청(JMA) 발표보다 경도 0.8~1.1도(약 90~120㎞)나 차이가 났다"고 지적했다. 기상청은 당시 "오전 9시,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9시 볼라벤의 위치가 각각 경도 125.6도 상에 있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익명의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세계기상기구(WMO)와 중국·홍콩 기상청 등의 발표도 미국·일본과 비슷했다"면서 "태풍 진로에 대한 예보는 나라마다 차이가 클 수 있지만 태풍이 지나간 뒤에 발표하는 실제 진로가 경도 1도씩이나 차이 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성·레이더 영상 자료와 함께 태풍의 중심 위치를 결정할 때 활용되는 '국지 분석 일기도'를 보면 조작 의혹이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기상청 슈퍼컴퓨터가 생산한 이 일기도 상의 태풍의 중심은 미국·일본의 발표 내용과 거의 동일한 곳에 있다는 주장이다. 국지분석일기도는 기상청 슈퍼컴퓨터가 계산하는 수치예보모델 예측장과 현재의 관측자료를 합해 만들어지는 일기도다. 당시 국지분석일기도에서 태풍의 위치는 기상청이 제기한 위치(북한의 옹진반도 부근)보다 서쪽에 있었다. 이 차이가 기상청이 태풍의 위치를 조작했다는 결정적 근거라는 주장이다.

이 신문은 또 다른 익명의 전문가의 입을 빌려 "태풍 예보와 실제 진로를 맞추려는 과도한 부담감이 작용해 당초 틀린 예보를 끝까지 고수하면서 이런 사태가 빚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28일 오후에 이명박 대통령이 기상청을 방문하자 기상청이 예보 정확도에 그만큼 더 민감해졌을 수도 있다"고 조작 의혹의 배경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기상청을 방문해 "국민생활, 경제활동과 밀접한 기상관측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신문은 "기상청의 조작 의혹이 일부분이라도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라며 "무엇보다 국가 기상기관이 발표하는 기상정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깊어지게 되고, 천리안 위성 발사 등을 통해 쌓아올린 우리나라 기상청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가 추락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기상청 "위성분석은 오차가 따른다"

▲ 28일 오전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거센 파도가 몰아쳐 통행이 금지된 해운대 마린시티. 피서객들과 차가 사라진 해안도로가 을씨년스럽다. ⓒ 정민규


기상청은 이에 대해 "가용한 자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태풍의 중심 위치를 판정하고 있다"며 "태풍의 세력이 많이 약화돼 위성영상의 구름의 형태를 주로 분석해 중심위치를 판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성분석을 통해 추정한 태풍 중심 위치분석에는 오차가 따르며, 태풍의 강도가 약할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다"며 "미국에서도 위성분석으로 추정한 허리케인(태풍의 일종)에 대한 중심 위치오차가 100km를 상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국지분석일기도상 태풍의 위치와 기상청의 발표가 차이나는 것과 관련해 "국지분석일기도가 실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국지분석일기도는 슈퍼컴에서 계산되는 수치예보모델과 현재 관측 자료를 합해서 만들어지는 일기도여서 수치예보모델에 절대적으로 의존적"이라고 밝혔다. 태풍의 경로를 모의로 예측하는 수치예보모델이 실제 경로보다 서쪽으로 예측해 이 모델을 바탕으로 분석하는 국지분석일기도 또한 실제 경로보다 서쪽으로 태풍의 경로를 표시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기사에서 인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지일기도는 일본기상청에서 판정한 중심 위치정보를 이용하여 분석된 것으로, 일본기상청의 경로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일본기상청과 우리청의 위치 정보가 상이해진 것은 오후 3시 태풍 위치"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본은 매 3시간, 미국 JTWC는 매 6시간 중심 위치를 분석하고 있는데 반하여, 기상청은 1시간마다 중심위치를 분석해야 하므로, 중심위치 정보는 속보의 성격이 강하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기상청 태평양태풍센터 관계자는 3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바다 위에 있는 태풍의 위치를 정확히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관측이 빗나갈 수도 있다"며 "(한국 기상청의 태풍 위치 판단은) 일본 기상센터에서 낸 자문자료를 한국이 참고해 관측 판단하는 것이므로 (일본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 기상 관측 기관과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기상청의 해명과 일치하는 설명이다.

반면, 같은 날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기상학계 관계자는 한국 기상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조작 가능성이 터무니 없는 소리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은 그것(태풍)만 하는 사람들이고 기술에서 앞서 (한국보다)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상청이 지금까지 태풍예보를 독점해 왔기 때문에 이럴 때 자기들 발표를 우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나 일본처럼 민간 기상예보관들이 발표할 수 있다면 이런 의혹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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