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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들이 왜 감자탕집에?

우연히 만난 두 편의 시화... 소중히 간수해줘 고맙습니다

등록|2012.09.03 08:32 수정|2012.09.0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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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에 비교적 자주 가는 편이다. 일반 서신들이야 이메일 전송으로 처리하거나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해결하니, 편지 부치는 일로 우체국에 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자주 가는 것은 책을 부치는 일, '키피어(일명 티벳버섯)'을 분양해주는 일, 또는 금융 관련 일 때문이다.

우체국 직원들과는 친숙하게 지낸다. 창구 직원이 바뀌어도 금세 친해진다. 내가 붙임성이 좀 있는 성품인데다가, 너울가지를 잘 활용하는 것도 세상을 좀 더 재미있게 사는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을 노상 한다.  

며칠 전 키피어를 택배 부치는 일로 우체국을 가니 창구 여직원들이 유난히 반색을 했다. 00감자탕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왔는데, 그 음식점의 한 방에 내 시가 두 편이나 액자에 담겨 걸려 있더라고 했다.

아는 분의 시여서 모두 그 시들을 읽었는데, 맛있는 감자탕도 먹고 좋은 시화들도 감상해서 점심시간이 덤으로 즐거웠다며 싱글벙글하는 기색이었다. 해서 나는 젊은 창구 여직원들의 용모가 그날따라 한결 더 예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감자탕집의 내 시화작품감자탕집의 방 벽에 걸려 있는 내 시를 처음 본 날 시화작품 앞에서 대학생 아들 녀석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지요하


여직원들은 두 개의 시 제목을 기억했다.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라는 시와 <내 얼굴에서 아버지의 얼굴이>라는 시였다. 한 여직원은 스마트폰으로 시화작품들을 찍어왔다며 내게 보여 주기도 했다.

그 감자탕 집에 내 시가 걸려 있다는 것은 내가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 사실을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 여직원들은 믿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내게 처음 알려준 여직원들에게 감사하자 그들은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 집에서 그 시들을 걸어놓으면서 지은이에게 알리지도 않고 허락도 받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그건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거 아닌가요?"

"글쎄, 좀 섭섭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운 일 아닐까? 그 집에서 그 시화들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시화작품을 입수해서 벽에 걸어놓는다는 것, 갸륵한 마음이 아닐까? 아무래도 그 시들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래놓았겠지. 안 그래?"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좀 찜찜하네요. 우린 선생님이 그 시들을 주셨거나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나도 호기심이 생기네. 그 집에서 어떤 경로로 그 시화들을 입수하게 됐고, 무슨 연유로 내 시들을 벽에 걸어놓았는지 한 번 가서 알아봐야겠어. 하여간 고마워. 오늘 아주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어. 정말 기분이 좋네."

나는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우체국을 나왔다. 그리고 인근 초등학교로 가서 퇴근하는 아내를 차에 태워오면서 그 얘기를 들려주었다. 언제 한 번 가족이 함께 그 집에 가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면서 내 시들도 보고, 그 집에서 그 시화들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2>

그 감자탕 집에 걸려 있다는 두 편의 시화 중에서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 쪽으로는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2008년이던가, 천주교 대전교구에서 '대전교구 설립 60주년 기념 미술·사진·시화작품 합동전시회'를 대전 청송수련원에서 연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 두 편의 시를 출품했다.

대전 '청송수련원'의 전시회장천주교 대전교구 설립 60주년 기념 미술, 사진, 시화작품 합동전시회가 열리던 날(2008년 9월 20일) 대전 '청송수련원'을 찾았다.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로 인한 발병으로 40일 동안 입원생활을 하고 퇴원한 후라 초췌한 모습이었다. ⓒ 지요하


전시회가 끝난 후 나는 두 개의 시화작품을 돌려받았는데, 그것들을 그냥 적당한 곳에 걸어놓지 않고 다른 용도로 활용했다. 그해 여름부터 나는 주일마다 각지 성당들을 다니면서 신앙문집을 판매하는 일을 했다. 회갑기념 신앙문집 3권(시집·산문집·소설집)을 출간하였는데, 태안앞바다 기름유출 사고로 성전건립과 관련하여 극심한 곤란을 겪고 있던 태안성당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한 방책이었다.

내 승합차에 책을 싣고 외지 성당에 갈 적마다 두 개의 시화도 싣고 가곤 했다. 성당 입구나 적당한 자리에 시화작품들을 놓고 책을 사인 판매했다. 두 개의 시화작품, <신앙의 이유>와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를 읽은 신자들은 대부분 책을 샀다.

2009년 가을 수원 망포동성당을 끝으로 각지 성당을 돌며 책을 판매하는 일을 마쳤을 때 나는 두 개의 시화작품을 마땅히 걸어 놓을 데가 없어서 일단 아파트 로비 구석에다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화작품들이 생각나서 로비 구석을 들여다보니 비교적 큰 액자에 담겨 있는 <신앙의 이유>는 그대로 있는데, 걸어놓기 적당한 크기의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누가 가져갔음을 직감하면서, 그 시화를 가져간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그 시화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내게 전화를 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겅중겅중 흐르는 세월 속에서는 나는 그 시화를 까맣게 잊고 말았다. 

또 하나의 시화작품 <내 얼굴에서 아버지의 얼굴이>에 관해서는 기억이 명확치 않다. 어느 핸가, 태안문화원 또는 충남문인협회에서 문화제나 예술제 행사를 할 때 내게 출품 요청을 해 와서 시를 보낸 것 같은데, 시화작품을 언제 어떻게 돌려받았는지, 어떻게 간수를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액자도 그냥 아파트 로비 구석에 놓았었는지 모를 일이다.

신앙문집 사인판매2009년 11월 8일 천주교 수원교구 망포동성당에서 내 신앙문집 사인 판매를 했다. 주임신부님과 나를 잘 아시는 한 분 자매님과 기념촬영을 했다. 안산에서 사는 누이동생이 내려와서 유니폼을 입고 도와주었다. ⓒ 지요하


아무튼 두 개의 시화작품이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고장의 한 음식점 벽에 온전히 걸려 있다니, 생각하면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었다. 그 시화들을 가져다가 알뜰히 방 벽에 걸어놓은 사람이 내게 전화라도 해주었다면 더 고마웠을 터이지만,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로비 구석에 방치되어 있는 시화작품들을 가져다가 먼지를 닦고 애지중지하며 벽에다 걸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갸륵한 일인가.

이런 내 의견에 아내도, 잠시 집에 와 있던 아들 녀석도 기꺼이 동의를 해주었다. 여름방학 중에도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아들 녀석이 기숙사 리모델링 관계로 일주일 동안 집에 와 있을 때, 나는 마침내 가족들을 데리고 저녁시간에 그 감자탕 집을 찾을 수 있었다.

<3>

내 시작품들이 걸려 있다는 말 때문에 처음 찾은 감자탕 집이었다. 손님이 많았다. 장사가 잘 되는 집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돼지등뼈를 많이 넣어 끓이는 감자탕을 먹으면서 특별한 맛 때문에 장사가 잘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먼저 벽에 걸려 있는 내 시들을 읽어보고,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했다. 나로서는 무척 오랜만에 대하는 내 시들이었다. 두 편 모두 2008년에 출간한 회갑기념 시집 <때로는 내가 하느님 같다>에 수록된 작품들이었다. 그 시집 출간 이후로 <내 얼굴에서 아버지의 얼굴이>는 그러니까 4년 만에 대하는 셈이었고,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는 외지 성당들을 순회하며 책을 판매하는 일을 끝마친 이후로 처음 대하는 셈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을 안고 다시금 찬찬히 내 시들을 읽어보았다.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는 1986년, 삼십대 후반 시절에 지은 시였다. 당시 태안 읍장이셨던 분이 서산과 태안 사이의 길옆에 작은 쉼터를 만들고는 그 쉼터에 걸어놓을 시를 부탁해서 지은 시인데, 두꺼운 판자에 새겨져 한두 해 걸려 있었으나 어느 해 태풍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이력도 지니고 있는 작품이었다.

감자탕집의 내 시화작품읍내 감자탕집 벽에 걸려 있는 내 시를 처음 본 날, 시화작품 앞에서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지요하


<내 얼굴에서 아버지의 얼굴이>는 '보증빚'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던 시절, 미국에서 사는 누이가 보내준 돈을 찾기 위해 홍성 외환은행을 갔다가, 시장 골목에서 막걸리 한잔을 걸친 덕에 짓게 된 시였다. 시를 지은 지 이태 뒤인 2002년 8월 우선 <오마이뉴스>에 발표한 다음 <창작과 비평>의 인터넷 게시판에도 올렸는데, 공감한다는 호평들과 함께 명색 기성문인이라는 사람이 시를 너무 쉽게 쓴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던 작품이다.

밥을 먹으면서 주인을 불러 시화작품들을 입수하게 된 경위를 물었다. 진흥아파트로 배달을 갔다가 로비 구석에 있는 시화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를 발견하고 읽어보니 공감이 가는데다가 안식구가 시를 좋아해서 누가 버린 것인 줄로 알고 가져왔노라고 했다.

또 한참 뒤 다시 진흥아파트로 배달을 갔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로비 구석을 보니 또 하나 시화가 있어서 역시 버린 것인 줄 알고 가져왔노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버린 것일 줄 알고 가져온 물건을 그렇게 알뜰히 간수해 준 것이 여간 고맙지 않았다.

잠시 후에는 안주인이 와서 인사를 했다. 시들이 마음에 들어서 애지중지한다고 하더니 내게 모호하면서도 재미있는 말을 했다.

"아버님을 그리워하시는 건 좋지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나는 아무 대꾸도 못하고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너무 가냘픈 몸매가 안쓰럽기도 한 40대 여성의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심성이 고운 미소에서 은은히 풍겨나는 것 같았다.

이만 이 글을 마치며 태안 읍내 00감자탕 집 방 안에 걸려 있는 내 두 편의 시를 독자 여러분께 소개한다.

서울 난곡동성당 입구2008년 11월 9일 서울 난곡동성당에서 내 신앙문집 사인판매를 할 때는 성당 입구 계단 옆에 내 시화작품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를 놓았다. ⓒ 지요하


어느 여행길의 쉼터에서

지금 여기에 앉아 쉼은 목적이 아니다
앞으로 갈 길을 위해 잠시 머무는 것일 뿐
허나 그 목적의 길을 밟음도
다만 한갓 과정인 것을…
저 시작도 끝도 없는 곳을 향해
오늘 여기 잠시 머물 듯
우리 인생이 마냥 그렇거니
친구여,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내 얼굴에서 아버지 얼굴이

가랑비 맞으며
시장 안 막걸리도 파는 술집을 찾아가서
내 건강 문제에 저항하듯
막걸리 두 사발을 마셨다
모처럼 만의 목구멍 해갈이
뱃속에서부터 쏴하는 쾌감을 불러일으키더니
울컥 눈물이 솟았다
만 원짜리 받기를 사양하는
처음 본 아주머니에게 200원을 빚지고
훈훈한 마음으로 술집을 나와
느긋이 뒷짐 지고 시장 거리를 걷는데
어느 한 집 유리창에 내 모습이 보였다
걸음 멈추고 다시 보니
정직하게 늙어 가는 내 얼굴이 보였다
다음 순간 내 얼굴에서
내 아버지 얼굴이 보였다
아아, 내 아버지 얼굴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반가움 때문이었을까
속으로 탄성을 머금으며
아버지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느새 눈물 어린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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