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사형제 필요" 박근혜, 안대희 전 대법관에게 물어라

[取중眞담] MB정부 "EU서 인도받은 범죄인, 사형 선고돼도 집행 않는다"

등록|2012.09.06 15:28 수정|2012.09.08 14:32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새누리당 대선기획단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선임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27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 기자실에서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만약 사형이 집행된다면, 아마 조금 더 어려운 마음으로 재판을 했을 것이다. 어쨌든 집행이 안 될 거라 생각하니 뭐랄까, 부담이 좀 덜했다."

대법관 퇴임 직전인 지난 7월 초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지금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결합한 안대희 전 대법관이 사형제에 대해 한 말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에게 궁금했던 건 퇴임 이후 계획, 즉 전관예우를 찾아 대형 로펌으로 갈 것인지 여부였다. 그는 이에 대해서는 "무엇을 하더라도 경제적인 면에 연연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법조 원로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원론적인 답을 했으나(물론 그는 그 뒤 이례적으로 대법관 퇴임 직후 정치권으로 이동해 논란을 일으켰다) 사형제에 대한 답은 예상 밖이었다.

대법관 시절, 여행 온 젊은이 4명을 살해한 '보성어부' 사건과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총 2건에 대해 사형확정 판결을 내렸던 그는 '사형제 폐지' 문제에 대해 "이미 사형제는 다시 부활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며 "이제 논할 때가 지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집행도 안 되고 있고, 아마 집행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한다고 말할 필요도 없는 정도까지 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렇다면 아예 폐지하면 어떤가"라는 질문에 "국회에서 여론을 수렴해서 할 일"이라고 답했다.

최소한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12월 이후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국제적으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돼 있는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이고, 더 나아가 여론이 받쳐준다면 사형제를 폐지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안대희 "검사 시보 때 사형 집행 목격... 마지막 말이 '저는 억울합니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6년, 검사시보때 목격했던 사형집행 장면을 전하기도 했다.

"8, 9명이 한꺼번에 차례대로 집행을 받는 상황이었다. 대부분 사형수가 종교인이 돼 있거나, 간첩으로 온 사람들은 '김일성 만세!'하고 죽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택시기사가 승객을 성폭행한 뒤 죽이고 시체유기한 사건이었는데, 그 사람이 죽으면서 마지막 말이 '저는 억울합니다' 하면서 죽더라. 그것 참…."

안 전 대법관의 발언이 떠오른 건 "사형제가 있어야 한다"는 박근혜 후보의 발언 때문이다. 박 후보는 4일 '아동 성폭행범 사형집행론'에 대해 "사형제 폐지 움직임이 있었을 때도 저는 사형제 폐지는 신중하게 고려할 일이지 폐지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며 '사형제 존치' 입장을 밝혔다. "지금 대통령이라면 사형 집행을 하겠나"라는 질문에는 " 글쎄…, 그때도 저는 그렇게(사형제 존치) 주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형제 존치 입장은 분명한 가운데 상황에 따라 아동 성폭행범 등 흉악범죄에 대해서는 집행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인 현 상황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도의 발언이라는 해석도 있으나, 사형제 집행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상황이라는 점에서 박 후보가 자신의 발언이 '사형집행 찬성' 쪽으로 해석될 것인지 몰랐을 리는 없다.

MB정부 "EU서 인도받은 범죄인은 사형 선고돼도 집행 않는다" 선언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4일 오전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중국 전인대상무위원회 천즈리 부위원장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 권우성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15년 만에 다시 사형집행을 할 수 있을까.

일단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에서 드러나듯 국민 감정에 편승하기를 서슴지 않는 청와대는 이에 대해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것이 현재까지 청와대 입장이다. 법무부도 "정부 내에서 사형집행 검토 의견에 관해서는 들어본 게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명박 정부 법무부는 21명을 죽인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정남규, 안양 초등생 납치살해 사건의 정성현 등 3명의 사형집행을 지난 2009년께 검토했다가 최종적으로 포기했다.

당시 추진 중이던 한-EU 자유무역협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컸다. 실제 정부관계자들은 "대통령이 사형제를 폐지한 (유럽) 국가들을 방문하거나 이들과 FTA를 추진할 경우 사형집행 문제 대해 압박을 받곤 한다"고 전한다.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09년에는 법무부가 외교통상부와 협의해 "유럽연합에서 인도받은 범죄인의 경우에는 대한민국 법원이 사형을 선고해도 집행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앞서 2007년에 유럽평의회에 범죄인 인도와 사법공조 협약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우리나라의 '사형제 유지'가 장애물이 되자 이런 약속을 한 뒤에야 가입에 성공했다.

범죄억제 효과도 없고, 국익 감안해도 사형집행 어려운 상황

이와 함께 사형제의 범죄 억제 효과는 입증되지 않고 있다. 1995년에 19명, 1997년에 23명을 사형에 처했지만, 1996년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은 6% 증가했고, 23명이나 사형한 다음 해인 1998년에 살인이 17%나 증가했다. 결국 범죄 억제 효과도 없고, 우리의 국익을 감안해서도 다시 사형을 집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박근혜 후보를 포함해 이를 모를 리 없는 인사들이 사형집행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당장의 국민들의 격앙된 감정에 호소하는 포퓰리즘 성격이 짙다.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에 사형집행을 직접 목격했고 마침 선대위에 결합해 있는 안대희 전 대법관에게 사형제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 자문해보기를 권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