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진짜 사랑, 상대를 시험하지 않는다

[노래의 고향 14] 헌화가, 9월 14일 영덕에서 학술 심포지엄

등록|2012.09.06 15:24 수정|2012.09.06 15:24

▲ 경북 영덕군이 오는 9월 14일에 여는 '수로부인 헌화가 학술 심포지엄' 행사 소책자의 표지 ⓒ 영덕군

예(濊)의 본거지였던 고구려 땅 하슬라(何瑟羅)는 인명, 지명 등을 중국식으로 바꾼 757년(경덕왕 16) 명주로 개명된다. 명주는 고려 후기 이후 강릉이라는 새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다. 그곳 강릉태수로, 신라 성덕왕(702∼737) 때 순정공이라는 관리가 부임한다. 삼국유사에 보면 그는 경주를 떠나 강릉으로 오던 중 바닷가 어느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 식사 도중 사건이 발생한다. 높은 절벽 위에 철쭉이 활짝 핀 것은 본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이 "누가 저 꽃을 꺾어 오겠느냐?(折花獻者其誰)"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곳(非人跡所到)"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不能)"하다면서 모두 사양한다(皆辭).

'사양'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은 '거부'다. 강릉태수 부임 행차이므로 무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순정공이다. 수로부인은 그의 아내이다. 그러므로 철쭉꽃을 꺾어오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사양한 '따르는 사람(從者)'들은 부하 공무원과 노비들이다. 시키는 일을 못 하겠다고 거부한 것이다.

사랑은 초인적 힘을 발휘한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 그것을 또 다른 '어떤 사람'은 한다. 육사는  그를 '초인(超人)'이라 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만해는 '님'이라고 했다. 시인은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라고 찬송한다. 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를 고백하고 실천할 수 있다고 갈파한다.

수로부인에게 눈이 먼, 그러면서도 초인이 나타난다. 그런 사람이 출현하지 않으면 삼국유사에 수로부인 이야기가 실릴 까닭이 없다. 도(道)의 상징인 소를 끌고 지나가던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붉게 핀 바윗가에 / 잡은 손 암소 놓으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紫布岩乎邊希 執音乎手母牛放敎遣 吾兮不喩慙兮伊賜等 花兮折叱可獻乎理音如)"하고 노래를 건넨다.

노래에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꽃을 꺾어 바치겠노라"로 되어 있지만, 노인은 사실 이미 절벽에 올라 꽃을 가지고 온 다음 그렇게 말했다(聞夫人言折其花 亦作歌詞獻之). 수로부인이 부끄러워할 리 없다는 것을 노인이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로부인인들 공연히 철쭉꽃을 탐냈을 리가 없지 아니한가.

헌화가의 노인(老人)은 '늙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거뜬하게 감당해내는 능력 있는 초인이다. 헌화가의 '老'는 '노련(老鍊)하다'의 뜻이다. 삼국유사는 견우노인(牽牛老人)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其翁不知何許人也)'고 정리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고전 연애소설의 말투를 빌어 정의하자면 그는 수로부인의 '정인(情人)'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꽃을 꺾어올 능력이 없더라도 목숨을 걸고 절벽을 오를 '사랑'이었다는 말이다.

수로부인, 견우노인만큼 순정파는 아니었던 듯

그러나 표면상으로만 보면 수로부인은 견우노인만큼 순박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목숨을 던져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을 정인에게 시키는 것을 보면 그녀는 별로다. 절벽 위에 핀 꽃은 결코 정인의 생명과 대등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판단은 세속적 상식이다. 헌화가의 '꽃'은 상징이므로 꼭 가파른 천길 절벽 위의 철쭉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순정공과 기타 다른 일행들에게는 아니지만, 수로부인과 견우노인 두 사람에게만은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그 무엇이다. 만약 견우노인이 떨어져 죽는다면 수로부인 또한 그를 따르거나,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실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그 무엇 말이다. 하지만 삼국유사의 수로부인 설화는, 견우노인이 거뜬히 철쭉꽃을 꺾어오기 때문에, 그런 비극적 구조로 전개될 이유가 없다.    

▲ 삼척 수로부인 공원의 임해정 정자 (삼척시청 홈페이지) ⓒ 삼척시청


수로부인이 견우노인을 만난 바닷가가 어디인지는 지금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봄이면 '곁에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돌봉우리가 바다까지 병풍처럼 둘렀고, 그 위에 철쭉꽃이 만발하는(呂屛臨海 高千丈 上有躑躅花盛開)' 그런 곳이다. 과연 경주에서 강릉 사이의 어디가 그런 절경을 보여줄까.

견우노인이 헌화가를 지어부른 곳에서 북쪽으로 이틀 거리에 임해정(臨海亭)이 있었다고 전한다. 삼국유사 수로부인 설화에 나오는 기록이다. 하지만 임해정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헌화가의 '고향'도 덩달아 가늠하기가 어렵다.

임해정은 삼척 정도로 추정된다. 그래서 삼척시는 바닷가에 '수로부인 공원'을 조성했고, 정자, 기념비, 조형물 등도 만들어두었다. 정자에는 김진관 시인의 절창 '임해정' 편액이 걸렸는데, 시인은 '철쭉꽃보다 더 고운 / 수로부인의 미소 (중략) 부인 옷의 향기는 / 이 세상 것이 아니었네'라고 노래하여 마치 견우노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듯한 감동을 선사한다.

▲ 바다가 보이는 수로부인 공원 (삼척시청 홈페이지) ⓒ 삼척시청


"견우노인이 헌화가를 부른 곳은 경북 영덕"

그래도 삼척은 헌화가의 고향은 아니다. 이번에는 경북 영덕군이 나섰다. '임해정에서 이틀 정도의 남쪽에 해당하고, 삼국유사 수로부인조의 내용과 같은 바위가 병풍처럼 이루어져 있으며, 역로(驛路)가 지나가는 근방으로서, 철쭉이 아름답게 피는 곳은 바로 영덕군 남정면 부경리의 골곡포 북쪽 바위산 밖에는 없다'는 것이 영덕군의 주장이다.

영덕군은 오는 9월 14일 오후 2시 영덕군민회관에서 '수로부인 헌화가 학술 심포지엄'을 연다. '수로부인 설화의 다층적 주제와 그 역사적 의미(신태수 영남대 교수)', '수로부인 행로의 문화, 지리적 분석(전영권 대가대 교수)', '지역 스토리텔링 자원의 콘텐츠 방안 연구(유동환 안동대 교수)', '지역 문화자원 활용의 실천 문제(박규홍 경일대 교수)'를 주제로 하는 논문 발표와 종합토론이 진행된다. 영덕군은 '헌화가의 발상지가 영덕군 남정면 부경리 골곡포로 알려짐에 따라, 이를 재조명하여 지역의 새로운 역사 문화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한 학술 심포지엄에 귀하를 초대'한다는 홍보 소책자를 배포 중이다.
덧붙이는 글 TNT뉴스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