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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전화로 당신의 궁금증이 해결됩니다

민원 편의를 위한 모범, 가까운 데 있습니다

등록|2012.09.07 10:08 수정|2012.09.07 10:08
[장면]

김아무개 할아버지는 담당 공무원과 통화하기 위해 10번 정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산골에 사는 김아무개 할아버지는 농부다. 어느 날 아침 뒷산에 위치한 콩밭에 나간 할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밤새 고라니와 멧돼지가 침입해 콩밭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야생동물에 의해 농산물 피해를 입었을 경우 보상제도가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었다.

김아무개 할아버지가 관공서를 찾은 적은 거의 없다. 있다면, 아들 취업을 위해 주민등록 등본을 발급받기 위해 면사무소를 방문했던 것이 전부다. 어렵게 용기를 내 군청 대표전화로 전화를 했다.

"거기가 군청인가요? 한밤중에 산짐승들이 밭으로 내려와 농사를 다 망쳐놨어요. 보상해 주실 수 있나요?"

▲ 화천 파로호 주변 농가,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배를 이용해야 읍내에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오지이다. ⓒ 신광태


할아버지는 군청에 그렇게 말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잠시 기다리시란다. 그러고는 전화를 다른 곳으로 돌려준다. 다른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한밤중에 산짐승들이 밭으로 내려와 농사를 다 망쳐놨어요. 보상해 주실 수 있나요?"
"전화를 잘못하셨어요. 제가 해당 부서에 전화를 돌려 드릴게요."

최초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산짐승에 의한 피해니까 산림 관련 부서로 연결한 것이다. 그런데 그곳이 담당부서가 아닌 모양. 해당부서에 전화를 돌려주겠다던 사람의 잘못인지 전화가 갑자기 끊겼다.

할아버지는 다시 처음과 같이 대표전화를 전화를 했다.

"아까 전화했던 사람인데, 산짐승들이 농사를 망쳐서..."
"잠깐 기다리세요. 돌려 드릴게요."

할아버지는 '좀 전에 전화를 돌려 준 곳이 담당부서가 아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끊고 전화를 연결한다. 다시 좀 전에 통화를 한 직원이 받는다.

"전화가 끊긴 것 같은데, 산짐승들이 우리 농사를 다 망쳐서 그러는데요"

담당자는 잠깐 기다리라며 해당부서에 전화를 연결해 준다.

"한밤중에 산짐승들이 밭으로 내려와 농사를 다 망쳐놨어요. 보상해 주실 수 있나요?"

할아버지는 벌써 똑같은 말을 5번 반복했다. 할아버지로부터 설명을 끝까지 들은 직원은 그것은 내 업무가 아니고 담당직원은 지금 휴가 중이니까 이틀 뒤에 다시 전화를 하란다. 알았다고 끊고 나서 할아버지는 이내 후회했다. 직통 전화번호를 물어본 다는 것을 깜박한 것이다.

이틀 뒤 같은 일을 되풀이해서야 담당자와 연결이 됐다.

"할아버지! 산짐승에 의한 농작물 피해는 165㎡ 이상일 경우에 해당되고, 피해액이 20만 원 이상일 때 보상이 가능해요."

도시에 사는 아들과 딸들에게 보내주기 위해 심은 콩을 가격으로 환산했을 때 20만 원은 되지 않을 것 같아 김 할아버지는 포기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화가 난다.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전화를 받은 사람들에게 10번을 똑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위 내용은 상황은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경우를 가정해 본 글이다.

민원편의 해법은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

▲ 화천읍내 전경, 민원편의 전국 최고의 도시를 꿈꾼다 ⓒ 신광태


"모든 직원들이 어느 업무를 누가 담당하는지에 대해 안다면, 민원인들이 한 번의 전화로 상담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난 8월 마지막 주에 열린 화천군청 민원봉사과 직원 회의. 주요 의제는 '한 번의 전화로 민원을 해결할 수 있는지'였다. 오랜 토의 끝에 해법을 찾았다.

한 번의 전화로 바로 상담이 이뤄지도록 매뉴얼을 제작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즉 군청을 비롯한 읍면직원들이 담당하는 업무를(책자로 발간하면 효과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에) A4용지 한 장 내지는 두 장으로 요약 후 코팅을 해 각 직원들의 책상에 비치해 두면 민원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경우 담당자에게 직접 연결할 수 있으며, 또 최초 전화를 받은 직원이 담당자 부재 여부를 확인해 (부재 시, 담당자 동의 하에) 휴대전화 번호도 알려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인사 발령 등으로 담당자가 바뀌었을 때는 담당자 이름만 변경하면 된다.

'바로상담 제도'. 명칭도 정해졌다. 민원인이 전화를 하면 한 번에 상담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함으로 민원인의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행정에 대한 신뢰도 역시 높일 수 있다.

민원인의 불만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제도의 파급을 통해 행정편의가 아닌 민원편의 행정이 전국에 급속도로 전파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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