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세상 너머... 더 넓은 우주가 있다
[서평] 프리드리히 아니가 쓴 <빛은 어떤 맛이 나는지>
▲ <빛은 어떤 맛이 나는지> 겉표지 ⓒ 시공사
열네 살 생일을 맞은 주인공 루카스. 생일 선물로 사흘간 도시를 돌아다니기로 하고 집을 나왔다가 우연히 시각장애를 가진 존야와 부딪치게 되고 본능적으로 그 소녀를 따라간다. 존야는 홀에서 서빙을 하고 있다. 그릇을 나르고 척척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존야를 따라 간 수영장에서 물에 빠진 루카스를 뛰어들어 구하는 것도 존야이다,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어떻게 눈이 먼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 있나' 루카스는 존야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눈을 감고 길을 걸어보기를 시도한다.
"어디선가 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전에는 이런 소리가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p.150)
눈으로 본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가깝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외모, 몸매, 키라는 편견으로 그 사람의 진심과 마음을 가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결국 어떤 사람을 오래 만나나? 다 같진 않겠지만 보편적으로는 착하고, 성실함이 관계의 밑바탕이 되지 않던가.
루카스는 친구들도 많지 않고, 잘생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존야는 루카스를 보기 전에 루카스의 성격을 먼저 만났다. 그렇기에 선함과 차분함, 진지한 '느낌'의 루카스를 볼 수 있었고,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눈으로 본다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보이는 세계 너머의 분명 보이지 않는 세계, 다른 우주도 존재한다.
루카스는 몇 달 전부터 인간의 존재를 다룬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있었는데 거리에서의 사흘을 보낸 후 그저 읽어만 나가던 책을 비로소 이해하고 끝마쳤다. 아마도 이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 다른 존재의 만남과 그에 대한 배려를 통해서 가능했던 것 아닐까.
루카스의 사흘은 내게도 뭔가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했다. 가장 놀라웠던 변화는 장애인들의 '꿈'에 대한 생각이다.
존야의 꿈은 소믈리에다. 포도주를 맛보고 추천하는 일이다. 존야는 포도주를 마시며 빛의 맛을 느끼고, 꿈을 키워간다. 후일 호텔에서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포도주를 내놓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장애인의 꿈을 생각해보지 않은 내 자신이 놀라웠다. 이제까지는 장애인들을 인간의 범주 안에 넣지 않고 장애인이라는 특수 집단에 넣고 마치 외계인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배려하고, 이해한다 말하며 그들의 꿈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니... 결국 장애인도 일반으로 통일돼 있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이해 없이는 장애인을 위할 수 없다.
장애를 가진 이들을 바라보다 보면 시각이 측은함, 동정으로 치우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장애에 대한 차별보다 더한 상처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도우면서 독립적인 인간으로 또한 볼 줄 아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균형이 절실하다.
가출 마지막 날, 루카스는 존야를 도시에서 해가 가장 잘 드는 거리로 데려간다.
"눈을 감고 ... 입을 벌리고, 빛을 들인 다음 씹어봐. 이제 빛을 꼭꼭 씹는 거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눈을 떴다. 존야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p.289~290)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따스한 마음들을 느낀다. 어떤 것이 정말 인간에 대한 예의인지, 정말 장애인 같은 소수자들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보게 되는 책.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덧붙이는 글
류옥하다 기자는 열다섯 살 학생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라이브러리&리브로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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