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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눈물 섞인 낙과, 한상자 주문했습니다

초등 동창 친구네가 볼라벤으로 사과 과수원 피해를 봤습니다

등록|2012.09.07 11:47 수정|2012.09.07 11:47

▲ 이번 태풍으로 떨어진 초등 친구네 아버님댁의 사과입니다. 수확기를 눈앞에 두고 이렇게 됐습니다. 종이 봉지 두겹을 쓴 상태에서 질펀한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상처가 거의 없습니다. 좋은 것만 골라 제값 받고 판매해도 되지만 아버님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 박혜경


엊그제 초등 동창과 카카오스토리를 하다가 초등 동창 친구의 연로하신 아버님이 충남 예산에서 과수원을 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창의 친구는 현재 경기도 광주에서 살고 있고 딸은 출가를 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번 태풍 볼라벤으로 낙과가 생겨 적잖이 피해를 보셨다고 합니다. 수학을 코앞에 앞둔 사과부터 11월말에 수확해야하는 겨울사과까지 많이 떨어진 것이지요. 그동안 과수원 가꾸느라 애써 흘린 땀방울만큼 사과가 떨어졌습니다.

사과와 함께 아버님의 눈물도 떨어졌습니다. 광주에 살고 있는 딸의 한숨도 땅에 떨어졌습니다. 자식으로 키워온 녀석들이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중 다행인 건 멀쩡한 사과가 꽤 많다는 것입니다. 봉지를 두겹이나 쓴 채로 젖은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상처가 거의 없는 사과도 꽤 있다고 합니다. 물론 겨울사과 낙과는 싼 가격으로도 판매를 할 수 없고 정부에서 싼 가격이라도 수매해주면 좋은데 그것도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 태풍이 며칠만 더 늦게 왔더라면 수확해서 제값 받을 수 있었던 사과. ⓒ 박혜경


이에 대해 딸은 말합니다.

"아버지, 적정한 가격으로 판매하세요."

그랬더니 아버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얘야, 그러는 거 아니다."

딸은 다시 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아빠, 과일 상태도 괜찮은데 판매하세요. 맛도 나쁘지 않고 그러니 그냥 버리기도 아깝잖아요. 봉지값이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어요"?

아버님은 다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얘야, 그러는거 아니다. 농사는 정직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딸은 속이 타들어갑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전에 지병을 숨기고 계시다 수술 당일날에야 자식들에게 그 사실을 알린 아버지입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 걱정할까봐 결코 가볍지 않은 지병을 숨기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버님은 그렇게 정직하셨습니다. 정성을 들이면 그만큼 정직하게 결실을 갖다 주는 사과나무처럼 부지런히 땅을 파고 거름을 주면 기름진 땅이 되는 것처럼 아버님의 마음은 건강하고 정직하셨습니다.

결국 딸의 설득 끝에 아버님은 헐값으로 쓸만한 낙과를 판매하기로 하셨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낙과 한상자를 주문했습니다. 제 사무실 지인도 한상자 주문했습니다. 친구들 또한 그 친구에게 사과를 주문했습니다. 친구의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지인들이 그 사과를 주문했습니다. 특히 과수원 딸과 친구이며 제 초등 친구는 낙과 서른상자 넘게 구입해 거래처 사람들에게 돌렸습니다.

▲ 엄청나게 많은 사과가 떨어졌습니다. 아버님의 눈물도 떨어졌습니다. ⓒ 박혜경


저는 처음에 그것이 그냥 사과인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버님의 땀방울이요,
아버님의 사랑이요,
아버님의 자식이요,
아버님의 눈물이요,
아버님의 정성이요,
아버님의 생명이요,

그리고 아버님의 인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그 친구에게 주문한 사과가 택배로 도착할 예정입니다. 비록 낙과이지만 아오리 사과보다 더 달고 더 새콤하다고 들었습니다. 아오리도 맛이 나쁘지 않은데 그 친구 말로는 아오리보다 맛이 더 좋다고 합니다.

아버님의 정성과 사랑이 햇살과, 공기와, 물과 양분이 만나 사과라는 것을 만들어 내셨으니 어찌 달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낙과 수매 현장입니다. 이 사과는 겨울 사과로 지금 시점에서는 상품으로 판매될수가 없습니다. 갈아서 과즙 음료에 첨가하거나 향료로 쓰일수는 있습니다. 처음엔 20kg 한상자에 6천원에 수매한다고 했지만 물량이 많아서인지 2천원 수매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 박혜경


덧붙이는 글 블로그에 함께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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