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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동화를 만나다

[서평] 동심을 끄집어내준 그림동화 <나무와 나방 이야기>

등록|2012.09.09 21:20 수정|2012.09.09 21:20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그건 마음으로 보는 거야. 네 장미가 그토록 소중한 것은 네가 그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잊지 마. 넌 언제까지나 네가 길들인 것에 책임이 있어."

너무나 유명해 출처를 밝히는 것조차 쑥스러운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왕자>는 1943년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동심의 회복과 동심을 돌보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일

▲ <나무와 나방 이야기> 표지 ⓒ 나호준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 그러나 '어린왕자'의 순수한 동심과 따뜻함으로 세상 바라보기를 잊은 지도 벌써 오래전 일. 더욱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아동 성폭력 사건으로 동심의 세계는 피멍이 들었다. 때론 바쁘다는 핑계로 때론 세상이 어지럽다는 이유로 동심을 돌아볼 겨를이 없지만, 동심의 회복과 동심을 돌보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다.

뜻하지 않게도, 한 편의 그림동화가 그런 기회를 주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자신이 쓴 책이라며 이메일로 보내온 그림동화 <나무와 나방 이야기>. 제목 그대로 나무와 나방이 주고받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나무의 품 안으로 날아든 나방과 한 곳에서 오랜 시간 생명을 이어온 나무의 대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큰 나무들은 우리들에게 가을이 되면 잎의 양분을 줄기에 거둬들이는 것과 함께 겨울이 되면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 주었단다."(33~34쪽)

"어느 날인가 나비가 날아와 꽃에 앉아 있다간 후로 그리고, 그해 처음으로 나는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나는 저 멀리 어디선가 나와 같은 나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우리가 서로에게 전해준 꽃가루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준다는 걸 알았지."(43~44쪽)

▲ 그림 동화라서 친근한 그림이 빼곡하다. ⓒ 나호준


힘겨운 날갯짓으로 가까스로 나무 안에 둥지를 튼 나방은 지쳤지만 나무가 들려주는 지난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물론이고 일상에 지친 어른들에게도 위안이 되는 이야기가 책장 가득 묻어난다.

"나는 어디에선가 나와 같이 자신의 뿌리를 향해 집중하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존재는 오래 전 내게 처음 꽃씨를 나눠 준 나무라는 걸 알게 됐어. 그리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됐어. 하지만 그 사랑은 꽃씨를 나누는 보통 사랑과는 달랐어.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각자의 고독 속에서 뿌리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어."(61~62쪽)

볼품없는 나방과 벼락 맞은 나무의 삶

책이 주는 선물은 또 있다. 때론 쓸쓸함과 고독이 묻어나기도 하고 때론 정겨움이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저자는 전문적으로 그림 수업을 받은 사람은 아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디자인과 그림을 익혔다. 하지만 책장에 드리워진 그림은 하나하나가 여러 가지 생각을 전해준다.

▲ 그림동화라서 쉽게 술술 익힌다. ⓒ 나호준


▲ 그림 하나하나에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 나호준


"다시 잠이 깨었을 때, 나는 어느 혹성에 있었어. 그곳엔 수많은 촛불들이 가득했어. 그 촛불들은 생명들의 수명을 나타낸다는 걸 알 수 있었어. 나는 아직 꺼지지 않은 나의 촛불도 발견했어. (중략) 불꽃은 말했어. 지구에서의 수명을 다 마친 존재는 그의 차원에 따라 다시 지구에 태어나거나 더 높은 곳으로 가게 된다고. 나는 나의 사랑의 소식을 물어 보았고 불꽃은 이미 높은 차원에 가 있다고 했어."(73쪽)

나무의 이야기를 다 들은 나방은 이번에는 거꾸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무에게 들려준다. 나무가 알려준 불꽃으로 날아간 나방의 환생이야기도 생각할 거리를 듬뿍 전해준다.

"나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태어나도록 해줘. 불꽃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죽은 나방의 곁에 놓인 알에서 애벌레들이 태어났습니다. 애벌레들은 어미의 남겨진 껍데기를 먹어 치웠습니다."(85~86쪽)

▲ 나방의 이야기 환생 편. ⓒ 나호준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알고 있는 존재들이 많이 있다"

보잘 것 없는 나방과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묵묵히 세월을 견뎌 낸 나무의 이야기에는 동심을 잃어버리고 어른들의 치열한 경쟁의 삶을 보고 배우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휴식이 담겨 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는 어김없이 마을 어귀나 마을의 중심을 잡고 있는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씩은 있다. 숱한 세월을 이겨내고 터를 잡았음은 분명할 터. 그러나 그런 평범한 진리도 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름드리 온 팔을 벌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무의 소중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무와 나방 이야기>는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생각하게 해준다. 회색빛 도시, 답답한 아파트와 아스팔트에 길들어 '자연'이 몹시 고픈 아이들과 일상에 찌든 어른들에게 권한다.

"세상에는 나와 같이 자신의 뿌리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알고 있는 존재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하지만 그런 사실을 믿지 않고 서로에 대한 미움을 가진 인간들은 전쟁을 일으켰어. 그런데 우리들처럼 뿌리에 통해 있는 존재들은 그런 다툼으로부터 안전하게 살아남았어. 그건 원래 하나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스스로를 죽일 수 없기 때문이야."(81쪽)

이 책은 전자책 형태로 일정 부분 미리보기가 가능하며, 책은 그때 그때 주문에 의해 직접 제작해 배송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어려운 출판 환경의 단면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흐름의 출판 방식이기도 하다. 교보문고에서 미리보기와 주문이 가능하며, 저자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방문해도 같은 방식으로 책 내용을 엿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나무와 나방 이야기> 나호준 글·그림/퍼플 출판/2012.8.18/ 114쪽/2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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