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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에 오르다

산 따라 물 따라 백두산까지

등록|2012.09.10 14:37 수정|2012.09.12 13:40

▲ 70여 평생을 학수고대 기다려서 오른 백두산, '백두산 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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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따라 물 따라 백두산 까지아 ~ !! 백두산 70여 평생 벼르고 별러 강행한 "백두산" 산행을 하는데 다행이 날씨가 좋아 생애 최고의 행복산행을 하고 왔습니다. ⓒ 윤도균


중국에서의 첫날밤은 멀고 먼 여정이었는데도 좀처럼 단잠을 이룰 수 없어 뒤척이다 잠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꿈에서도 뵐 수 없던 '2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아직도 '검정 고무신에 베적삼'을 입으신 모습으로 나를 보고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셔서 깜짝 놀라 "어머니!"를 부르다 깨어 보니 꿈이었다.

이상하다. 70여 평생 소원하던 "백두산"에 오르기 위하여 찾아왔는데, 꿈속에서 어머님을 뵙다니 아무래도 꿈에 뵌 어머님 모습이 눈에 선해 더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을 깬다. 나의 어머니는 6·25 전쟁으로 피난을 나와 슬하에 6남매를 두고 그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당신은 평생을 검정 고무신도 꿰어 메어 신으시며 고단한 인생을 살다가 돌아가셨다.

그 어머니께서 지금까지 생존해 계신다면 예쁜 옷을 차려 입혀서 함께 여행도 다닐 수 있었을 텐데…. 그 어머니를 두고 무심한 불효자식은 좋은 세상 만나 기백 만 원짜리 카메라 들고 번쩍이며 백두산에 달려왔으니, 옛말에 '아들 새끼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란 말은 바로 나를 두고 한 소리인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8월 31일 (금) 새벽 3시 30분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걱정했던 날씨가 쾌청하다. 하늘에는 유난히 별빛이 반짝인다. 그러나 백두산은 우리나라 산과 달리 고도가 높아 백두산에 올라서야 천지를 조망할지 말지 알 수 있다는 중국 현지 가이드(조성운님)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우리는 아침도 먹지 않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그 시간이 새벽 4시 30분, 숙박한 호텔을 출발해 백두산이 있는 곳(서파)으로 이동하는데 한적한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천연원시림 자작나무 숲 풍경이 장관이다.

백두산 가는 길 '호랑이 나올 것 같은 천연 원시림'

▲ 백두산에 오르기전 멀리 '장백폭포'를 배경으로 일행들과 함께 기념 사진 ⓒ 윤도균


▲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기자도 기념 사진을 찍었다. ⓒ 윤도균


아무도 다니지 않은 그 길을 달리다 보니 이따금 우리나라 제주에서 키우는 흑돼지 비슷한 검은색 멧돼지가 도로변까지 나와 차가 달리는데도 한가로이 먹이를 찾는다. 이 모습이 이국적이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때로는 곰도 출현한다고 한다. 그 정도로 백두산 가는 길 주변은 천연 원시림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어쩌면 호랑이도 서식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는 사이 우리 일행을 실은 차가 새벽 5시 43분에 '이도백하 고려음식점'에 도착했다. 이번 백두산 원정산행 중 나는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먹는 즐거움이 어느 정도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 중국에 있는 '황산 ~ 삼 청산'을 산행 때에는 중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개고생'을 했다.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백두산 자연석 가공품과 백두산 현지에서 딴 자연산 건포 블루베리'등 몇 가지 기념품을 사 들고 나왔다. 오전 7시 45분, 백두산 산문에 도착해 셔틀버스를 2번이나 갈아탔다. 8시 40분, 장백폭포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전후좌우를 병풍처럼 빙 둘러 에워싼 기암 절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 백두산 산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마치 백두산 정상에 오른 기분이다. 무거운 짐이 될 줄 뻔히 알면서 백두산 산행을 위해 마음먹고 챙겨간 DSLR 카메라 셔터를 쉴 사이 없이 눌러댄다.

하지만 여기서 보는 풍경은 그냥 맛보기 정도에 불과하단다. 한시라도 빨리, 백두산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는 안내자 말에 따라 장백폭포 주차장에서 우측으로 난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타난 울창한 숲 사이로 걸어갔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암릉 '너덜겅' 길을 따라 올라야 하는 깔딱고개 구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내 마음 같아선 '장백폭포' 관리소에서 곧바로 직진해, '1박2일'팀이 오른 비룡 (장백산) 폭포 방향으로 오르면 훨씬 백두산 산행이 수월하고 편할 것 같다. 그러나 '백두산 관리소'에서 나온 직원 말에 의하면 장백폭포 인근 바위봉우리가 무너져 내려, 그곳은 갈 수 없으니 깔딱 고개로 이어지는 정상 등산로가 아닌 코스를 택해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 백운봉 오르는길에 본 또 다른 시각의 "백두산 천지" 모습이다. ⓒ 윤도균


▲ 천지를 배경으로 함께 백두산 오른 일행들과 함께 단체 사진 ⓒ 윤도균


그러니 어쩐단 말인가? 그 먼 길 달려와 코앞에 있는 백두산 천지 구경도 못하고 돌아갈 순 없지 않은가? '중국에 왔으니 중국법을 따르는 수밖에….' 그런데 평소와 달리 가파르게 이어지는 깔딱고개 코스가 왜 이리 힘이 드는지 코에서 단내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힘든 것이 어디 나뿐이겠는가? 나이 든 사람이 뒤처져 있으면 공연히 일행들에게 더 부담 줄 것 같아 '에라 모르겠다, 죽어도 백두산에 와서 죽는 것이니'라는 마음으로 앞장서서 걸었다.

'엄마 젖 먹던 힘까지' 내 중국 현지 가이드 뒤를 바짝 따라 선두로 오르며 멀리 옥 면봉 안부를 바라보며 오르는데... "어럽쇼" 저 멀리 시원하게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저건 분명히 '장백폭포(비룡)'는 아닌데 또 무슨 폭포란 말인가 그동안 백두산 다녀간 사람들 찍은 사진을 자주 봤지만, 이런 폭포는 본 적이 없는데 하도 궁금해 현지 가이드에게 폭포 이름을 물으니 난생처음 들어보는 '옥벽폭포'란다.

옥벽폭포, '드라이아이스' 정도로 차가운 물... 10초도 견디기 어려워

▲ 백운봉 가지 전 일행들이 녹명봉에서 환호하고 있다. ⓒ 윤도균


▲ 백두산(장백산)에서 제일 높은 '백운봉' 정상에 올라 일행들이 환호하는 모습이다. ⓒ 윤도균


나는 단숨에 '옥벽폭포'에 도착해 중국인 가이드 표정을 살피니, 힘드시면 물도 마시고 더우면 세수도 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쏟살같이 폭포수가 흐르는 물에 물병을 담가 물을 채웠다. 처음 물에 손을 담았을 때 10초 정도는 참을 수 있더니, 나중엔 손이 시려서 단 5초도 참기 어렵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일행들이 '청파님 엄살떠신다'며 자기들도 물에 손을 담갔다가 하나같이 기겁하는 모습이 더 우습다.

아마 이곳 '옥벽폭포' 지하구간 어느 지점에 아직도 녹지 않은 빙하 구간을 통과한 물이 폭포수가 되어 물 온도를 차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냉기 정도가 어느 정도냐면 흔히 우리가 여름철에 볼 수 있는 '드라이아이스' 정도다. '옥벽폭포'에서 휴식을 취한 후 유행가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지대를 지나다 보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일행들 그 푸른 초원에 한참을 뒹굴며 사진을 찍었다.

오전 10시 5분 용문봉 안부에 올라서니 드디어 한눈에 들어오는 '백두산 천지'가 우리를 감탄케 한다. 저 아름다운 천지의 모습을 생전에 꼭 한번 보고 싶어서 70여 평생 꿈을 앉고 달려왔다. 염려했던 비나 안개도 한 점 없다. 이렇게 선명한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니….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러다 보니 나를 포함한 일행들 누구랄 것도 없이 하나같이 흥분된 모습으로 기뻐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다.

백두산 천지에서 '아리랑'을 목청 높여 불러

▲ 신선들이 놀았을 것 같은 신비의 '녹연담' 포폭 ⓒ 윤도균


▲ 마치 우리나라 주산지 축소판같은 '소천지' 풍경 ⓒ 윤도균


사실, 나는 이번 백두산 산행을 떠나며 다짐한 것이 있었다. 만약, 백두산에 오르게 되면 꼭 태극기를 휘날리며 찍은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배낭에 태극기를 지니고 백두산에 올랐다. 눈치 봐서 태극기를 꺼내 들고 애국가라도 부르고 싶어 슬그머니 천지에 오르기 전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가이드에게 천지에서 태극기 들고 사진 찍어도 되는가? 분위기를 물어보니, 가이드가 하는 말.

"글쎄요, 중국과의 영토 문제가 관련된 사안이라 민감한 행동은 안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가 대한민국이 아닌 공산주의 국가 중국이란 점을 고려하여 섣부른 나의 우발적 행동으로 자칫 더는 백두산 산행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태극기 꺼내는 것을 포기했다. 즉흥적으로 우리 15명 전원이 빙 둘러 어깨동무를 하고 '태극기나 애국가' 대신 '아리랑'을 합창했다. 그 진한 감동이란 가슴에 뭔가 뭉클하며 목이 멘다.

우리가 그러는 사이 중국 현지 가이드는 계속 어디와 통화를 했다. 통화 후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올해 백두산 트래킹은 우리 일행이 마지막이라 '중국 백두산 관리소'의 배려로 용문봉(2,596m)에서 하산해야 할 우리를 백두산 천지 건너편 기암 절경을 이루며 위용을 자랑하는 가장 높은 봉우리 '백운봉 (2,662m)'까지 트래킹 코스를 연장해 줬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일행들은 너도나도 어린아이처럼 깡충거리며 기뻐한다.

기사는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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