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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응답하라 박근혜

독재자의 딸이 아니라 공당의 후보로서 답하라

등록|2012.09.11 18:20 수정|2012.09.12 16:42

사형대도예종, 여정남 등 인혁당 관련자 8명의 목을 조였던 올가미. 서대문 역사박물관 ⓒ 이정근


최근 엽기적인 성폭행 사건이 빈발하자 각계각층에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형량이 너무 낮다. 더 올려라.'
'짐승에게 무슨 형량이냐? 죽여라.'
'사형시켜라.'
'화학적 거세하라.'
'화학 같은 소리 하지 마라. 고환을 발라버리자.'
'전자 발찌가 무슨 소용 있냐? 아예 잘라라.'

가히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성폭력 범죄자의 외과적 치료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법안은 사실상 강제적으로 물리적 거세를 시행하는 것이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즉 고환을 발라버리는 것이다.

전국에 내려진 살벌한 체포령

1974년 4월. 독재자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획책하기 위하여 유신헌법이 발효된 지 2년차 되던 해. 전국에 검거령이 떨어졌다.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학생 시민 1천24명이 체포되었다. 이른바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이다.

경찰과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그들은 때리면 맞아야 했고 잠을 안 재우면 날밤을 새야했다. 칠성판에 누우라면 누워야 했고 고압 전기가 몸에 흐르면 비명을 지르며 기절해야 했다. 결국 인혁당 관련자 21명, 민청학련 관련자 27명 등 1백80여명이 보안법과 긴급조치 4호 등 위반 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되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철, 김지하 등 민청학련 연루자들은 감형 또는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었지만 도예종,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우홍선, 송상진, 여정남 등 인혁당 관련자 8명은 1975년 4월 9일 대법원 확정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사형집행 재가를 받아서다.

이 사형 집행은 유신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시민 학생들에 대한 용공조작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급기야 제네바에 있는 국제법학자협회가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 선포했다.

사형집행자에 무죄선고, 누가 그들을 살려낸단 말인가?

2007년 1월 23일. 인혁당 사건 재심 선고공판이 벌어졌다. 법원은 수사과정에서 불법 고문이 자행되었으며 신문조서와 진술조서가 위조 조작됐음을 인정하고 32년 전 사형이 집행된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을 빙자한 박정희의 '사법살인'이 증명된 셈이다.

최근 흉악범이 횡행하자 '사형시켜라. 고 아우성이다. 그 심정 이해한다. 그 분노 공감한다. 천인공노할 흉악범들은 이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자. 자칫 감정에 휩싸이다 보면 우를 범할 수 있다. 법이란 한 번 만들면 고치기도 힘들고 폐기하기도 어렵다. 악법도 법이라고 위정자들이 계속 우려먹으면 당하는 건 백성들이다. 반공법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어느 날 밤. 괴한이 나타나 그대를 잡아다 고환을 발라버릴 수도 있다. 멀쩡한 사람 잡아다 누명씌워 죽이기도 하는데 고환이 대수겠는가. 매에는 장사 없다. 붙잡아다 패면서 자백하라면 안한 일도 했다고 불수밖에 없다. 그걸 바탕으로 법대로 깠다는데 할 말 없을 것이다. 훗날, 고문에 의해 허위 자백했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발라진 그대의 고환은 어디서 찾아온단 말인가?

죽어가면서 마지막 한 말이 뇌리에 남아...

얼마 전, 새누리당 행을 택한 전 대법관 안대희가 퇴임하기 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사형제 부활에 대해 검사시보 때 목격한 장면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8, 9명이 한꺼번에 차례대로 사형집행을 받는 상황이었어요. 대부분 사형수가 종교인이 돼 있거나, 간첩으로 온 사람들은 '김일성 만세!'하고 죽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승객을 성폭행하고 죽인 혐의로 사형 당하게 된 택시기사가 죽으면서 마지막하는 말이 '저는 억울합니다.' 라면서 죽더라. 그것 참…."

그가 검사시보 때라고 말한 시기는 1976년 박정희 유신독재시절이다. 간첩혐의를 받은 확신범들은 '김일성 만세를 부르며 죽어갔고 종교에 귀의한 사형수들은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을 찾으며 죽어갔지만 '억울하다.'고 죽어간 택시기사의 말은 지금까지도 여운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엄혹했던 그 당시. 미제 사건에 압박감을 받던 경찰은 범인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고문기술자'를 길러낸 경찰은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대통령 후보는 국민들에게 진심어린 입장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묻고 싶다. 사법살인을 자행한 전임 대통령 박정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뼈는 안으로 굽고 피는 물보다 진하기 때문에 독재자의 딸에게 독재자의 평가를 요구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호를 5년간 끌고 가겠다고 나선 공당의 후보에게 묻는 것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1표를 행사할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묻는 것이다. 꼭 답해주기 바란다.

정치인 박근혜는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해왔다. 그의 소신이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법을 유린한 사법살인자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할 것이다.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공당의 대통령 후보라면 '역사에 맡겨야'라고 회피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진심어린 입장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의무를 이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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