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이 귀촌한다면 목숨 걸고 오십시오"
[이사람] 컴퓨터 프로그래머 접고 귀농에 성공한 표고버섯 전문가 허교회씨
▲ 표고버섯 재배용 '배지'를 들고 있는 농부 허교회씨"제 자식이 먹는 표고버섯입니다." ⓒ 박병춘
전자공학과 출신, 컴퓨터 프로그래머. 4년 정도 네 명 친구들과 대전 모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려 컴퓨터 관련 사업을 했다. 이후 컴퓨터 프리랜서로 2년 정도 일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귀농을 결심한 사람. 농부 허교회(50)씨의 전력이다.
허씨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늘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공부를 한 만큼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IMF로 치명타까지 맞았다. 회사 운영비를 감당하기조차 힘들었다. 뭔가 결정을 해야만 했다.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시골에 내려갔다. 연세 드신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해 본 경험 때문이었을까?
치밀하게 준비한 귀농... 농사법 탐구하러 전국 돌아다녀
▲ 표고버섯항암 효과가 뛰어나다는 표고버섯 ⓒ 박병춘
지금으로부터 8년 전, 허씨는 농촌에 눈을 돌렸다. 허씨의 귀농은 누구보다도 치밀하게 진행됐다. 어릴 적부터 농촌 생활에 적응하여 두려움은 전혀 없었지만 보다 나은 농촌 생활을 꿈꾸며 특별한 농산물 생산에 관심을 가졌다. 허씨는 귀농을 결정하기까지 1년 동안 고심했다.
매월 기본 생활비로 150~200만 원이 들어가는데, 농촌 생활을 하면 월급처럼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불안했다. 더구나 부모님이 짓는 벼농사 밭농사를 보며 부가가치가 높다고 보지 않았다. 허씨는 수익 창출을 고민했다. 뭔가 색다른 것을 찾아야 하는데 무슨 농사를 지어야 할까 끊임없이 탐구했다.
허씨는 2004년도에 농사법 탐구를 위해 전국 투어를 감행했다.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버지가 가진 시골의 여건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했다. 농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경상도 쪽 투어를 할 때였다. 이모작으로 마늘과 양파를 생산하는 것을 보고 충북 청원군 문의면 두모리에 있는 아버지 땅에도 가능하다 싶어 마늘과 양파 재배에 돌입했다.
농부 첫해, 아버지의 땅 2천 4백 평에 심은 양파 농사는 절반의 성공과 실패로 나타났다. 어떤 실패를 했을까? 제초를 하기 위해 땅에 검은 비닐을 씌웠는데, 봄에 햇빛을 받지 못해 지온 상승이 늦어 뿌리 활성화가 덜 돼 수확량이 너무나 적었던 것이다.
전화위복이었을까? 아버지의 땅은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수확량은 적었지만 양파의 육질이 단단하고 맛도 좋아 인기가 좋았다. 허씨의 아내는 지인과 식당 등에 팔았다. 허씨의 양파는 다른 양파와 달리 오래 두어도 썩지 않고, 관리하기에도 수월하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인근 아파트 전체가 주문하여 생산 판매할 정도였다. 판로가 완전 확보됐다. 모두가 친환경 농법의 덕이었다.
허씨는 그 이듬해에 검정 필름을 녹색 필름으로 바꿨다. 수확량이 늘고 크기가 더욱 커지고, 맛도 좋아 농업 기반의 가능성을 열었다.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신념을 얻었다.
▲ 표고버섯배지에서 올라온 표고 버섯 ⓒ 박병춘
농법 투어 과정에서 느타리 버섯에 마음이 쏠렸다. 타당성 조사를 해보니 결과가 좋지 않았다. 투자 비용 대비 경제력 확보가 어렵다고 본 것이다. 허씨는 학습을 결심했다. 충북대 농업인 최고 경영자 과정 '버섯과'에 등록했다. 1년 동안 죽도록 공부했다. 허씨는 표고버섯 농법에 파고들었다. 함께 수학했던 12인의 버섯 전사들과 지속적인 교감을 하며 탐구했다.
허씨는 복합 영농만이 농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가지고 있는 땅을 최대 활용하여 뭔가 특별한 한가지를 병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표고버섯으로 결정하고 과감하게 건물을 지었다.
2005년도였다. 특용 작물을 표고버섯으로 결정하고 건평 120평의 조립식 판넬 건물을 세웠다. 그 이듬해 저온 창고를 마련했다. 농사 지어 번 돈으로 매년 투자를 했다. 참나무 톱밥과 미강을 8대 2로 섞어 배합기에 넣은 후 봉지에 담는 자동화 시설도 만들었다.
▲ 표고버섯 재배에 이용하는 "배지"기존 원목 방식에서 전환된 배지 방식 ⓒ 박병춘
이 봉지에 표고버섯균을 넣어 배양하는 것을 '배지 농법'이라고 한다. 허씨는 원목을 버리고 배지 농법을 선택한 것이다.
참나무 톱밥과 미강을 8대2로 섞어서 배합기에 넣어서 잘 섞은 후 입봉기(봉지에 넣은 기계)로 넣고 찍어주면 봉지에 쏙 들어간다. 입봉을 한 후 살균기에 넣어 100도에서 4시간 정도 살균을 해야 오염을 막고 잡균을 박멸할 수 있다. 그리고 크린 룸에서 표고버섯 균을 넣고 배양을 하는 것이 배지 농법이다. 결국 '배지'란 봉지에 들어있는 성분을 말한다.
▲ 허교회씨"배지 한 개에서 여덟 차례 정도 수확합니다." ⓒ 박병춘
배지 농사법은 중국식, 일본식, 대만식 세 종류가 있다. 중국식은 배지를 메주 덩이처럼 크게 만든다. 일본식은 사각틀로 만들고, 대만식은 사진과 같은 방식을 말한다. 허씨는 대만식을 선택했다. 현재 중국은 70%, 일본은 90% 대만은 100% 배지 방식으로 표고버섯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약 40% 정도가 배지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원목 방식은 1미터 20센티 정도 참나무 원목을 이용하는데, 너무 무거워 힘이 들고 1년 정도 지나야 수확이 가능하고 3년 만에 원목을 교체해야 한다. 배지 방식은 90~120일 정도면 수확이 가능하며 배지 하나에서 여덟 차례 수확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시행착오 와중에 만난 은인..."평생 잊지 않을게요"
▲ 표고버섯배지 하나에 줄줄이 올라온 표고버섯 ⓒ 박병춘
8년 동안 표고버섯 농사를 지으며 우여곡절도 많았다. 허씨도 처음에는 중국식 배지를 시작했다. 조립식 판넬에서 수확하면서 햇빛과 통풍의 관계, 물주는 방법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다른 하우스에 비하여 버섯 색깔이 검게 나와 낮은 가격으로 출하해야 했다.
이때 은인을 만났다. 허씨는 중국식이 아닌 대만식으로 혼자서 표고버섯 재배에 몰두하는 분과 모임을 함께 하고 있었다. 바로 채택기(55)씨였다. 채씨는 대만식 배지 방식으로 표고버섯 수확을 궤도에 올려 놓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도입이 별로 없던 때 채씨는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표고버섯 재배에 성공한 것이다. 허씨와 계원들은 채씨의 도움으로 원목 방식을 접고 배지 방식을 채택했다.
"채택기씨요? 제겐 은인입니다. 정말 고지식하고 파고드는 열정이 넘치는 분입니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연구하고 열심히 공부만 합니다. 우리 12명이 계를 조직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모입니다. 채씨의 안내로 대만도 직접 가서 견학하고 생산 농가를 보고 왔습니다. 중국, 일본에도 다녀왔습니다. 표고버섯 농사를 지으며 보완 사항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공부합니다. 채씨는 여러 가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대만과 우리나라 기후가 다르잖아요. 그 다름을 홀로 터득하여 우리나라만의 재배 방식을 만든 분이 채택기씨랍니다."
성공하는 사람에겐 은인이 있게 마련인가 보다. 허씨는 채씨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평생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허씨는 교육을 참 많이 받았다. 농한기가 되면 충청북도 도민 자치 연수원에서 공부를 한다. 재작년에는 충남대학교 산하 '농산물 수확 후 관리기술 센터'에서 탐구 학습을 진행했다. 가끔 농법 강의도 한다. 공부를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허교회씨 표고버섯 하우스"향이 좋고 육질은 부드럽습니다." ⓒ 박병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사람과 사람을 통해 배웁니다. 전혀 다른 환경에 있던 분들이므로 배울 점이 많아요. 다양한 모임을 갖고 있다는 게 매우 기쁩니다. 특별한 귀농인도 만나고, 성공하는 비결도 많이 알게 되거든요."
표고버섯 판로는 어떨까? 최근 3년 동안 표고버섯 가격 동향은 좋다. 과잉 생산 우려는 아직까지 안 해도 좋다. 색깔 모양에 따라 등급은 달라지나 1킬로 당 1만 원 정도로 출하하고 있다. 판로는 걱정이 없다. 워낙 친환경 농법으로 잘 알려져 있어 친환경 급식 업체로 들어간다. 배지 3만 개에서 표고버섯을 생산하므로 수확량 또한 문제가 없다는 것이 허씨의 전언이다.
"배지 방식 표고버섯의 맛은 원목 표고버섯과 달라요. 원목 방식 표고버섯은 향이 진하고 육질이 단단하거든요. 배지 방식 표고는 향이 과하지 않고 버섯 자체가 부드럽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먹기에도 아주 좋답니다."
귀농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필자의 제안에 허씨는 신중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 허교회씨"귀농하시려면 열심히 공부부터 하셔야 합니다." ⓒ 박병춘
"귀농 귀촌하기 전에 반드시 공부하고 준비하고 충분히 교육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들어와야 합니다. 정착 자금 뭐 이런 것 바라지 말고 절대로 섣불리 결심하지 마세요. 사람을 많이 만나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현장 견학이 가장 중요합니다. 관심 분야가 있다면 그 분야의 농부를 반드시 만나 동향을 파악하고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반드시 여러 군데에 견학해야 합니다. 가족은 도시에 두고 나만 홀로 귀촌하는 건 반대합니다. 온 가족이 귀촌한다면 목숨 걸고 오십시오. 그 대신 공부를 충분히 하셔야 합니다."
'당신에게 아버지는 어떤 분입니까?'라고 물었다.
"눈물 나지요. 어머니께서 당뇨와 혈압으로 고생하고 계세요. 아버지는 현재 85세인데, 평생 농사만 지으셨어요. 완전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지금의 기반을 이루어 놓은 분입니다. 시골에서 농사만 지어서 5남 1녀 대학 졸업을 시키셨어요. 무조건 존경합니다."
허씨의 집안은 장수 집안이기도 하다. 할아버지는 80세로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는 1899년 생으로 101살에 돌아가셨다.
끝으로 물었다.
- 농부로서 신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아버지 때부터 친환경으로만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제가 먹는 음식입니다. 제 자식이 먹습니다.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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