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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옛터 답사를 다녀와서

등록|2012.09.19 18:06 수정|2012.09.24 11:35
신흥무관학교의 옛터 답사를 위해 광주에서 오랫동안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인 5명이 7월 22일 새벽 1시에 버스를 몸을 싣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작년 이 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으로 답사를 시작하였는데 올해도 연속사업을 진행하여 120여명이 제출한 신청서를 심사했는데, 다행이 통과되어 답사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고 싶은 단원까지 해서 70명이 인천공항에서 만나서 중국 만주지방을 향하다. 이번 답사에는 독립운동가 후손 3명을 포함해서 역사 선생님들과 중고생들이 상당히 많이 참여했다. 해방 후 이 학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신흥대학(지금은 경희대학)의 민주동문회 몇 명도 함께 했다.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대학 다닐 때 부터 관심을 가졌지만 신흥무관학교가 우리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한말 국권상실의 회복을 위해 의병투쟁을 계승하여 옛 고구려 땅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다. 그후 무장투쟁을 통해 자주독립국가를 쟁취하려 거의 10년 동안 3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폐교된 이후에도 신흥무관학교 관계자와 졸업생들은 각지에 이 학교의 정신을 계승하는 학교를 설립하고, 청산리전투와 봉오동 전투에 나가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후 의열단과 임시정부의 광복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1930년 이후 사회주의 무장독립투쟁도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없는 이 독립운동은 현실의 기존 독립운동이 숨죽이고 있을 때 일어섰기에 독립운동사에 매우 비중있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Ⅱ. 답사 일정

첫째날 (7월 22일). 1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심양에 도착하니 다행이 흐린 날씨였다. 왜냐하면 이곳의 여름날씨는 태양이 작렬하면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심양에서 멀리서 잠도 못자고 앞으로 버스를 오랫동안 탑승할 것이기에 피로를 덜 느끼라고 높은 대형버스 2대로 이동하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과 서울 모여고 선생님과 학생들-백두산가는 길 전망대에서<서울 모여고에서 선생님과 제자들이 함께 참여하다. 중.고생들이 20여명 참여하다. 두 학생은 오갈 때 비행기 내 좌석의 좌우에 앉아서 함께 하다.> ⓒ 신 민 구


길림시에 도착하니 비가 제법 내린다. 단원들은 준비된 우의나 우산을 쓰고 답사를 진행했다. 한국이 폭염이다라는 소식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이 육문중학교는 공사중이고 현재 한중관계를 반영한 것인지 대문은 굳게 닫혀 있어 교사 밖에 있는 학교이름 앞에서 사진 몇 장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구멍 난 담벼락 사이로 언뜻 보니 북측의 김일성주석의 큰 동상이 서 있는 것 같은데 이것도 자세히 보지 못하게 경비원이 막는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 꼭 들르는 학교란다.

길림시에 있는 일제영사관및 감옥에 대해 이항증선생님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단원들이날 비가 오는 중에도 단원들이 일제영사관 및 감옥터에서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내신 이상룡선생님의 자녀인 이항증선생님의 설명을 경청하는 모습 ⓒ 신 민 구


이 학교는 일제하의 김주석이 다니면서 일제에 맞서기 위해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비밀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김주석의 자서전인 <세기와 더불어>에도 언급된다. 그 외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배출되었지만 김주석의 이름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 않는단다.

일제하 독립운동가을 많이 배출한 육문중학교 교사 앞에서.교정에 김일성주석 동상이 있다.육문중학교는 김일성주석이 중학교시절 독립운동을 시작한 학교로 동상이 있다. 김정일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 꼭 들리는 학교이단다.우리는 요즈음 불편한 한중관계를 반영하여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교사앞에서 기념촬영한 것으로 대신하다. ⓒ 신 민 구


버스 타고 조금 더 가니 구일본영사관 옛터에는 은행이 들어 서 있고 그 옆에는 길림 감옥옛터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길림에서 영사관은 경찰이 있어서 영사관자리가 매우 넓었다. 이는  영사관이 이 지역일대에서 우리 독립운동가들를 감시·체포·고문·살해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은 할 수 없어서 재판소가 있는 용정에서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관동군 부대가 주둔한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감옥 옛터이고,옆 건물인 현재 은해은 일제 영사관이 있던 자리이다.일제 시대 영사관은 독립운동가들을 추적.탄압.고문.살해하는 일제국주의심장부이다. ⓒ 신 민 구


영사관 맞은편에는 김원봉을 주축으로 한 테러조직인 의열단 발대식이 있었다. 나중에는 테러로 독립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무장투쟁으로 돌아서다.

백두산 천지에 발원하여 흐르는 송화강이 도심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천지를 발원한 강은 그 외에 압록강과 두만강이 있다. 비가 계속 내려서 저녁식사를 하고는 한 단원과 함께 사진 몇 장 찍고는 다음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안내원 이야기로는 송화강 야경이 이 곳의 제1의 명장면인데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송화강의 전경송화강은 압록강과 두만강과 더불어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길림시를 흐르는 강이다. 길림에서 송화강 야경의 제1명장관인데 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 신 민 구


버스 안에서 단원들이 참여한 동기를 이야기를 하는데 사뭇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비장한 결의를 엿보는 것 같아서 이 단원들과 함께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저녁에는 4일간 숙소를 함께 할 단원을 배정하였다. 나는 전북 선생님인데 침술에 대가인데 일정상 한 번도 시술을 받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호텔에 짐을 풀고 첫 날 뒷풀이를 위해서 인근 포장마차에 가다.

이 곳이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자리이다. 나는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중국음식이 적응이 되지 않아서 몸상태가 그리 편치 않아서 조금 일찍 숙소에 들어오다. 그러나 많은 단원들이 늦게 까지 여흥을 즐기면서 서로 소통하고 이 곳에서 선배 독립운동가들의 기개를 본받으려고 힘차고 당당한 저녁시간을 보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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