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교실' 성남 은행중학교에서 무슨 일이?
[현장] 방과후 그들은 얼굴 맞대고 꿈을 키운다
▲ 경기도 성남 은행중학교 전경. 이곳에선 매주 정규수업이 끝난후 대학생 강사와 6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영어와 수학 등 공부를 해오고 있다. ⓒ 김종철
"자, 봐봐. 영어에서 중요한 것이 뭐라 그랬지?"
지난 21일 오후 5시 경기도 성남 은행중학교 3학년 1반. 송영찬씨(연세대 정치외교학과)가 학생들에게 묻는다. 그의 한손엔 영어 참고서와 하얀분필이 잡혀있다. 학생은 남여 5명씩 모두 10명. 한켠에서 "비(be) 동사요", "시제(時制)요"라는 답이 나온다.
송씨의 손이 곧장 녹색 칠판으로 옮겨갔다. "그래, 그렇지"라며 호응한다. 이번 수업의 주제는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동명사(Gerund)' 부분. 영어 표현과 문장 등을 제법 알기 쉽게 설명해 나간다. 학생들 호응도 좋다. 기자가 조심스레 교실 뒤쪽에 앉아 수업을 함께 들었다. 일부 학생이 힐끗 쳐다보다가도, 곧장 수업에 집중한다.
이 학교에선 올 3월부터 정규 수업이 끝난 후 대학생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여 이처럼 공부를 해오고 있다. 과목은 영어와 수학 두 과목이 중심이다. 공부에 의지가 있지만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치 않은 학생들이 대상이다. 물론 학생이 따로 부담하는 것은 없다. 이 학교에서만 모두 58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수업 듣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 성적도 올라 기뻐요"
▲ 은행중학교 드림클래스 3학년 A반. 대학생 강사인 송영찬씨가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김종철
2시간의 수업시간 중 쉬는시간을 틈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각각 5명씩이다. 기자가 '수업이 재미있느냐'고 묻자, 선뜻 답을 하지 않는다. 서로 힐긋 쳐다보며, 웃기만 했다.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많은 영락없는 그 또래 학생들이었다. 그리곤 "선생님이 훈남이신 것 같다"고 하자, 한 여학생이 큰소리로 "네, 맞아요"라고 답한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함께 웃으면서 곧장 분위기가 풀렸다.
정세라(15, 가명)양은 "1학기 때 선생님보다 훨씬 쉽게 잘 가르쳐주신다"고 하자, 옆자리 친구가 곧장 "그래, 그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양은 "작년까지만 해도 수업 끝나고 따로 학원을 다니거나 하지 않았다"면서 "올해부터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니 예전보다 흥미도 더 생기고 좋았다"고 말했다.
'학업성적에 도움이 됐느냐'고 묻자 그는 세 손가락을 펴 흔들며 "(영어점수가) 30점이나 올랐어요"라고 답했다. 다른 학생들에게도 물었다. 이세현(15, 가명)군은 "잘 모르겠는데, 점수는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군은 "예전에 한때 학원도 잠깐 다닌 적이 있는데, 학교에서 받는 이 수업이 훨씬 더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수업을 총괄하는 황애라 은행중 인성교육부장은 "민간 학원과 달리 수업을 맡은 선생님들이 대학생이다보니 학생들과 수업 이외 유대 관계 등에서 좀 더 정서적으로 나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황 부장은 "학생과 선생님보다는 편한 오빠와 누나와 함께 공부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학생들의 참여율도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2학년인 아들을 둔 학부모 정인숙(가명)씨는 이번 프로그램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수업 외 따로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면서 "작년 말에 학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소개해줬고, 아이와 이야기를 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어 "처음엔 그냥 '일반 과외려니 생각했다'"면서 "실제 성적도 올랐지만, 대학생 선생님과 서로 자신의 고민도 이야기도 하는 등 정서적으로도 도움을 받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학생 5명당 대학생 선생님 1명... 대학생엔 장학금 혜택
▲ 대학생 강사인 송영찬(연세대 정치외교학과)씨. 올 2학기부터 영어수업을 맡아하고 있는 그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 김종철
학생들에게만 도움이 있는 건 아니다. 수업을 맡은 대학생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은행중학교에만 송씨와 같은 대학생 선생님이 모두 12명이다. 수업받는 학생이 58명이니, 선생님 1인당 학생 수가 5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수업의 집중도 역시 높다. 수업을 맡은 대학생들은 주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4시간씩 이곳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물론 장학금 형태로 강사료를 받는다.
이날 기자와 만난 송영찬씨는 올 2학기부터 이 수업에 참여했다. 현재 살고 있는 서울 여의도에서 성남까지 오가는 데만 4시간이나 걸린다. 그럼에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송씨는 "처음엔 등록금이라도 벌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이 수업의 취지를 듣고,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과 공부를 해보니 정작 나에게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기업에서 이런 사업을 한다는 것에 갸우뚱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참여하면서 오히려 왜 정부가 나서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송씨는 많은 대학생들이 등록금 부담에 시달리며 비정규 아르바이트에 내몰리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또 온갖 스펙쌓기에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재능을 나눠주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다고도 했다.
신미자 은행중 교장은 "작년 11월부터 시범적으로 이 수업을 진행하다가 올 3월부터 보다 체계적으로 확대해 운영해오고 있다"면서 "수업 내용 등 질적인 면에서도 우수하다는 평가가 있으면서 이 수업을 들으려는 대기학생들도 많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런 제도나 방식이 생소하다보니 처음엔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담당 선생님의 열정과 학생, 학부모 등이 서로 믿고 꾸준히 따라와 준 덕택에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 3학년 교실에서 내다본 은행중학교 운동장 전경. 학교 부지가 다른 곳보다 높아 전경이 우수하고, 환경도 좋다. ⓒ 김종철
"서울 압구정동 학교에선 사업이 안 되더라구요" |
"서울 압구정동 학교에선 사업이 안되더라구요" 삼성 사회봉사단 드림클래스 관계자의 말이다. '드림클래스' 사업은 공부할 의지가 있는데도 가정 형편이 넉넉치 않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에게 영어, 수학 등 주요과목에 대한 학습을 무료로 지원하는 일종의 교육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교육비 지원 등의 차원을 넘어 직접 교육에 나선 것이다. 장인성 삼성사회봉사단 상무는 "영유아나 초등학교 등 기존 교육비를 지원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 틀이 마련된 것으로 본다"면서 "중학교부터 빈부격차에 따른 교육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의견에 따라 사업을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작년초부터 준비기간만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기업이 공교육에 직접 뛰어드는 데에 따른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사설 학원가 등 사교육 시장의 견제까지 있었다는 후문이다. 서울 강남 일부 지역의 중학교에선 아예 사업 자체가 성사되지도 않았다. 국내선 사례가 거의 없었다. 해외로 눈을 돌렸다. 미국의 경우 빈민촌 학생들의 학습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티에프에이(TFA, Teach For America)와 벨(BELL) 재단 등이 대표적으로, 이곳을 직접 방문해 이야기를 들었다. 오재현 드림클래스 사무국장은 "이들 두 재단 모두 학벌경쟁사회에서 공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직접 나서 초중고 학생들에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면서 "드림클래스 역시 이들 사업을 벤치마킹해서 우리 현실에 맞게 적용한 사례"라고 말했다. TFA는 지난 1990년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 학생들이 주축이 돼 빈민촌 학업 지원을 위해 교사봉사단을 만든 것이 계기가 됐다. 현재 39개 도시와 시골 빈민지역 공립 초중고 학생을 상대로 수학, 과학, 컴퓨터 등 주요 과목을 가르친다. 약 8200명의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1990년 이후 현재까지 이 프로그램을 받은 학생수만 300만 명에 이른다. ▲ 삼성 드림클래스 홈페이지(http://www.dreamclass.org). 왼쪽 상단의 '드림클래스' 로고의 빨간줄은 '공정한 출발선'을 의미한다. ⓒ 삼성 사회봉사단 삼성 드림클래스는 국내 대학과 손잡고 직접 강사를 뽑는다. 이들이 직접 해당 학교에 찾아가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들에겐 월 단위로 장학금도 지급된다. 일주일에 2회(4시간 강의), 한 달에 약 8회 정도 수업에 참여한다. 장학금으로 약 60여만 원이 지급된다. 오 사무국장은 "지난해 말부터 올 2월까지 3개월여 동안 시범적으로 전국 15개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해 본 결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뿐 아니라 교육 봉사와 기부 등의 인성 교육에도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올 3월부터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9월 현재 전국에 114개 학교에 4200명의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대학생 강사만 1030명에 달한다. 장 상무는 "앞으로 이번 사업을 보다 넓혀 전국적으로 중학생 1만5000명이 참여하고, 대학생 강사도 3000명까지 늘려 나갈 예정"이라며 "청소년들이 부모들의 경제적 여건과는 상관없이 미래에 공정한 기회를 가질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삼성은 지난 1989년부터 영유아 보육서비스 사업을 시작으로 2004년 초등학생 대상으로 한 공부방 시설 보수지원 사업, 고등학생의 학비 지원인 '열린 장학금' 사업 등을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 임직원 3000명이 오는 10월부터 지역 사업장별로 100여 곳의 공부방에서 초등학생 교사로 활동할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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