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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딸과 비서, 그리고 성공한 CEO

[한눈에 보는 2012대선①] 역사의 고비에 그들은 무슨 일을?

등록|2012.09.29 11:28 수정|2012.10.01 21:04
제18대 대통령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대선후보들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도 '알짜 정보'들만 모아서 '대선후보, 그것이 알고 싶다'는 컨셉으로 <한눈에 보는 2012대선> 서비스를 선보입니다. 유권자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 유권자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정보들만 취재하고 선별했습니다. 또한 이 정보들을 쉽고 명쾌하게 전달하기 위해 인포그래픽(Inforgraphics)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누리꾼들의 많은 관심과 의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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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

이들은 이제 80여 일 앞으로 다가온 18대 대선을 향해 사활을 걸고 총성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들이 내놓는 정책·공약과 미래 비전에 따라 표심의 향방이 결정된다. 동시에 유권자들은 이들이 역사의 고비 고비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된다.

'대통령의 딸'에서 '대통령 후보'가 된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72년 10월 유신 당시 박 후보는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이었지만, 1975년 인혁당 사건 때는 피살된 어머니 육영수씨를 대신해 청와대에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지기 직전 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했고, 2년 후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19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면서 박 후보의 보폭도 자유로워진다. 1989년 최태민 목사와 함께 육영수 추모단체인 '근화봉사단'을 조직한 것. 1997년 정권교체가 이뤄진 다음해 4월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대통령의 비서'에서 '대통령 후보'가 된 문재인 후보는 유신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가로서의 청년시절을 보냈다.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의 은사' 고 리영희 선생을 만난 것도 1972년 10월 유신 때였다. 1975년 인혁당 사건 당시 대규모 학내 시위를 이끌다가 구속됐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학내 시위를 이끌다가 5·17확대계엄조치 발동으로 다시 구속됐고, 유치장에서 사법고시 합격 소식을 들었다. 1987년 6·29선언 당시에는 부산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을 맡았고,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인권·노동 변호사로 활동했다.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고, 2004년 3월 '노무현 탄핵' 사건 당시에는 탄핵 대리인단 간사를 맡아 '노무현 지키기'에 나섰다.

성공한 CEO에서 정치신인으로 변신한 안철수 후보는 박정희 정권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1980년 민주화운동이 벌어질 당시에는 서울대 의대에 진학, 서울 구로동과 두메산골 무의촌에서 진료봉사 활동을 벌였다. 1987년 6·29선언 이후 민주화 열기 속에서 안 후보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기 시작했다.

1997년 정권교체 직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공학석사 학위를 받은 안 후보는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로 활동하면서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구조를 비판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터지기 직전 포스코 이사회 의장에 선임됐고, 앞서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오마이뉴스>의 '한눈에 보는 2012대선'은 이후에도 대선주자들의 신상정보, 정책과 공약, 핵심참모, 말말말 등의 주제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인포그래픽 기법을 활용한 이 서비스는 후보자들의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각 분류 지점에 커서를 올려놓으면 말풍선을 통해 세 후보의 정보를 한눈에 비교해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2004년 3월 노무현 탄핵' 란에 커서를 올려놓으면 세 후보가 당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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