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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집, 전동성당 앞에 서다

[김수종의 전주·나주 여행기 ②]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전주한옥마을

등록|2012.09.28 16:33 수정|2012.09.28 16:33
나는 전주한옥마을에 가는 사람들에게 늘 '전동성당(殿洞聖堂)'을 꼭 둘러볼 것을 권한다. 개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천상의 집이기 때문이다.

전동성당 전주한옥마을 ⓒ 김수종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함을 보여주며 곡선미가 아름답고 거대하며 화려한 건물이다. 호남지역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터로 조선 천주교 첫 순교자 윤지충을 비롯하여 그의 외종형 권상연과 유항검 등 많은 신자들이 참수당한 종교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전동성당우리나라 최초의 순교터 ⓒ 김수종


1908년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중국에서 온 벽돌 제조 기술자 및 건설인부 100여 명과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1914년에 비로소 외관 공사가 끝났다. 이후 계속 공사가 진행되어 1931년에 드디어 완공되었다.

정말 멋진 전동성당전주시 ⓒ 김수종


그 해 6월 축성식을 가졌다. 최근에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 결혼식 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이곳은 내부의 둥근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가 특히 멋스럽다.

전동성당스테인드글라스가 특히 멋스럽다. ⓒ 김수종


또한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 돌을 이용한 화강암 기단 위에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 외관과 중앙 종탑을 중심으로 작은 종탑들을 배치한 비잔틴 양식에 뾰족 돔을 올려 웅장함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성곽돌이 마구 쓰인 것이 마음 아프기는 하다.

전동성당 붉은 벽돌 건물이다 ⓒ 김수종


성당 앞의 하얀 그리스도상이 성당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다. 본당의 수호성인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다. 성당 외부에 볼만한 것은 5개의 성상으로 '성모동굴 및 성모상' '피에타상' '성모자상' '예수평화상' '한국최초의 순교자상'이 터를 잡고 있다.

전동성당전주읍성의 성곽돌로 기단을 쌓았다 ⓒ 김수종


아울러 성당 옆에 있는 '사제관(司祭館)'은 지난 2002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8호로 지정된 건물로 이것 역시 아주 볼만하다. 본당을 세운 뒤 2대 주임신부였던 라크루 신부가 1926년에 건축했다.

1937년부터 전주교구청사와 교구장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1960년 이후부터는 주임신부와 보좌신부의 생활공간으로 쓰였다. 3층 건물로 성당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특이한 것은 본당과 같은 북향 건물이다.

건물 중앙에는 2층 현관으로 연결되는 주 출입구가 있으며 1층의 출입구는 건물 남쪽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데 1층 부분은 깬 돌 허튼층쌓기를 하였고 창 주변은 벽돌로 둘러싸여 있다.

사제관전동성당 ⓒ 김수종


2, 3층 창대에는 화강석을 설치하였고 창틀 외곽은 벽돌로 리아스식 쌓기를 하여 치장했다. 지붕의 형태는 모임지붕으로 골함석 잇기를 했는데 지붕면 네 곳 중앙에 도머 창을 설치하였다.

르네상스 양식을 바탕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미한 절충식 건물로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운 외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당시의 건축기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본당과 더불어 역사적 가치가 큰 근대 건축물이다. 부럽다. 멋진 전동성당이 있어 전주사람들이.

전동성당을 둘러 본 우리들은 다시 길을 돌아 인근에 있는 전북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전북도지사를 지낸 '장현식(張鉉植)선생 고택'으로 갔다. 선생은 1896년 김제에서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현식(張鉉植)선생 고택’80년 된 고옥이다 ⓒ 김수종


인촌 김성수와 친해 서울의 중앙고 설립 당시 거액을 기부했으며, 고려대 설립 당시에도 사재를 기부했다. 이후 <동아일보> 창간 당시에는 인쇄 장비를 구입할 거금을 희사했다. 1919년 비밀결사인 대동단이 창단되자 운영 자금을 제공하고, 대동신문의 재정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어사전 편찬을 위해 3000원을 제공하여 옥고를 당했다. 해방 후 제2대 전북도지사로 재임 중이던 1950년, 한국전쟁 개전 직후 납북되어 북에서 사망했다. 사후인 1989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선생의 집은 원래 당신의 고향인 김제시 금구면에 1932년에 지은 가옥으로 아드님이신 장홍씨가 지난 2007년 전주시에 기증하여 전주향교 서쪽에 2009년 이축한 것으로 정면6칸, 측면5칸, L 자형 겹치마 팔작지붕으로 안채, 사랑채 등 4개동으로 이루어졌다.

1930년대 전통방식으로 건축한 한옥으로, 근대 한옥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특히 미닫이문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고안된 안채의 퇴창문은 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한옥 대목수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보기 드문 문이다.

아울러 목재가공수준이 매우 뛰어나고 정교해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이 집의 사랑채는 임실군의 '진참봉 고택' 사랑채를 옮겨 온 것으로 정확한 건축연도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진참봉 고택’ 사랑채전주한옥마을 ⓒ 김수종


안채는 용인민속촌 조성 시 매각되어 이축되었는데, 이 사랑채는 이웃 주민이 매수하여 생활해 오던 중 임실군 도시계획에 의한 도로개설사업 당시 철거 예정이던 건축물을 전주시가 인수하여 이곳에 이축했다. 이에 두 개의 집이 하나가 되었다.

나는 이축을 하여 새롭게 지어진 건물 같은 느낌이 드는 이 집의 마당에 서서 한참 동안 안채와 사랑채를 바라보았다. 공간의 미학이 아름답고 멋스러운 한옥이다. 따뜻함에 정이 많이 간다. 

시간이 되면 며칠 정도는 머물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탐나는 고택이다. 전주 참 좋은 곳이다. 이어 우리는 이웃한 '전주 동헌 풍락헌(豊樂軒)'으로 갔다. 음순당(飮醇堂)으로도 불리었으며 전주부윤의 업무공간으로 지금의 전주시청에 대응된다.

조선 초에 건립되어 영조 34년(1758년) 전주판관 서노수가 재건하고 1890년 화재로 소실된 후 이듬해인 1891년 전주판관 민치준이 중창했다. 1895년부터 전주군청사로 쓰이다가 1901년 음순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일제가 조선말살정책을 펴면서 1934년 민간에 매각되었다. 당시 동헌을 구입한 전주류씨 집안은 이를 완주군 구이면으로 옮겨 문중의 제각으로 사용했다. 이축 과정에서 아쉽게도 정면 한 칸이 소실되었다.

전주동헌풍락헌 ⓒ 김수종


전주시는 풍락헌을 다시 옮겨 오면서 고증을 통해 원형 그대로 복원하여 현재는 정면7칸의 팔작지붕 형태를 갖추고 있다. 동헌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한 전주시의 노력으로 소유주인 류인수 선생이 제각 건물을 2007년 전주시에 쾌척함으로써 한옥마을로 옮겨졌다. 동헌이 전주를 떠난 지 75년만의 귀환이었다.

동헌으로 120년 된 옛 건축물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현판의 풍락헌은 '조선왕조의 발상지 풍패지향(豊沛之鄕) 전주(豊)를 안락(樂)하게 하는 집(軒)'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이름인 음순당은 '임금의 덕이 마치 가장 순수한 술을 마신 것처럼 모르는 사이에 취해오는 관아'라는 의미다. 

동헌 건물답게 웅장하기도 하지만, 주변의 경관이 너무 좋고 역사 및 양반문화체험을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이 무척 많아졌다고 한다. 전주시는 현재 이곳을 '전통문화연수원'으로 꾸며 숙박은 물론 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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