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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에 들어가 차 한잔... 뭔 잠꼬대냐고요?

산골마을에 문화공간 만들고 있는 전남 장성 임동희씨

등록|2012.10.03 16:06 수정|2012.10.03 16:06

▲ 귀촌인 임동희 씨가 꾸미고 있는 주전자 모양의 카페. 그는 이 카페를 문화공간으로 꾸미고 싶다고 했다. ⓒ 이돈삼


언뜻 주전자 같았다. 신데렐라가 탔던 호박마차 같기도 했다. 카페라는데,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운영자는 어떤 사람일까. 지날 때마다 궁금했다. 막연히 멋진 사람일 것이라 생각만 했다.

그들을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한눈에 봐도 예술가 스타일이었다. 산골마을의 카페 운영자는 조각가 임동희(45)씨와 김경희(45)씨 부부였다. 카페 이름은 '에느로겔'. 누구에게나 편안한 '나그네의 샘'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백양사에서 장성읍으로 가는 길목,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대악리에 있다.

▲ 주전자 모양의 카페 앞에 선 임동희·김경희씨 부부. 산골마을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이돈삼


▲ 카페 에느로겔의 내부. 장작난로에서부터 윗층으로 오르는 계단까지 철제로 꾸몄다. 재료도 거의 모든 게 폐기물이나 재활용품이다. ⓒ 이돈삼


"당초엔 로버트 태권브이 모양의 카페를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고려청자를 본뜬 주전자와 사발을 떠올렸죠. 솔직히 돈이 목적이라면 이렇게 안 만들었어요. 오래도록 남을 예술작품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임씨의 얘기다. 카페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공사기간을 정해놓고 밀어붙이지 않았다. 밑그림을 토대로 해서 그날그날의 느낌을 더하고 뺐다. 카페의 모양을 주전자 형태로 해서 실내장식부터 했다. 화장실은 밖에 사발 형태로 따로 배치했다.

내부 시설은 전공을 살려 철제조각품으로 배치했다. 재료도 폐자재와 산업폐기물을 주로 활용했다. 출입문은 수도꼭지로 만들었다. 탁자와 의자 심지어 화장지걸이까지도 독특하게 만들었다.

방문객 누구나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했다. 자칫 차가운 느낌을 주는 철제작품이지만 따뜻한 느낌을 받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카페 바깥은 청색 도자기 조각을 붙이고 있다. 아직 다 붙이지 못했다.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틈나는 대로 붙여나갈 계획이다. 짬이 나지 않으면 당분간 그대로 둘 생각이다. 전형적인 슬로의 삶이다.

▲ 임동희씨 집에 설치된 우편함. 이것은 못 쓰는 가스통으로 만들었다. ⓒ 이돈삼


▲ 에느로겔 마당에 서있는 철제 조각작품. 이 마을로 귀촌해 살고있는 조각가 임동희 씨의 작품이다. ⓒ 이돈삼


"자동차문화가 싫었어요. 많은 생각과 풍부한 정서를 사라지게 만들더라구요. 세상에 찌들지 않는 예술을 하고 싶었거든요. 젊은 날에 미술계의 폐단도 많이 봤구요. 도시보다 시골생활이 그리웠죠. 그래서 들어왔어요."

임씨 부부는 지난 2003년 생활터전 찾기에 나섰다. 작품활동과 농업활동이 함께 가능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이곳에 터를 닦고 작업실을 꾸몄다. 카페도 이때부터 짓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하다시피 했다. 그때그때 완성된 철제조각 작품은 카페 야외마당 적당한 곳에 가져다 놓았다.

생계를 위해 인근에 감나무를 심었다. 면적이 6000㎡에 이른다. 카페 앞마당에 방죽도 만들었다. 거기엔 연을 심었다. 카페에서 쌈밥용 재료로 쓸 것들이다.

"작지만 아담한 공간으로 꾸미고 싶어요. 조각공원처럼요. 별도의 전시관도 만들어 젊은 작가들한테 개방도 하려고요. 이렇게 제가 터를 닦아 놓으면 다른 작가들도 한 명씩 들어오지 않겠어요? 자연스럽게 예술인마을이 형성되겠죠."

임씨의 꿈이자 희망사항이다.

▲ 임동희 씨가 산골에 꾸며놓은 주전자 모양의 카페 에느로겔 풍경. 왼쪽 다리 밑으로 연지가 조성돼 있다. ⓒ 이돈삼


▲ 임동희 씨가 작업실에서 목재조각품을 다듬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을 대학동문전에 내놓을 계획이다. ⓒ 이돈삼


벌써 가까운 곳에 분재원 하나가 들어왔다. 예술인의 입주가 이뤄지면서 공원의 틀도 갖춰지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무료 미술교실도 열 생각이다. 대상은 문화와 예술체험 공간이 부족한 지역의 어린이들이다.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흙 빚기, 조각작품 만들기 등을 고민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 같아요. 이곳으로 들어오길…. 한때 미술계에 염증도 느꼈었는데요. 지금은 오히려 선·후배들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어요. 계속 부대꼈더라면 더 멀어졌을 텐데 말입니다. 생활도 재밌어요. 보람도 있고. 앞으로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작가로 살고 싶습니다."

환하게 웃는 그의 말과 표정에서 더불어 사는 생활방식이 묻어난다. 산골마을의 새로운 문화공간에 대한 기대도 부푼다. 그의 꿈이  뜻대로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 주전자 모양의 카페 에느로겔과 임동희 씨의 작업실 풍경. 장성읍에서 백양사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 자신의 산골생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임동희씨. 느리게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조각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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