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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서 상까지 받은 숲, 역시 다르구나

[한국의 아름다운 숲⑪]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와 송강정

등록|2012.10.09 14:28 수정|2012.10.12 08:32
<오마이뉴스>와 <㈔생명의숲국민운동>은 7월부터 12월까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 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편집자말]
[기사수정 : 12일 오전 8시 30분]

▲ 학교 규모에 비해 운동장과 숲이 넓은 담양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 ⓒ 김현자


▲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 운동장 주변의 나무들 ⓒ 김현자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개교한 학교로 운동장도 꽤 넓고, 나무들도 무척 많은 전형적인 시골학교였다. 30여 년 전에 졸업한 데다가, 예전의 모습은 전혀 없는 학교로 바뀐 지 오래라 그저 아련하게 떠오를 뿐이다.

아련한 기억이지만, 여러 동의 교실 중 교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교실 뒤쪽의 포플러 숲과 이즈음 교정의 많은 부분을 노랗게 물들일 정도로 제법 굵었던 은행나무 두 그루. 너도나도 가방 던지기 일쑤이던 축구골대 옆 굵은 플라타너스는 그래도 제법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들이다. 그런데 솔직히, 나의 초등학교를 떠올릴 때면 늘 아쉽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일제 때 나무로 지어진 것들이라 '걸음 한 번에 삐걱 한 번'인 곳이 많았다. 해진 팔꿈치나 무릎에 천을 대고 기운 것처럼 복도며 교실 여기저기에 판자를 덧댄 곳도 많았다. 교실 바닥에 난 구멍으로 연필이나 지우개가 빠져 아까운 마음에 납작 엎드려 교실 밑을 들여다보면 쥐와 눈이 마주칠 때도, 쥐가 교실까지 타고 올라와 아이들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열악한 교실들이 이미 오래 전에 바뀐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라던 많은 나무들까지 죄다 잘라냈다. 그래서 고향집에 갈 때마다 학교 앞을 지나갈 수밖에 없지만 이후 다시 들어가 보지 않게 됐다.

올가을 초, ㈔생명의숲국민운동 아름다운 숲 마을숲 부문 수상을 한 담양 관방제림(천연기념물 제366호)에 갈 날짜를 잡으며 2008년에 아름다운 숲 학교숲 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에서 어쩌면 내가 잃어버린 추억 속 학교와 나무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기대했다.

'관방제림(천연기념물 제366호)'과 '메타세쿼이아 길'을 만나고자 담양에 가기 며칠 전부터 설렜다. 담양까지 가서 잠깐이라도 들르지 않으면 후회하고 후회하다 결국 언젠가 다시 날을 잡아 다녀와야만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을 모르고 시간이 부족하면 택시를 타고서라도 들러야 겠다며 담양으로 향했다.

관방제림과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는 담양읍 담양군청에서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전남 담양군 봉산면 양지리 135번지)까지는 약 10km. 자동차로 12분 걸렸다. 중앙분리대에 어린 대나무들이 무리지어 심어져 있는 담양읍을 벗어나 벼가 익어가는 전형적인 시골도로를 잠깐 달린 후 학교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30분. 학교에 도착해서야 관방제림의 고목들과 메타세쿼이아 길의 운치에 홀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마냥 걸었던 것이 후회됐다.

▲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의 그네 ⓒ 김현자


▲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 운동장과 학교를 둘러싼 숲은 이처럼 경계가 없다. 흔한 울타리도 없고. 볼라벤 피해를 입었다. ⓒ 김현자


▲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의 숲이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것은 정말 잘된 일 같다. 적어도 폐교와 더불어 사라지는 일은 없을테니까. ⓒ 김현자


플라타너스에서 마주한 나의 어린시절

학교는 적막했다. 학교로 향하며  "그새 폐교되었을지도 모른다"며 신순호씨(담양군청 녹지과)가 아쉬워했는데(농촌 인구감소의 어쩔 수 없는 현실까지 조금 이야기하며)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시골분교는 그저 적막하기만 했다.

"도시 학교에는 대부분 담장이 있고, 시골학교들도 담장이나 울타리 정도는 있는데, 이 학교에는 울타리가 전혀 없어요.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있는 숲에 둘러싸여 있어서 숲속의 학교란 느낌도 많이 들고. 대부분 나무가 높게 자라지 말라고 어느 정도 자라기 시작하면 가지를 잘라주는데, 이 학교의 나무들은 가지를 잘라내지 않고 키워서 그런지 나무들의 키가 큰 것이 제 개인적으로는 참 마음에 들어요. 사실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나무들의 가지를 치는데, 나무들에게도 그것이 반가울까 라는 생각을 하죠. 사람들이 크게 간섭하지 않아서 이 학교의 나무들은 무척 행복해하며 자랐을 것 같지 않아요?"(신순호씨)

신순호씨의 말을 들으며 숲과 운동장의 나무들을 번갈아 느끼며 걸었다. 그러던 중 아름다운 학교 숲으로 선정될 당시의 자료 사진 한 장(아이들이 숲속에서 노는)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그 순간 운동장 옆 숲에서 사진 속에서처럼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놀고 있는 것 같은 환영이 펼쳐졌다 급하게 사라졌다.

이 학교에도 오래된 학교 어디에나 있는 굵은 플라타너스와 느티나무들이 많았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운동장 둘레에도 플라타너스가 무척 많았다.

그리고 은행나무도 보였다. 6학년 가을 어느 날, 교장선생님과 소사 아저씨가 운동장 한편의 은행나무들의 은행을 털어 껍질을 까고 가마솥에 삶아 2천 명이 넘는 전교생들에게 은행 두 알씩을 나눠준 추억이 떠올랐다.

▲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의 숲 일부 ⓒ 김현자


▲ 담양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 부설 유치원과 키 큰 나무들 ⓒ 김현자


▲ 애써 다듬어 키우지 않아 자연스런 멋이 많고 키가 큰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의 운동장 나무들 일부 ⓒ 김현자


자료에 의하면 이 학교의 총면적은 32,521㎡(약9840평). 이 중 숲 면적은 약 2만㎡(6050평)이다. 수치만 봐도 무척 큰 숲이고, 직접 둘러봐도 교실과 학생 수에 비해 엄청 큰 숲이다. 플라타너스와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소나무, 화백나무, 개잎갈나무 등 다양하다는데, 개교 당시인 1941년에 심어진 나무들과 개교 전부터 있었던 100년이 넘는 나무들이 어우러져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난 8월 말 우리나라의 많은 지역들을 할퀸 볼라벤 피해를 입었다. 30여 그루 나무가 쓰러졌고, 그 나무 주변 나무 잎들이 쏟아져 내리는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 학교가 아름다운 학교 숲에 선정된 것은 2008년. 당시 복식 3학급에 전체학생 수 26명, 유치원생 5명, 교사는 5명. 아쉽게도 내년에는 폐교가 된단다. 현재 6명인 6학년들의 졸업과 함께. 2012년 9월 현재 총 학생 수는 11명, 교사는 3명이다. 폐교가 되면 현재의 학생들은 4km가량 떨어진 봉산면사무소 인근에 있는 봉산초등학교로 다닐 것이라고 한다. 병설 유치원은 몇 년 전에 이미 폐교했다.

"봉산면 사람들만 아니라 담양이나 광주 같은 곳에서 모임이나 경기를 하러 오기도 하고, 가족들끼리 놀러오는 사람들도 많아 여름 휴가철이나 주말에는 학교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몇 년 전 아름다운 숲에 선정되고 소문이 나서인지 그냥 숲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좀 많이 오는 편입니다. 아직 어떻게 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수련시설이나 자연생태교육,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시설 등으로 활용될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교되어도 숲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학교 관계자)

학교에 갔다 온 며칠 후 학교 관계자에게 학교숲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더니 이처럼 말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솔직히 내가 다닌 초등학교보다 나무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그래서 훨씬 아름다운 숲이었기 때문이다.

광주역에서 오후 7시 30분에 출발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도로확장을 이유로 죄다 잘려나가 버린 내 고향의 플라타너스가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 송강정 ⓒ 김현자


▲ 송강정 오르는 계단 ⓒ 김현자


가사 문학사 깃든 학교 숲, 정철의 정취를 느끼게 하네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에서 담양 읍내 쪽 600여 미터 거리에 송강정(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1호)이 있다. 송강정은 선조 17년에 동인과 서인의 싸움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송강 정철이 머물렀던 곳. 이 학교 숲이 가치가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문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가사 문학권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윤선도,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시인 중 한사람으로 불리는 송강 정철은 가사 문학사에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송강 정철의 주요 작품으로 관동별곡, 성산별곡, 훈민가,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이 있는데, 이 중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송강정에서 지었다니 송강 정철의 정취를 느끼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곳 같다.

송강정은 자연석을 가지런하게 다듬어 만든 계단을 몇 굽이 올라가야 하는 높은 곳에 있다. 정자 주변에는 대나무와 배롱나무가 많았는데, 대나무 가까이에 있는 배롱나무들이 대나무처럼 길게 자란 것이 재미있었다. 여하간 배롱나무 꽃이 필 때(7~9월) 가면 훨씬 멋있을 것 같다.

정자는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그다지 크지 않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중재실(문이 달린 방)을 갖춰 마루가 좁기 때문인지 정자는 실제보다 더 작게 느껴지는 것 같다. 송강정과 죽록정이란 현판이 앞과 옆에 각각 걸려 있어서 설명을 보니, 송강 정철이 머물면서 지은 건물이 아니라 원래 있던 죽록정을 고쳐 지은 것이라고.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에 가기 전부터 새 건물을 지으며 오래된 나무들을 몽땅 잘라내 버린 내 초등학교의 아쉬움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건물의 내력이 담긴 이전의 현판을 함께 걸어놓은 마음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졌다. 송강 정철이 자신의 이름 남기기에만 연연하지 않고 누군가의 정취도 존중하는 그런 고결한 성품이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봉산초등학교 양지분교와 송강정에 가려면 광주 광천터미널에서 3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84번, 담양터미널서 322번 버스를 타고 쌍교나 봉산초등학교 앞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담양터미널에서 송강정까지는 8km가 조금 넘는다. 광주에서 담양터미널에 가려면 광주역 후문에서 1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311번 버스를 타면 되는데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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