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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와 싸울 순 없잖아?

'세대간 전쟁'을 피하려면 긴축, 절제, 상호 양보해야

등록|2012.10.06 15:24 수정|2012.10.06 15:24
경제가 심상치 않다. 미국경제가 5년 전 금융위기 이후 탄력을 잃었으며 과도한 국가채무와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유럽국가들도 버블붕괴와 이에따른 긴축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미국·유럽과 달리 고속성장을 자랑하던 중국과 인도도 성장속도가 눈에 띄게 주춤해졌다. 한국도 해마다 급증하는 국가 및 공공기관 채무, 일자리 부족, 양극화,성장속도 둔화가 성난 파도처럼 다가서고 있다.

경제에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요즘 우리가 겪고있는 세계적 차원의 경제적 어려움이 경기사이클 상 저점 -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상승전환이 눈앞에 예고된 - 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실 두려운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홍역은 때가 되면 지나가는 일과성 재난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또한 오랜 시간 누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 경제적 침체는 건강한 사람이 이따금 겪는 감기몸살이 아니라 오랜 세월 잘못된 식생활,생활태도 등으로 암을 키워온 환자가 몸의 이상징후를 발견하고 본격적인 투병생활을 목전에 둔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근대적 자본주의가 태동한 이래 많은 불황 및 자산가격 붕괴 등을 겪었지만 지금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경제적 침체는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 되리라는 불길한 조짐에 동의하는 경제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음울한 전망의 핵심에는 바로 '베이버부머세대의 퇴장'이 놓여있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시사주간지 Economist 는 이번 호에서 'The next crisis ; sponging boomers'(베이버 부머들이 남긴 경제적 유산이 세대간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제목부터 우울하다. 베이비 부머들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다음 세대에게는 과도한 경제적 부담만 지운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따르면, 베이비부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삶을 살았다. 더 많은 교육과 높아진 소득, 과거세대에 비해 줄어든 자녀수 등에 힘입어 경제적 과실을 한껏 누렸다. 늘어난 인구는 생산력 증대→기업매출 증가→노동자 소득증가 의 선순환구조의 첫 출발점이었다. 물론 미국 얘기이다. 그러나 한국도 구조적으로 유사성을 갖기 때문에 우리의 스토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베이비부머들도 여러 차례 경제적 위기를 겪었지만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빠른 회복에 힘입어 무난히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들 세대가 노후자금마련을 위해 자산들을 매각하면서 이것이 자산가격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베이비부머들과 달리 부를 축적할 루트를 차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이 누렸던 경제적 영화가 one - off gains , 일회성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쉽고 거칠게 말하자면, 베이비부머들이 후세대 입장에서 보면 '먹튀'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기사에서 IMF가 발표한 놀라운 자료를 언급한다. 평생동안 근로자가 내는 '세금과 복지혜택의 상관관계'를 계량화 한 것인데, 미국인의 경우 현재 65세는 해당 연령 전체로는 3330억 달러, 한국 돈으로는 400조원 정도의 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220만달러, 한국돈으로 25억 원 정도 규모이다. 다시 말해 지금 65세 노인은 그동안 낸 세금을 다양한 복지혜택 등으로 실질적으로 다 돌려받을 뿐 아니라 추가로 일인당 25억원 정도를 국가로부터 받아낸다는 것이다.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어서 눈을 의심했다. 미국의 베이비부머 첫 세대의 경우 실제로는 국가에 낸 세금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재정지원을 받는 셈이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40대까지는 비교적 괜찮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며, 젊은 세대로 갈수록 부담이 커지고 있다. 현재의 경제구도는 후세대를 모두 빚쟁이로 만드는 셈인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수십년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경제회복을 이유로 세율을 꾸준히 내렸기 때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한다. 미국의 경우 근로자의 소득세가 1981년 18%에서 지난해는 11%로 낮아졌다. 이에비해 의료보장 등 복지혜택은 늘어났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적자는 늘어났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미국에 비해 복지의 역사가 짧고 현재 그 혜택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기때문에 미국의 케이스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과 평균수명 상승을 감안할 때, 결국 한국도 큰 틀에서 별 차이가 없을 듯하다.

노인들이 누리는 의료보험, 국민연금, 그리고 기타 여러가지 노인들을 위한 혜택을 고려한다면 결국 지금 50대 이후 세대들은 그들이 일하면서 냈던 세금보다 더 많은 부분을 돌려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답답한 위기상황에 대해 해답 아닌(?) 해답 3가지를 제시한다. 빠른 경제성장,긴축, 인플레이션.

첫번째로 경제성장. 아무리 빚이 많아도 많이 벌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구도로는 빠르고 높은 경제성장은 어렵다. 재정적자가 주원인이다. 하버드 대학의 라인하르트,로코프 두 교수에 따르면, 공공부채가 GDP의 90%를 넘어서면 경제성장률 1% 이상을 갉아 먹는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부채가 늘어나면서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비중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둘째, 긴축(austerity)이다. IMF는 미국의 재정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혜택을 35 % 줄이고 동시에 세금을 35%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조치는 미국의 삐걱거리는 정치시스템에 비춰보면 삼키기엔 너무 큰 알약이다. 게다가 해마다 그 비중이 높아지는 노인인구는 이러한 강도높은 긴축을 애당초 가능하지않게 만든다. 미국의 경우 지금 17%인 65세 이상 인구는 2030년이 되면 26%가 된다고 한다. 노인들이 자기 밥그릇을 뺏길려고 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비중은 지난해 현재 11.4%, 2030년 24.3% 이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과 인구구성비율이 유사해지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출구없는 상황은 세대간 전쟁의 암울한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는 배경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의 사례는 미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선진국가들이 동일하게 겪는 진통이며 한국도 비슷한 궤도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지금 대선국면을 맞아 여야 3인의 유력주자 모두 복지를 외치고 있다. 저소득층 지원도 늘리고 중산층도 돕고 대학 등록금은 반값으로 후려치고. 그런데 그 많은 돈은 도대체 어디서 나올까? 공공기관 부채를 줄이고 정부예산도 줄여야하고 아울러 세금도 올려야만 재원이 마련된다. 부자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하겠지만 중산층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세부담을 각오해야한다. 그런데 국민과 정치인 모두, 세금은 외면하고 복지만 외친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문제라고 해서 고개를 돌려봐야 순간의 위안일 뿐 해법은 될 수 없다.

<이코노미스트>가 제시하는 세번째 해법은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은 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금리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이는 부채가 있는 젊은 세대에게는 환영할만한 상황이지만 은행예금이자로 노후를 꾸리는 노인들에게는 타격이 된다.

결국 세 가지 해법을 얘기하고 있지만, 빠른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은 현실성이 없는 대안이다. 두번째 해법인 긴축이 가장 원칙적이고 논리적으로 맞는 것이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점차 벌어지고 있는 세대간 간극, 그리고 서서히 먹구름을 몰고 오며 긴장의 수위가 높아지는 세대간 전쟁의 암울한 시나리오. 어디서 해법을 찾아야할까? 사실 해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절제와 긴축, 상호 양보. 과연 우리는 자기희생을 전제로 세대간 대타협을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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