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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의 진실은 우리가 짊어지고 갈 짐"

[현장] 장준하 선생 천도재... 참가자들 '진상 규명', '재조사' 촉구

등록|2012.10.06 18:30 수정|2012.10.07 10:46

▲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에 맞서 싸우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고 장준하 선생의 추모비가 세워진 곳에서 10월 6일 추모행사가 열렸다. 임진택 판소리꾼이 판소리 '박정희와 장준하'를 공연하고 있다. ⓒ 박소희


"박정희가 쉬지 않고 부정부패 일삼으니 장준하도 쉬지 않고 부정부패 타파아~."

고요하던 계곡이 임진택 판소리꾼의 우렁찬 목소리에 흔들렸다. 그는 6일 오후 처음으로 판소리 '장준하와 박정희'를 공연했다. 37년 전 장준하 선생이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경기도 포천시 약사계곡이 그 무대였다.

추모비 앞에 차려진 제사상에 절을 하던 장 선생의 큰며느리 신정자(64)씨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시아버지를 잃은 며느리는 마음이 아파 사건 현장에 찾아오지 못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날 때가 되어서야 올 수 있었다. 신씨는 "나무가 이렇게 많은 줄도 몰랐다"며 "당시 시신은 정말 깨끗했다"고 말했다.

"(유골이 세상에 드러난 시기가 신기하다는 말에) 이상하긴 해요. 지난해 여름 우면산 사태가 날 정도로 비가 많이 올 무렵에 아버님 산소가 무너졌어요. 절친한 김준엽 전 고려대학교 총장님도 같은 해에 돌아가셨고…."

남편 백찬홍(52·씨알재단 운영위원)씨와 함께 온 임미리(46)씨도 "장준하 선생님 산소가 무너졌다는 얘기를 듣고 '김준엽 총장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선물인가'하는 생각에 뭉클했다"고 얘기했다. 임씨는 고려대 사학과 88학번으로, 김 총장에게 배운 적은 없지만 "80년대 학교를 다녀서 (장준하 선생과 김준엽 총장 이야기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명진스님 "장 선생 유골은 우리에게 '진실 밝히라'는 사명"

▲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동안 사건 현장을 방문하지 못했던 장준하 선생의 큰며느리 신정자씨는 10월 6일 추모행사 도중 눈물을 흘렸다. ⓒ 박소희


▲ 10월 6일 경기도 포천시 약사계곡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추모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불경 <반야심경>을 외며 장 선생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다. ⓒ 박소희


현장을 둘러 본 명진스님은 참가자들에게 "장 선생이 이곳에서 사망하셨다는 게 믿어지냐"며 "와보니 권력이 저지른 일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일갈했다. 또 "장 선생은 유골로 우리에게 '진실을 밝히라'는 역사적 사명을 내려주신 것"이라며 "여기 계신 분들은 우연히 오셨을 테지만, 여기 온 인연으로 그 짐을 짊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준하 선생님 원통히 숨지신 곳'이라고 쓰인 추모비 옆에 있는 거대한 바위는 시신을 검안한 장소다. 2003~2004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장 선생의 죽음을 조사했던 인권운동가 고상만씨는 "여기서 4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시신이 발견됐고, 그날 함께 왔던 김용환씨 등 호림산악회 사람 넷이 나무와 겉옷으로 들것을 만들어 선생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당시 장 선생의 추락사고를 목격했다던 김용환씨는 조사과정에서 몇 가지 의문을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고, 답변을 바꿨다. 죽음의 진실을 알려줄 다른 단서들도 부족했다. 고씨는 "국가기관의 무책임한 외면에 장준하, 김용환 두 명의 피해자가 있는 것 아니냐"며 재조사를 주장했다.

야당, '유일한 목격자' 김용환씨 국감 증인 채택하려 했지만...

▲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씨는 10월 6일 경기도 포천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천도재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 박소희


그러나 대선을 두 달여 앞둔 시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독재에 저항하다 숨진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재조사하는 것은 새누리당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전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야당은 장준하 선생 유족과 김용환씨 등의 증인 채택을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은 거세게 반대했다. 아예 국감이 열리지 않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장 선생의 장남 장호권씨는 현장 방문 전 경기도 포천시 백운산 흥룡사에서 열린 천도재에서 "잘못된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바로 세워 미래에 화합하려면 시대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정의로운 일꾼을 이번 대선에서 뽑아야 한다"며 "그래야만 장준하 선생과 희생된 분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도재에 참석한 200여명은 박수로 화답했다.

한편 이날 천도재를 주관한 '고 장준하 선생 천도재 봉행 및 의문사진상규명촉구불교위원회'는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과 더불어 장준하 선생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기 위한 모금운동을 진행 중이다.

봉행위원장인 혜문스님은 '고 장준하 선생 비석 건립 모연문'이란 글에서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전범이 되신 선생의 뜻을 되새기고, 의문사의 진실 규명을 촉구하기 위한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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