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난생 처음 입원을 했습니다, 이유도 거시기한...

술 때문에 다쳐 입원까지...가족들에게 더 잘하렵니다

등록|2012.10.09 09:29 수정|2012.10.09 09:30

▲ 난생처음 술 때문에 괴상한 몰골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 신광태


참으로 오랜만에 사무실에 출근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난생처음 병원에 입원을 했고, 병상에서 일어나 6일 만에 사무실에 나갔으니 말입니다.

출근하자마다 "괜찮으세요?"라고 묻는 직원들의 물음에 "모두 바쁜데 미안해"라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정말이지 벌여놓았던 일도 있고, 또 큼직한 행사도 있었는데, 계획서만 덩그러니 만들어 놓고 추진은 모두 직원들이 했으니. 직원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미안한 심정입니다.

"등산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앞에서 안내하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과장님은 토요일과 일요일, 휴일도 없이 단체관광객들의 등산 관광안내를 했던 모양입니다. 이것 또한 내가 계획했던 일인데, 과장에게 떠맡긴 꼴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던 걸까요

지난 10월 2일, 퇴근시간이 지나자마자 직원들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는 제의를 했습니다. 신규직원이 교육을 마치고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분명히 그 직원인데 술에 취한 건 나 혼자 뿐이었나 봅니다.

우리나라 술자리 문화는 직급이 높을수록 하급직원들에게 한 잔씩 다 돌리고 건넨 술은 다 받아 마셔야 하니까 그만큼 더 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안 받으면 "혹시 내게 불만 있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 것 같아 다 받아 마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그날은 공교롭게도 옆 테이블의 평소 친분이 있던 분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테이블에서 저 테이블로 몇 번을 오갔던 기억이 납니다. 또 다음날은 개천절이기 때문에 출근 때문에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술에 취하게 했던 한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당신이 죽지 않아서 내가 이 생고생이지, 이 원수야

▲ 병원이 정말 싫은건, 늘 팔에 주사 바늘을 꼽고 있어야 하는 일 그리고 정말 중환자가 되어 간다는 약해지는 생각...서둘러 퇴웠했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 신광태


"내 손 좀 잡아줄래? 팔이 저려 미치겠어."

보통 술에 떡이 되어 돌아온 다음날 아침은 지각을 할 정도로 늦잠을 자는 편인데, 그날은 팔의 통증 때문에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났습니다. 

"당신 어제 무슨 일 있었는지 기억나?"
"아니 모르겠는데 어떻게 내가 집에 왔지?"


집사람의 말은 어제 내가 술자리에서 화장실에 가다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졌답니다. 그리고 화장실 바닥에 이마를 부딪쳤고, 잠시 기절을 했으며 코피를 심하게 흘려 의료원에 다녀왔답니다. 그런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당신 팔이 저린 건 어제 넘어질 때 손을 바닥에 짚어서 일거야."
"그러면 손바닥이 아파야지 왜 팔이 이렇게 저릴까?"
"내가 의사가 아니니 알 수는 없지만 걱정 말고 자! 내가 이따가 파스 사다 붙여줄게."


지금까지 아내가 내게 했던 말은 그렇게 틀린 적이 없었던 탓에 그러려니 믿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심한 통증에 잠이 안 옵니다.

"미안한데, 나 좀 태우고 춘천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가면 안 될까?"

병원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던 내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은 느낌' 이마를 부딪쳤는데 코피를 심하게 흘렸다는 것도 그렇고, 팔이 저린다는 게 상식선에서 이해가 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응급실에 어떻게 갔는지 잘 기억도 안 납니다. 당연히 양치도 머리도 감지 않은 몰골에 집에서 자던 그 복장으로 병원을 찾은 겁니다.

"넘어져 이마를 부딪쳤는데 팔이 저리고 통증이 심해서 왔어요."
"네~ 저쪽에 앉아서 대기해 주세요."


오죽했으면 응급실을 찾아왔을까만, 응급실 접수자는 태연하기만 합니다. 한참을 아픈 팔을 잡고 기다려 CT와 MRI촬영을 마쳤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이마를 부딪치며 넘어질 때 목의 5번과 6번 관절에 이상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신경계통인 팔로 전달이 된 것이구요. 수술보다 주사와 약물치료로도 가능할 것 같으니까 일단 입원하시죠?"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병원입원 신세가 된 겁니다. 병실은 신경외과. 병실에 들어서자 어느 신병이 들어왔는지 궁금한 듯 모든 환자와 가족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합니다. 그날 아내는 늦은 밤까지 자리를 같이하다 다음날 출근을 위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신이 죽지 않아서 내가 이 생고생이지, 이 웬수야!"

위문을 오셨는지 아니면 괴롭히길 작정하고 오셨는지, 옆 병상 침대에 누워 식물인간처럼 허공만 응시하는 (환자) 할아버지를 두고 병문안 오신 할머니는 밤새도록 같은 말만 되풀이합니다. 아마 젊었을 때 할아버지께서 할머니께 잘해 드리지 못했나 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지금까지 집사람에게 잘해 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불현듯 겁이 덜컹 났습니다.

술 마시고 다쳤으면 병원비도 아빠가 내야 하는 거 아냐

▲ 퇴원하는 날, 병실에서 별로 먹지 못했다고 몸부신 시켜 준다더니 (딸과 아내)지들끼리만 맛있게 먹습니다. 그래도 난 마냥 고맙기만 했습니다. ⓒ 신광태


다음날 (별로 나아진 것도 없으면서) 집사람에게 괜찮으니까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와서 '이 웬수야' 할까봐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집사람은 그날 오후 나를 찾았습니다.

"애들은 뭐래?"
"솔직히 말해도 되나?"


병원에 아빠가 입원해 있다는데 전화나 메시지 한 통 없다는 게 섭섭한 마음에 집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술 마시고 다친 사람 뭐 하러 위문 가느냐고 하더라. 그리고 병원비도 당신 용돈에서 내래."

이해 할 만합니다. 허구한날 퇴근길에 술만 마시고 귀가했지, 제 정신으로 퇴근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날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섭섭함 보다 미안함이 앞섭니다.

아이들은 얼마나 화가 났으면 병원 입원 중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큰 아이는 역시 딸이라 다른 가 봅니다. 퇴원하기로 한 날 제 엄마와 같이 찾아와 싱긋 웃습니다. 아마도 어이없다는 뜻이겠지요.

"아빠가 변변치 못해서 미안해!"
"아빠! 내가 술 마시지 말라는 소리는 안 해. 근데 정도껏 마셔야지. 아빠 혼자만 있는 게 아니고 엄마도 있고, 동생도 있고, 나도 있잖아."


지금까지 '술 좀 작작 마셔라'라며 노래를 부르던 아내 말에는 귓등으로 들었는데 딸 아이의 말에 왜 내 콧등이 이토록 시큰해지는 걸까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빠가 퇴원했다는 말을 들었는지, 기숙사에 있던 아들 녀석이 집으로 들어옵니다.

"못가서 미안해! 위로문자를 보내려고 했는데 휴대폰을 선생님이 빼앗아서 못 보냈어."

가족 모두 다 제 역할을 이토록 충실히 해 왔는데, 가장이란 나는 대체 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나! 병상의 어느 할머니께서 할아버지를 향해 "당신이 죽지 않아서 내가 이 생고생이지, 이 웬수야!"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젠 정말 가장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계기였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