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노조 깨기, 청와대와 총리실까지 나섰다
청와대 개입 정황 '발전노조 투쟁백서' 발간... '민간인 사찰' 이영호 비서관 회의 주재
▲ 발전노조가 입수한 동서발전의 회의 문건,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차장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 비서관이 노조파괴를 위한 회의를 주재했다. ⓒ 발전노조
한국전력이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산하 공기업인 5개 발전회사 노조 파괴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정부는 2년 전 조합원들의 정치성향을 '사과·배·토마토'로 분류·관리해 파문을 일으킨 한전의 자회사 동서발전㈜의 노조파괴 공작에도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8일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한국발전산업노조(위원장 신현규)와 홍영표 민주통합당 의원 등은 고용노동부 국정감사가 열리는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전노조 노동탄압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2009년 9월17일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주재 노사관계회의와 같은 달 24일 이영호 청와대(BH) 고용노사비서관 주재 회의에서 '발전노조 강경대응'이 주문된 이후 발전회사 노조파괴를 시작했다.
박영준 국무차장은 당시 회의에서 "해당기업에서 고소고발하면 경찰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응 당부"라고 밝혔다. 총리실 민간인사찰의 '자칭 몸통'인 이영호 전 비서관은 "철도공사는 적극적으로 노조대응을 하고 있으나, 가스와 발전은 계획만 있고 실천은 없다"며 "인사권·경영권에서 양보하지 말고 원칙적으로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발전회사들은 민주노총 탈퇴와 노조탄압 과정에서 강제발령·드래프트 제도·인사고과 등 인사권과 경영권을 활용했다.
청와대, 고용노동부, 지식경제부, 경찰까지 개입
5개 발전회사 가운데 동서발전이 지난 2010년 11월 29일 작성한 '발전노조 탈퇴를 통한 기업별 노조 설립(플랜 B)'를 살펴보면 청와대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지식경제부, 경찰청 등도 노조파괴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문건에는 '(고용노동부) 강남지청 최대한 사전 협의(로비)로 1심 이후 반드시 신고필증 수령.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통한 압력 행사, 김○○ 접촉 예정"'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김○○'은 경찰청 정보과 형사로 확인됐다.
또 동서발전의 박아무개 노무 담당 차장은 '노조 관련 선진화 추진실적' '동서발전 동향보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해 수시로 지식경제부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박 차장은 "노조에서 밝힌 첨부파일은 잘못된 것"이라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검찰 조사 결과 무혐의로 밝혀졌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과정은 조합원투표로 민주노총 탈퇴가 부결되자 다른 방법으로 회사에 우호적인 노조를 세우는 계획이 진행됐음을 보여준다.
한전은 또 각 자회사들의 경영평가 기준으로 '민주노총 탈퇴노력'을 제시하며 노조파괴를 압박했다. 한전이 작성한 '발전회사 노무관리 평가 결과'를 보면 노조 지부위원장 선거에서 민주노총 탈퇴공약을 제시하면 '+1점'을 주고, 회사가 지원한 후보가 당선되면 'x2점'(두배)를 주는 식으로 경영평가를 실시했다. 민주노총 탈퇴 후보 발굴 노력과 경영진의 민주노총 탈퇴 의지, 실무진의 노력까지 비계량 점수로 배점·평가했다.
이 평가에서 노조원들을 '사과·배·토마토'로 구분해 파문을 일으킨 동서발전은 해당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배는 '겉도 하얗고 속도 하얗다', 사과는 '겉은 붉고 속은 하얗다', 토마토는 '겉도 빨갛고 속도 빨갛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와대가 개입하고 한전이 적극 추진한 노조파괴 결과, 발전노조 조합원 81%가 민주노총을 탈퇴해 6500명이던 조합원은 1300명으로 줄었다. 현재 발전 자회사 5곳 모두 기업별노조가 설립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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