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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보낸 열 달은 문명의 충돌이었지만..."

조영서 전 평화자동차 총사장, '한반도평화아카데미'에서 강연

등록|2012.10.09 22:06 수정|2012.10.10 09:53

▲ 10월 9일 한반도평화아카데미에서 강연 중인 조영서 전 평화자동차총회사 총사장. ⓒ 박소희


조영서(47) 전 북한 평화자동차총회사 총사장이 태어나 처음으로 입원한 곳은 평양의 한 병원이었다. 2008년 1월부터 2009년 10월까지 그는 평화차 총사장으로 평양에서 거주했다. 처음 10개월간은 그야말로 "문명의 충돌"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문화도, 체제도 달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조 사장은 결국 취임 한 달만에 병원 신세를 졌다.

"'총사장이란 막강한 위치로 갔음에도 스트레스로 입원할 정도면 남북 경제협력은 거의 안 된다'고 여겼다. 당장 그만 두고 서울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조 전 사장은 9일 늦은 오후 서울시 중구 인제대학교 인당관에서 열린 '한반도평화아카데미' 강연에서 "중국 사회주의를 10년 경험하고 온 저마저 못하면 누가 할 수 있겠냐는 생각으로 '좀 더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마침내 그는 부임한 지 1년 사이에 평화차를 350% 정도 성장시켰다. 통일재단이 1998년 설립한 평화차는 2009년 5월 처음으로 한국에 이익금 50만 달러를 송금했다.

눈부신 성과를 일궈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조 전 사장은 "사명감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북한에 진출한 이집트 기업 오라스콤과 평화차를 비교하며 "우리는 통일을 준비하고, 남북 경협을 위해 갔다"며 "(평화차와 달리 오라스콤은) '이익'만 보고 들어간 게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당초 프랑스회사의 시멘트 채광권을 인수하며 북에 발을 들인 오라스콤은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동통신 사업을 시작했다. 북한 내에서 휴대전화를 100만 대가량 개통할 정도로 사업이 성장했지만, 더 이상 성장을 못해 원래 계획했던 류경호텔 건설을 포기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

"아랍권 4위로 알려진 회사도 이익만 보고, 직장인 개념으로 갔다가 이질적 문화를 겪으니 대규모 실패로 끝난 것이다. 사명감 있는 사람이 북한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가야 한다. 한국 사람은 북에서 분명히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조 전 사장은 "당시 평화차 총사장과 통일부 장관을 택하라고 했다면 평화차 총사장이 더 값질 만큼 하루하루 역사가 만들어졌다"며 "사명감과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혼신의 힘을 다 걸고 해 볼만한 무대가 북에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군사 안보가 중요하지만, 경제 안보는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남북 격차가 크지 않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며 "오늘날 대한민국도 경제 안보를 지키려면 북에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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