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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먹고 '형편껏' 내는 밥집, 도와주세요

[인터뷰] 심재훈 '문턱없는밥집' 매니저

등록|2012.10.11 16:29 수정|2012.10.11 16:29

▲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문턱없는밥집 ⓒ 문턱없는밥집


돈이 없어도 점심 한 끼는 '형편껏' 내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자본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은 유기농가의 농산물로만 밥을 짓는 곳으로 유명한 '문턱없는밥집'이 폐점 위기에 처했다.

문턱없는밥집은 본래 보건복지부 산하 학술·장학 재단인 '민족의학연구원' 재단의 한 부서로 소속돼 있었는데,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사회에 의해 폐점 결정이 내려졌다. 지난 9월 19일 전 직원 해고 결정과 함께 10월 31일까지 폐점하라는 통보를 문서로 받은 상태다. 민족의학연구원은 문턱없는밥집뿐만 아니라 함께 운영하던 재활용품 전문점인 '기분좋은가게'까지도 폐점을 결정했다.

지난 2008년 5월, 민족의학연구원 이사회는 문턱없는밥집과 기분좋은가게를 정관에 목적사업으로 넣자고 결정했다. 그런데, 당시 사무국장이 보건복지부에 신고만 하고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인 등기를 했다. 다시 말해 사업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가게를 운영했다는 이야기. 이는 보건복지부의 감사에 의해 밝혀졌다.

사무국장의 실수라고는 하지만, 민족의학연구원은 정관에 없는 사업을 한 것이 돼 1억6천만 원에 달하는 세금고지서를 받게 됐다. 법인이 신고된 것과 다른 목적의 사업을 하게 되면 취득세와 등록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문턱없는밥집과 기분좋은가게가 장학·학술재단인 민족의학연구원의 목적사업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냈고, 이사회는 더이상 사업을 펴지 않기로 결정했다.

민족의학연구원 자체도 운영 예산이 빠듯한 상황에서 큰 액수의 세금을 내야 하는 데다가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지난 9월 이사회는 두 가게에 대한 폐점 결정을 내렸다.

2007년 5월에 문을 연 문턱없는밥집은 그동안 점심식사에 한해 '낼 수 있는 만큼'의 돈만 받고 식사를 제공하고, 밥알 한 톨, 고춧가루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숭늉으로 닦아서 먹는 발우공양 형식의 '빈그릇 운동'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독특한 운영 철학으로 인해 신문과 방송에도 수차례 소개됐다. 지난해 여름에는 안철수·박경철·김제동씨가 방문해 밥을 먹는 장면이 TV 전파를 탔고, 박원순 시장은 페이스북이나 강연 등에서 문턱없는밥집을 사회공동체적 관점을 가진 의미있는 식당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 문턱없는밥집이 지금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돈 때문이다. 한 달 평균 200만 원의 적자가 꾸준히 발생한다. 적자는 주로 점심때 생긴다. '형편에 맞게' 밥값을 내라는 것은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인데, 정작 형편이 되는 사람들도 2000~3000원씩만 내거나 아예 안 내고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동체'나 '함께 살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익 안 난다"... 이사회, '폐점' 결정

▲ 심재훈 문턱없는밥집 매니저 ⓒ 문턱없는밥집


화학조미료와 유전자 조작 작물을 일절 쓰지 않고 유기농 재료로만 만든 이곳 점심의 원래 가격은 8000원이다. 그런데 제값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저녁때는 유기농 쌈밥·묵은지 김치찜·생선구이·청국장을 비롯해 주안상·다정상·채식 메뉴 등 국내산 친환경 식재료를 이용한 다양한 메뉴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 9월 28일,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문턱없는밥집에서 심재훈 매니저를 만났다.

"문턱없는밥집은 '소셜 미션'을 가지고 운영되는 사회적 기업이에요. 우리의 사회적 미션은 '친환경 먹을거리 생산으로 땅을 살려온 유기농가의 도시 판로를 열어주고, 도시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기층민들에게 하루 한 끼의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강조한 말이다.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적 기능과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점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친환경 유기농이 중요한 이유는 흙 속의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서 그래요. 건강한 땅에서는 흙 1g 속에도 1억 마리 이상의 미생물이 삽니다. 그런데 농약을 치면 3000만 마리도 못 살지요. 농약을 친 땅에는 반드시 화학 비료를 뿌려요. 미생물이 활동을 안 하니까, 대신 석유에서 추출한 질소, 인산, 칼리를 공급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땅이 사막화되는 것입니다."

문턱없는밥집에는 그렇게 땅을 살려서 지은 농산물들만 들어올 수 있다. 자본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은 유기농가의 농산물을 연 1억 원어치 구매한다. 친환경 유기농단지는 곧 생명의 터전이며, 그것이 지켜질 때만이 우리도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다는 철학 때문이다.

'소셜 미션'을 가지고 운영되는 사회적 기업

"도시의 기층민에게 하루 한 끼 형편껏 내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점심을 제공하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역할이에요. 높은 지위에 있거나 돈이 많은 사람만이 도시에서 살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기층민들이 없다면 우리 사회도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문턱없는밥집의 두 번째 사회적 미션은 이들 기층민의 생명과 건강을 하루 한 끼 정도는 '형편껏' 내는 값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한 젊은이가 찾아온 적이 있다. 미안하지만 돈을 낼 수 없는 처지니 밥을 좀 달라고 하더란다. 일주일간 그렇게 매일 점심을 얻어먹던 그는 일주일이 지나자 5000원씩 점심 값을 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일자리를 새로 구한 것이다.

"그때 정말 뿌듯했지요. 어떻게든 자기 생명을 지키고 있으면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 사회는 매우 불확정적인 사회다. 복지 자체도 충분치 않지만,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노숙인들은 보살핌이 전해질 전달 체계가 있지만, 법적으로 부양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아무리 어려워도 혜택을 받을 길이 없다. 밥이 없으면 당장 굶을 수밖에 없는 처지. 문턱없는밥집은 그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작고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그런 분이 우리 밥집에 와서 밥을 드셨더라면..."

땅 살리고 지역주민 살리는 게 밥집의 역할

▲ 점심 때 하는 '빈그릇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깨끗이 비운 그릇들. ⓒ 문턱없는밥집


문턱없는밥집의 철학을 굳이 꼽자면 그것은 '공생'이다. 인간과 땅이 같이 살고, 내 주변의 이웃과 같이 사는 것. 이곳이 공동체에 대해 늘 고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턱없는밥집이 위치한 마포구는 공동체 활동이 유난히 활발한 지역. 문턱없는밥집도 이곳에서 마포 도시농업 네트워크 활동을 하면서 음식쓰레기를 퇴비화해 텃밭에 공급하고 있다.

"사실 점심때는 음식 쓰레기가 나오지 않아요. 조리할 때 껍질, 꽁다리까지 다 쓰거든요. 손님들 식사는 숭늉으로 찌꺼기까지 닦아 먹는 발우 공양 형식으로 하고 있고요. 저녁 때 조금씩 나오는 것을 퇴비 통에 발효시켜서 텃밭에 사용하는 거지요. 모든 음식 쓰레기를 그렇게 처리해서 우리 식당은 몇 달 동안 쓰레기 봉지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1년에 15조 원어치라고 한다. 한국의 연간 자동차 수출액이 40조 원을 좀 넘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40조 원이 수익이 아니라 판매 금액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동차를 팔아서 남는 이익이 음식물 쓰레기에 버리는 돈보다 많지 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 그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20억 명 이상이 굶어 죽어가고 있잖아요. 우리는 적게 먹고 다 먹자는 원칙으로 운영을 하지요. 반찬 세 가지에 국, 유정란 하나 올라가는 것이 기본 밥상이에요. 문턱없는밥집의 또 하나 좋은 점은 이렇게 음식 관련해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들을 함께 모여 토론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에요. 우리 사회가 소통이나 공동체성이 많이 없어지고 있잖아요. 그것이 도시민들의 외로움과 불행의 원인이기도 하지요."

문턱없는밥집은 밥만 먹는 곳이 아니라 배움의 공간이기도 하다. 유기농 음식 만들기 과정·바른 먹을거리 교육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고, 요청이 오면 강사가 찾아가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 학교나 단체에서 체험을 오는 경우도 있다.

"단지 교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식당을 운영하며 직접 실천하고 있다는 데 저는 의미를 두고 싶어요. 철학도 우리가 만들었고, 실천하고 운영하는 주체도 우리지요. 가끔 아이들이 엄마와 같이 와서 그릇을 깨끗이 닦아 먹고 나서 빈 그릇을 들어 보이며 말해요. '엄마, 나 지구를 살렸어'라고요. 그럴 때면 우리 자신이 깜짝 놀라요. 이런 밥집이 없어지면 안 되겠죠?"

공생과 공동체 운동의 중심지, 이런 밥집이 없어지면...

▲ 문턱없는밥집 벽면에 붙어있는 '빈 그릇을 만드는 방법'. ⓒ 문턱없는밥집

심 매니저는 문턱없는밥집의 회생 가능성을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다. 다른 직장보다 급여가 적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직원은 없다고. 문턱없는밥집의 존재 가치를 이해하고 찾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번 들어온 직원이 그만두는 일도 좀처럼 없다. 지난해 12월 노동부의 사회적 기업 지원 기간이 끝나고 어려움을 겪었을 때, 문턱없는밥집을 위해 스스로 그만둔 세 명이 전부다.

"우리 주방장님은 평생 가정주부만 하시다가 여기가 첫 직장이에요. 주방장님이 오시고 나서 우리 음식 맛이 정말 좋아졌는데, 집에서만 발휘하던 솜씨가 이렇게 의미 있는 일에 쓰인다면서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세요.

우리 최민구 요리사는 미국 유명 요리학교까지 나온 사람인데, 너무 미안한 보수를 받고도 기꺼이 함께 해주시는 분이고요. 이렇게 어려움에 처했는데 떠나시는 분이 없어요. 다들 어떻게 해서든 이 밥집을 살려서 끝까지 같이 해보겠다는 마음뿐이지요."

연구원 측은 지난 9월부터 원장이 직접 나서 직원을 개별 면담하면서 권고사직을 유도했다. 심 매니저를 비롯한 문턱없는밥집 직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노조를 구성했다. 지난 9월 28일 구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민족의학연구원 측과 싸우는 게 노조 설립의 이유는 아니다. 그저 대항력이 없는 상태에서 문턱없는밥집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하려는 게 그 이유다.

노조는 앞으로도 시위나 피켓팅 같은 활동을 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노조를 만든 것은 싸우기보다는 시간을 벌려는 목적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정리 해고를 하려면 노동자 대표를 세워서 협의를 하도록 돼 있는데, 그 기간이 최소한 50일 이상이기 때문이다. 노조는 그 사이 시민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문턱없는밥집을 인수할 계획이다.

문턱없는밥집은 10월 13일에 '밥집 살리기 주민대책위'를 열 예정이다. 10월 27일에는 후원의 밤 행사도 열 계획이다. "많은 분들이 와서 대책위에 이름을 걸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심 매니저는 당부했다. 사람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돈이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다. 문턱없는밥집의 월 손실과 매달 재단 측에 내야 하는 임대료까지 합쳐 월 500만 원 정도가 필요한 상황.

가장 좋은 것은 마을대책위에서 인수주체 조직을 구성해 문턱없는밥집을 '마을식당'으로 만드는 것.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비영리기관과 결합해서 독립법인으로 운영하거나, '마음이 맑은 기업'이 인수를 하거나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게 심 매니저의 바람이다.

"문턱없는밥집 '시즌2'에는 '친환경 요리사 과정' 등 수강료 수입이 들어오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해서 자립을 할 계획이에요. 이곳을 '마을 사무실'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 조금만 도와주면 충분히 유지 가능합니다. 땅을 살리고 생명을 지키는 사회적 효용을 생각하면 이곳은 그 돈 이상의 훨씬 큰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이곳을 지켜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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