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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을 위해 춤을!...이렇게 살았어요

[회식잔혹사③]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힘 '회식'입니다

등록|2012.10.12 20:19 수정|2012.10.13 16:49
'회식' '접대' 등의 단어는 실생활에서 활용도가 높다. 가끔 피하고 싶은 약속이나 사람이 있을 때 '오늘 갑자기 회식이 잡혀서... 어떡하지?'를 써먹으면 효과는 확실하다.

그건 감기가 들어서라거나 집에 제사가 있어서, 엄마 생신이라서라는 것들보다 덜 궁색해 보이는, 결정적인 한 방이다. 상대방도 비교적 쿨하게 받아들인다. (네가 정말 회식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 그럼 할 수 없지'라고.

서울에서 일하던 때다. 팀원 중에 한 과장이, 친한 팀원들끼리 한잔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아내가 이해해 줄 것 같지 않다. 고민하는 그에게 넌지시 찔러준다. "회식이라고 하세요." "음... 그래야겠다." 그날은 그렇게 '자체 회식'이다. 솔직해져 보자. 종종 이런 일이 있지 않았던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앞서 말한 그 과장은 맞벌이를 하며 초등학생 딸 둘을 키우는 사람이다. 하루는 퇴근 무렵에 야근하는 그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가 아파 열이 나니 빨리 약 사서 집에 가라는 것이다. 문제는 팀장이 회식을 부르짖고 있다는 것. 그는 안절부절못한다. 옆에서 보는 내가 다 속이 탄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회식'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불가항력'이라는 힘을 가졌다.

내게 있어 회식의 기억은 곧 '쏘맥'이다. 하고 많은 술 중에 왜 쏘맥을 마시는 걸까. 주종을 결정하는 것은 그날 회식자리의 주관자, 즉 팀장, 본부장, 사장 등의 취향이긴 하지만, 주로 쏘맥이 낙찰된다.

이유는 바로 회식자리의 속전속결을 위한 가장 퍼펙트한 주종이기 때문이다. 소주를 계속 먹다 보면 금방 취할 것 같고, 그렇다고 맥주를 먹자니 도리어 취하지를 않는다. 맹숭맹숭하다. 흡수율을 높이고 취기 오르기까지 적당한 속도감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들의 결합이 아닐까.

"위하여" 삼창, 누굴 위한 '위하여'인가 

▲ 폭탄주 ⓒ 권우성


업무상 조선소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았는데, 한국의 내로라하는 D조선사의 회식, 접대 방식이 바로 그렇다. 안주로 무얼 먹든 우선 빈속에 1인당 석 잔의 쏘맥을 털어 넣어야 비로소 진정한 회식이 시작된다. 늦게 오는 사람은 앉자마자 그 석 잔을 먹어야 자리에 낄 '자격'이 주어진다.

우리한테 맞춰서 너도 정신줄 빨리 놓아라, 이거다. 그런데 힘겹게 쏘맥을 다 털어 넣고 나니 어디선가 쌈짓돈 꺼내듯 '조니워커 블루라벨'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오 마이 갓. 이러지 마십시오.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만세 삼창을 부르듯 잔을 부딪치며 '위하여'를 세 번 목놓아 부른다. 그 '위하여'가 무엇을, 누구를 위하여 인지는, 건배 제의를 하게 되면 비로소 분명해진다.

언젠가 멋있는 건배사에 관한 아이폰 어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가 막혔던 적이 있는데, 아무리 멋진 말로 포장한다 해도 결국은 그 자리의 제일 높은 사람에 대한 '찬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식은 업무시간 이후 연장되는, 아니 조금 더 가열찬 서열 재확인에 다름 아니다.  

부장은 우아한 손목 스냅을 이용해 쏘맥을 제조하시어 '하사'하여 주시는데, 차장, 과장, 대리를 거쳐 막내 사원쯤 오게 될 때쯤이면 막내는 이게 누구의 컵인지, 몇 명의 남자의 숨결이 담겨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두 손으로 공손히 '하사품'을 받아들고 단숨에 들이킨 후 잔을 돌려드려야 한다. 술과 안주가 떨어질까 싶어 막내는 '이모'를 애타게 부르지만, 이모는 안타깝게도 종종 너무 바쁘다. 부장의 눈이 적당히 풀려간다. 테이블 위 마지막 소주 한 병을 보며, 이 한 병으로 모든 것이 끝나기를 기대해본다.

아직 끝나지 않은 회식, '충성주'가 남았구나

▲ kbs에서 방영된 <오작교형제들>의 한 장면. ⓒ kbs


그런데 안 끝난다. '충성주'라는 것이 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테이블 위에 2단으로 잔을 탑처럼 배치한다. 1단은 맥주가 들어있는 컵이고, 2단은 양주가 들어있는 잔이다. 이것을 어떻게 배합하느냐. 머리를 숙여서 테이블 밑으로 넣은 후 뒤통수로 테이블을 가격한다.

양주잔이 퐁퐁 잘도 맥주컵으로 들어가 한몸이 된다. 곱게 섞인 폭탄주를 올려드린다. 충성 몇 번 더하다 뒤통수 남아나겠나 싶다. 누군가가 '노래방'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저 인간 취했구나, 때릴 수도 없고…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회사 근처의 노래방을 가는 줄 알았는데, 부장은 택시 타고 삼십 분은 가야 하는 부장의 집 근처에 '정말 좋은 노래방'이 있다고 한다. 속으로 생각한다.

'여기도 좋은 노래방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누가 말해주지 않을래요. 집에 가는 길이 더 멀어진다고요!!'   

'부장님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노래방 기계에 예약해본다. 물론 '부장님의 노래'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예약되어 있다. 김흥국의 '호랑나비'가 나오자 한 과장이 일어났다. 낼모레 나이 마흔이지만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남자다. 대학 때부터 밴드 활동을 하며 우리끼리 술을 마시러 가면 새벽까지 LP를 고르며 DJ를 자청하는 사람이다. 부장 때문에 힘들다며 어제도 나를 붙들고 술 먹다 울었는데.

오늘은 한 마리 '호랑나비'가 되었다. 비틀대며 춤을 추는 과장을 보며 손뼉을 치지만, 뭔가 맘 속이 짠해 온다. 씁쓸하다. 부장이 마이크를 들고 일어나자 우리는 모두 한일전 파도타기 응원하듯 앞다투어 일어나 그의 전용 백댄싱 팀이 된다. 내 안에 이런 댄스본능이 있었다니 놀랍다. 스텝이 척척 나온다. 회식의 힘은 놀랍다.

내 18번인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자 아저씨들끼리 블루스를 '땡기기' 시작했다. 남자들끼리의 블루스도 참 보기가 그렇지만, 나한테 손을 내밀지 않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마침내 '사망자'들이 속출한다. 드디어 자리의 끝이 보인다. 집에 가면 새벽이 밝아올 것 같다.

여러 팀들이 모여 있는 사업부 전체 회식을 하게 되면, 조금 달라진다. 부장의 주변은 어느새 썰물 빠진 듯하다. 쓸쓸해 보인다. 다들 사장, 본부장, 다른 팀 팀장들과 눈 맞추느라 술잔을 든 유목민이 돼 떠돌고 있다. 본의 아니게 '왕따'가 된 부장은 며칠 후, 다시 소규모 회식자리에서 '왕'으로 귀환한다.

여성의 경우 회식 자리에서 종종 성희롱을 경험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아는 선배의 회사 동료는, 회식 자리에서 취한 남자 동료의 손이 어둠을 틈타 어깨를 돌아 가슴 쪽으로 오더란다. 정중히 경고를 했다. 그런데 뭔가가 또 느껴지자, 결국 참지 못하고 앞에 있던 노래방 책자로 머리를 갈겼다.

"하지마! 하지 말라고, 이 자식아! 퍽퍽!" 

그 다음 날 출근해서, 그는 그녀 앞에서 얼굴을 못 들었다. 주변의 이런 사례들을 얘기하려고 보면, 아마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여성들에게 회식은 조금 더, 즐겁지만은 않은 자리일 수 있는 것이다.

회식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음식을 먹음. 혹은 그런 모임. 이라고 나온다. 혼자 먹지 않고 함께 모여 음식을 먹는 것은, 그것이 혼자보다 즐겁자고 하는 일이다. '혼자만' 즐거운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함께'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서로를 존중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회식의 목적은 소통의 진일보다. 딱딱한 회의탁자에서 못다 한 얘기를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해보자는 거다.

맨정신에 소통이 먼저 되어야 한다. 술잔을 돌리며 정신줄을 함께 놓는다고, 술잔을 하사하시고 블루스를 땡긴다고 소통이 될 리가 없다. 아니면 사전적 의미대로 그냥 음식만 먹고 빨리 집으로 가자. 우리의 간은 소중하고, 당신 부하직원의 애가 약도 없이 아빠를 기다리며 누워있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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