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들과 함께라면, 이 가을도 외롭지 않겠네

[리뷰] 대중음악의 홍수 속에서 만난 인디음악

등록|2012.10.15 10:00 수정|2012.10.16 10:50
대중의 취향은 어쩜 이렇게도 '인스턴트 커피믹스'와 닮아 있을까. 이미 시장을 장악한 몇몇 브랜드 커피 믹스를 우리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 마신다. 광고에 노출된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 인스턴트 커피의 판매율도 올라가듯, 모두 "예"라고 말할 때 혼자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획일화된 사회에선 정말 간단치 않은 일이다.

이런 대중의 경향은 '커피'라는 한 가지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입으로 마시는 것이 그렇듯, 귀로 듣는 것에도 똑같은 경향이 나타난다. 눈만 뜨면 대중매체를 통해 들리는 노래들은 대부분은 '그 노래가 그 노래'다. 음악 포털사이트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앨범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귀에 익숙한 멜로디, 자주 사용되는 코드, 각종 기계 사운드의 테크닉과 연주법 등이 그야말로 한철 메뚜기처럼 유행을 따른다. 우리는 그것을 대중기획사들이 양산해낸 '성공한 상품'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대중음악의 식상함과 단조로움을 벗어나고픈 사람들은 국외로 눈을 돌리거나 국내 인디음악에서 그 목마름을 달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대형기획사가 아닌 레이블과의 만남을 통해 인디음악이 르네상스(?)를 열었다. 이제는 좀 더 '새로운' 음악이 필요해진 것이다. 인스턴트에 길들여져 선택을 모르던 사람들은 점차 '개인의 취향'에 맞는 커피전문점을 찾아 자신만의 레시피에 맞는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획일화'에 질린 사람들의 일부가 '개성화(individuation)'를 부르짖기 시작한 것이다. 발라드와 댄스를 제외하면 무대에 오를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다양한 장르들을 아우르고, 중심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변방에서 열심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인디음악은 이제 새로운 대중음악의 대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디지털 음악 산업의 약진과 홈 레코딩의 활성화로 인하여 음악시장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홈 레코딩은 창작자들이 보다 쉽게 음악을 만들고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고, 디지털 유료 음악 사이트의 성장은 마니아들에게 보다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정식앨범과 달리 하루가 다르게 무수하게 쏟아지고 있는 디지털 싱글 앨범 발매율만 눈여겨보더라도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겉으로만 보기엔, 창작자와 수용자 모두에게 훨씬 더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된 시스템으로 보인다. 그러나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왜 여전히 배가 고프고, 새로운 음악을 찾고자 하는 수용자들의 입맛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할까.

거대 자본에 의해 양육된 특정 부류의 음악들만 제외하곤 대다수의 뮤지션들은 자신을 홍보할 기회조차 찾기 힘들고, 심지어 최근 발표작이라 해도 음원 사이트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배치되는 설움을 겪기 십상이다. 꼭꼭 숨어 있는 음악들을 찾아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일부 마니아들을 제외하곤 기존과 다른 음악을 가려내 찾아 듣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또한 디지털 산업의 팽창은 음악적 완성도가 부족한 상태의 곡들도 양산해내는 데에도 기여했다. 최근에 새로운 창작에 몰두하기보다 원곡을 다시 부르는 '리바이벌'이나 '리메이크'가 성행하는 것 역시 이러한 시장변화와 관련이 깊다.

그러나 완성도 여부와 달리, 홈 레코딩의 보급은 창작자나 수용자 모두에게 훨씬 더 강한 자기 스타일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기촉제가 되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미 선택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실지, 보다 디테일한 자기 스타일의 드립커피를 마실지는 그 또한 취향의 탓이겠으나, 분명 거대 자본의 힘으로 '획일화된 현실'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 필자처럼 대중음악에 식상한 사람들에게 최근 즐겨 듣는 인디음악 몇 곡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인디'에 대한 기준은 다소 애매하거나 엇갈릴 수 있겠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이고 판단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40(Forty) - 넋발매 : 2011.11.04 / 유통사 : 인플래닛 ⓒ 인플래닛


① 40(Forty) - 넋

업계 1위를 달리는 유명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있다가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 위해 과감히 홀로서기를 택했다는 알앤비 싱어 송 라이터, 40(Forty). '천재 뮤지션'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그의 작곡, 노래, 연주 실력은 단연 뛰어나다. 낭중지추(囊中之錐)다. 한국에서 이런 탄탄한 실력파 뮤지션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마흔 살이 되었을 때라야 자신의 '음악'에 대해 비로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겸손과 신념이 점차 대중에게도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넋'이라는 곡은 그가 최근에 발표한 솔직하고 관능적인 스타일의 노래들과 달리 가장 한국적인 감성을 담고 있는 알앤비 노래다. 처음 들을 땐 정엽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되지만, 들을수록 정통 흑인 소울에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해외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없다는 것이 새삼스러울 만큼 그 목소리의 유연성과 소울감이 놀랍다. 이것에 대해 그의 소속사에선 '난로 위 아이스크림 같은 목소리'라는 비유를 달았다. 그의 음악을 들어본다면 그가 왜 좋은 대형기획사를 마다하고 험난한 홀로서기의 길을 선택해야 했는지 짐작하게 될 것이다.

더필름 - 어떻게 지내, 은(恩)?발매 : 2012.01.13 / 유통사 : 에이앤지모즈 ⓒ 에이앤지모즈


② 더 필름(The Film) - 어떻게 지내, 은(恩)?

제13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싱어 송 라이터. 디지털 음원 세대에 맞게 왕성한 창작열을 통해 생활 속에 잠재해 있는 감성을 깨우는 노래들을 줄줄이 발표하면서 적지 않은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다. 유행하는 기존의 '발라드'와는 분명 다른 색깔과 온도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의 노래들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 느껴지는 크고 작은 떨림을 포착해내며 듣는 이들에게 영화 속 한 장면에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잔잔함과 담담함이 그의 음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에 붙은 별칭은 그의 이름과 같은 '뮤직필름'. 노래 한 곡이 이러한 영상미는 가져올 수 있다니! 아마도 그것은 그의 풍부한 감수성과 뛰어난 묘사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테테 - Romantico발매 : 2011.03.02 / 유통사 : Sony Music ⓒ Sony Music


③ 테테(Tete) - Romantico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투개월'이 부르면서 주목을 받았던 노래. 팝적인 멜로디와 플라밍고 스타일의 기타연주에 몽환적인 그의 목소리가 얹어지면서 환상적인 시공간을 부유(浮遊)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노르웨이의 인디 포크팝 남성 듀오인 'Kings of convenience'의 곡들과도 닮은 듯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그는 분명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을 것이다. 3~4분의 짧은 시간 동안 신비롭고 몽롱한 세계로의 여행을 다녀올 수 있으리라. 'Sunshine'과 'Eclipse'도 함께 들어보길 권한다. 아무나 흉내 내기 어려운 보컬의 '톤'이 무엇보다 돋보이는 곡이다.

이루펀트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2012.07.20 유통사 로엔엔터테인먼트 ⓒ 로엔엔터테인먼트


④ 이루펀트(Eluphant)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

힙합과 보컬이 어떻게 절묘하게 결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곡. 숨 막히는 도심을 벗어나고픈 어느 몽상가의 꿈속을 들여다보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 몽상가의 꿈에는 멀지 않은 곳에 닿을 수 있는 은하수가 등장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그 별들 사이로 보이는 건 희뿌연 서울의 풍경들이다. 우리는 가끔씩 우주로의 여행을 꿈꾸지만 '넥타이'와 '별빛' 사이가 아스라하다.

에브리싱글데이 - 부럽지 않아 발매 : 2011.07.22 / 유통사 : 미러볼뮤직 ⓒ 미러볼뮤직


⑤ 에브리 싱글데이(Every Single Day) - 부럽지 않아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밴드라고는 믿기지 않은 세련미를 지닌 인디 락 그룹. 도시 속에서 홀로 걷는 '뚜벅이'들의 자유로운 발걸음을 상쾌하고 발랄하게 표현한 곡이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헝클어진 머리가' 잘 어울리는 도시의 자유인을 상상하면 금세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앨범에 있는 다른 곡들은 일렉트릭 사운드가 가미되어 이곡보단 훨씬 강한 비트와 템포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데이브레이크 - 들었다 놨다 발매 : 2010.08.05 / 유통사 : 네오위즈인터넷 ⓒ 네오위즈인터넷


⑥ 데이 브레이크(Daybreak) - 들었다 놨다

이 밴드의 가장 큰 에너지는 바로 '긍정'이다. 그들은 일상에 지쳐 쉽게 다운 되어버리는 우리들의 무거운 기운을 밟고 경쾌한 사운드로 반전시켜 주는 굉장한 내공을 지녔다. 무엇보다 기름기 쫙 빠진 보컬, 이원석의 기교 부리지 않는 청량감이 곡이 가진 매력을 한층 더 끌어올려 준다. 왠지 기분 좋은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사계절정원 - 가랑눈 2012.01.31 유통사 에스케이커뮤니케이션즈 ⓒ 에스케이커뮤니케이션즈


⑦ 사계절 정원 - 가랑눈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사계절에 빗대어 만남과 사랑, 이별에 관한 모든 사색을 담아내는 감성 프로젝트. 클래식적인 요소와 팝 발라드의 애잔함이 조화된 많은 명곡들을 발표했다. 어떤 곡을 들어도 크게 실망하는 일이 없을 만큼 탄탄한 음악성을 자랑한다. 다양한 음색의 수준급 보컬들을 앨범에 참여시켜 차분하게 바닥에 깔려 있는 감성들을 툭툭 건드려 준다. 뉴에이지 음악을 들을 때처럼 어느 계절, 어느 풍경 속에 있어도 시끄럽거나 들떠 있던 마음을 진정시켜 가라앉혀 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에피톤 프로젝트 -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발매 : 2008.10.02 / 유통사 : 브라우니엔터테인먼 ⓒ 브라우니엔터테인먼트


⑧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 -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인디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에게 이 그룹을 모르면 간첩. 수준급 보컬들을 객원으로 참여시키면서 각각의 곡들이 가진 아날로그적 감성들을 살려냈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연분홍 파스텔 톤의 영상이 눈앞에 금방 펼쳐질 것만 같은 그의 섬세하고 여린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곡. 작곡가인 차세정의 목소리에 여성 보컬 타루의 목소리가 살포시 얹어지면서 봄날, 벚꽃의 향기가 코끝에서 맡아질 것만 같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