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빙고터 복원 "재정·기술적으로 어렵다"
시민들 "유적지 인근 역사공원에 모형 빙고터라도 만들자"
▲ 금강 선사유적지금남교와 한두리대교 사이 금강변에서 발견 된 선사-백제초기 유적지가 멋진 기하학적 도형을 연출하고 있다. ⓒ 세종포스트
4대강사업 세종지구(금강)에서 발굴한 선사에서 백제초기까지 유적지를 원형으로 복원·보존해야 한다는 세종시민의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관련기관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유지비용이 막대하게 드는 것을 이유로 원형복원은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독락정과 함께 그 주위를 역사공원으로 조성하는 만큼 그곳에 원형을 본뜬 빙고터 등은 만들 필요가 있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건설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지난해 첫마을 한두리대교와 금남교 사이 금강 변에서 발견된 선사-백제초기 유적지로서 국가 보물(제66호)인 경주 석빙고보다 천년이나 더 오래된 빙고(氷庫)터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금동신발이 지난해에 발견·발굴했다.
이 지역은 행정도시 건설과정에서 유물이 발견됐는데, 빙고터가 나온 유적지는 4대강 사업 지구에 속했다. 유물이 발견됐을 당시 문화재청은 이곳의 유물을 발굴하고, 매립해서 보존하기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건설청 문화재 관련부서 김교년 박사는 6일 "유적지를 보존하는 문제는 세종시에서 해야 할 일인데, 빙고터가 발굴된 곳은 유적지가 2만3000㎡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으로서 원형으로 보존하기는 기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흙으로 된 유적지라서 보존을 하려면 경화처리해야 하는데, 현대 기술로는 유지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든다"면서 "작은 규모의 모형빙고터를 만들어 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빙고터가 경주의 석빙고보다 천 년 정도 앞선다는 것에 대해서 당시 유물을 발굴한 한국고고환경연구소(소장 이홍종) 공민규 부소장은 "5미터 크기의 흙구덩이 바닥에 돌이 깔려 있고 배수로가 금강 쪽으로 나 있었다. 일본에서 발굴한 빙고터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면이 있어서 학계에서는 빙고터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유적지에서는 4-5세기 목관묘와 나무칼집, 금동제 허리띠, 화살통 등 희귀한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됐다. 또 선사시대에서 백제초기까지의 유적이 다량 발굴되기도 했다. 수혈유구(구덩이) 67기, 우물터, 수레자국이 선명한 도로 흔적 등이 발견돼 학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가진 바 있다.
이에 대해 세종시민들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빙고터이며 제작연대가 가장 이른 금동신발 출토지(학술적 가치) △선사 인류의 거주지가 있다는 세종시민의 자긍심 고취(역사적 가치) △향후 관광도시로서의 유적보존(교육·문화적 가치) 등을 들며 이곳 선사유적지를 복원․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첫마을아파트공동체'의 양병탁씨는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유적지는 원형을 보존하든지, 기술적으로 어렵다면 유적지와 가까운 곳에 원형을 본뜬 빙고터라도 만들어야 한다"며 市에 적극적으로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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