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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철새들의 계절이 왔다

새누리당에 둥지 튼 동교동계 인사들, 의외였다

등록|2012.10.19 14:28 수정|2012.10.19 14:28
요즘 충남 서산과 태안의 천수만 일대는 겨울 철새들로 장관을 이룬다. 큰기러기와 쇠기러기를 비롯하여 20여 종의 철새들 수만 마리가 이미 둥지를 틀었다고 한다. 천수만을 가면 농경지 위를 나는 기러기 떼를 무수히 볼 수 있고, 간월호와 부남호 하늘에서 펼쳐지는 가창오리떼의 군무에 넋을 잃게 된다.

매일 오후 '장명수'를 가서 해변 걷기운동을 하던 나는 요즘 들어서는 주로 천수만을 간다. 천수만의 철새 탐색로를 걸으며 철새들을 보는 재미를 만끽한다. 벼를 벤 논바닥에 가득 널려 있는 기러기떼를 보기도 하고, 열을 지어 이리저리로 이동하는 모습들을 보기도 하고, 새카맣게 하늘을 뒤덮은 가창오리떼의 군무에 정말 넋을 놓기도 한다.

천수만 철새들을 보는 재미로 천수만을 가곤 한다. 철새들이 연출하는 장관을 보노라면 자연 질서의 신비함과 생명운동에 대한 외경심 같은 것을 절로 체감하게 된다. 더불어 약동의 기운이 내 몸 안에 넘실거리는 것도 느끼게 된다.

천수만 천수만 가을 들녘의 기러기 떼 ⓒ 지요하


그런데, 철새들을 보노라면 '인간 철새'들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세상에도 철새 같은 부류가 있다. 생활 방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유하듯 이리저리 터전을 옮기며 힘겹게 살아야 하는 서민들도 있지만, 정치적 욕망과 이해타산 때문에 둥지를 옮기는 '정치 철새'들도 있다.         

오랜 세월 우리는 정치철새들을 무수히 봐왔다. 정치 철새들은 일단 지조가 아예 없거나, 지조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부류다. 변신의 귀재들이다. 어제까지 지조와 신조를 읊조리던 입으로 변신의 변을 늘어놓으며 옷을 갈아입고 둥지를 옮겨버린다. 변신의 변은 언제나 그럴 듯한 수사로 꾸며지지만, 변신의 변(辯)은 대부분 '변(便)'이나 다름없다.

2012년은 '선거의 해'다. 지난 4월에는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렀고, 올 12월에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선거의 해'를 지내면서 이번에는 또 어떤 정치 철새들을 또 얼마나 보게 될까 궁금했는데, 결국 겨울 철새들이 예년보다 일찍 천수만으로 돌아오는 시절에 그 궁금증을 풀게 됐다.

천수만천수만 가을 들녘의 철새 무리 ⓒ 지요하


그런데 이번의 정치철새들은 좀 엉뚱하다. 봄내 별다른 철새들은 보이지 않아서 이번 '선거의 해'에는 특별한 철새들이 없나보나 했는데(사실은 그것을 잔뜩 기대했는데), 엉뚱 팔경으로 오랜 세월 민주당 안에 둥지를 틀고 있었던 동교동 계열 사람들이 돌연 철새로 변신을 해버렸다.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아무리 변신의 속성을 안고 있는 정치판 사람들일지라도,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그리 손쉽게 변신을 해버릴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들의 '변신의 변' 역시 치장은 그럴 듯하다. 변신의 변을 치장하기 위해 고심하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그들 변신의 변(辯) 역시 변(便)일 뿐이다. 그들 자신에게나 필요한 변일 뿐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별 필요도 의미도 없는 변일 따름이다.

화해니, 동서화합이니, 국민대통합이니, 리더십이니 하는 표현들이 그들이 갈아입은 옷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지만, 내 눈에는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는 법이고,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은 없는 법이니, 그냥 그런 범주로나 치면 알맞을 것 같다.

하여간 한광옥이나 안동선이나 이윤수나 큰일을 하긴 했다. 그렇게 변신을 하고 철새가 되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 큰 결단에 일단은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들과 뜻을 같이 한 철새들이 도합 20명에 이르니(유제연·송천영·김영도·유갑종·반형식·김형광·이길범·원광호·국종남·최수환·고홍길·신민선·박규식·조한천·하근수·지대섭·이희규·이홍배 전 의원), 그 규모에도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천수만 논바닥 기러기떼의 한 가족 규모와 거의 일치한다.

천수만천수만 가을 들녘 철새들의 군무 ⓒ 지요하


그들이 지난 15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가진 입당 기자회견에서 밝힌 변신의 변을 읽어보면, '국민대통합'이라는 용어에 그들 변신의 명분이 집약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국민대통합이라는 용어에만 몰두한 탓에 그것의 비현실성은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 국민대통합이라는 것은 권위적인 사고의 소산으로서 그대로 권위주의를 표상한다.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목표로 유신체제를 단행한 것도 사실은 '국민대통합'을 구현하고 포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체주의와 연결되는 국민대통합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그것이 과연 박근혜로 가능한 것이며 왜 박근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의 여지가 그들에게는 전혀 없어 보인다. 과거 유신 시대를 살면서 극렬하게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행적들을 내세우면서도 국민대통합이 자칫 박정희의 전체주의·권위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것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거나 부인하는 모습이다.

오늘은, 그리고 미래는 국민대통합이 절대적 필요 가치가 아니다. 국민대통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통과 조화다. 소통과 조화가 잘 이루어지면 국민통합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시민정신도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므로 강제적인 느낌을 주는 국민대통합보다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소통과 조화인 것이다.

이번에 과감히 철새가 되고 새누리당원으로 변신을 한 과거의 민주당 동교동계 인사들은 자신들이 둥지를 옮기면 국민대통합이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출 것으로 오산이나 착각을 한 듯싶다. 아니, 그런 오산이나 착각보다도 박근혜의 승리를 돕게 되면 그 후의 어떤 보상을 받게 되리라는 정치적 계산을 더 면밀히 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더 정치인다운 모습일 것이다.

명분이 어떻고 실리가 어떠하던 간에 그들은 일단 큰 결단으로 모험을 감행했고, 그리하여 철새가 되었으며, 변신의 변을 배설했다. 국민대통합이고 뭐고 간에 그들은 수십 년  지조(?)의 길에서 이탈하여 덧없는 세상의 한갓 부나방들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헌사를 하나 드리고자 한다. 나는 최근 <불씨>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거의 목적시로 꾸며진 흔치 않은 목적시집이다. 그 시집 안에 <철새들의 계절>이라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시를 오늘 인간 철새들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천수만천수만 가을 들녘의 한 논바닥에 가득 내려앉아 있는 기러기 떼 ⓒ 지요하


철새들의 계절

모처럼 만에 천수만을 가보았다
하늘을 뒤덮는 새떼의 비상
대자연의 장관을 보았다
그들은 철새였다
철 따라 이동하는 새떼들의 비상이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오오, 저 난분분하면서도 일사불란한
자연의 질서
무한한 생명력의 몸짓
그것은 완벽한 아름다움이었다

철이 바뀌어도
떠나지 않는 철새들도 있었다
지구 기후의 변화
환경 조건의 난조에
이유를 거는 말도 있었지만
새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인간 철새들 때문이라고 했다
철새를 흉내 내는 인간들이 많고
자연 순리를 따르는 철새들의 이동을
부정적인 의미로 왜곡시킨
인간들의 웃기는 짓거리에
철새들은 그만
이동 의욕을 잃었다나

철새들이 하늘을 뒤덮는 장관 속에서도
천수만 주변에는
계절이 바뀌어도 떠나지 않는
이상한 철새들이 있고
점점 많아진다고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치판에서
또다시 인간 철새들이 들끓기 시작한
이 포복절도의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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