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고집하다 팬덤으로 끝날라
[주장] 안철수-문재인 단일화를 위한 선결조건 ③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강준만 교수의 <안철수의 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출마선언 전 안 후보가 강준만 교수를 만났을 뿐만 아니라 강 교수가 주장한 '증오의 종언'을 실천하기 위해 민주당 입당을 거부하고 자신의 캠프에 양당의 정치인을 영입했으니 말이다.
내가 강준만 교수를 마음 속 은사로 삼게 된 건 그의 저서 <김대중 죽이기>를 읽고 나서이다. 그 책을 통해 <조선일보>의 음습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던 이유를 명료하게 깨닫게 되면서 언론을 보는 눈을 뜨게 되었다. 수구언론의 정치 기사엔 목적이 있으며 그 의도를 읽게 되면서 정치현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정치학도로서 엄청나게 큰 도구를 얻게 되었으니 강 교수에 대한 고마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나는 사람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비록 최근엔 강 교수와 생각이 많이 다르고 그가 노무현에 대한 증오심으로 과거의 총기를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그는 과보다는 공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는 안철수 캠프가 그의 주장을 시금석으로 생각할 것이기에 강 교수의 주장을 무게 있게 검토하려 한다.
'증오의 종언'이 시대정신?
올 대선의 시대정신이 강준만 교수의 주장처럼 '증오의 종언'이 맞을까?
대선 직전에 치러진 4.11총선의 승패요인을 살펴보면 대선의 시대정신도 읽을 수 있다. 강준만 교수는 민주당이 4.11총선 패인에 대한 진단을 하지 않는 이유는 김용민에게 사퇴하란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한 문재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겨우 몇 개월 전 입당한 <혁신과통합>이 민주당의 기득권인 것처럼 말하는 강 교수는 사실관계와 인식에서 오류가 많아도 너무 많다. 공개토론이라도 하면 좋겠다. 문성근 권한대행이 총선평가를 시도했지만 더 큰 분열과 상처를 가져올 것이라는 민주당내 반발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강 교수가 총선 공천 배후로 지목한 이해찬은 공천기간 중 한명숙 대표를 만나지도 못했고 친노는 민주당 계파의 수장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느라 친노를 역차별한 한 대표에 대한 원망이 깊다. 독선적이란 이해찬은 당대표가 되어서는 당내 반발로 아무것도 못하고 '탕평해찬'이란 별명만 얻었다. 강 교수는 친노가 40명 당선되었다는데 누가 친노인지 명단 좀 보고 싶다.
민주당은 유동적인 동맹의 부족국가 같아서 대통령 노무현도 개혁을 못했듯이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어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게 정당의 개혁이라는 안 후보의 원론적인 주장은 정치초년생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대표적인 발언이다. 노무현이 정당개혁 대신에 지역주의에 맞서 싸운 이유는 지역주의가 바로 민주당 개혁을 가로 막는 최대 장애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청와대에 있을 때 노 대통령과 많이 싸웠지만 결국 그가 옳았음이 영남 지역주의 투표가 사라진 이번 총선결과가 증명한다. 영남에서 새누리당의 당선은 고연령자의 '정당지지'에 내재된 지역편향성 때문이지 단순한 지역주의 투표 때문이 아니다.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나꼼수 서울광장 집회 이후 오히려 민주당 지지도가 반등한 만큼 김용민이 사퇴했으면 더 크게 패배했을 가능성도 있다. 언론학자인 강 교수가 "양쪽이 팽팽하게 기싸움을 해야 중도층은 양쪽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해 한쪽을 지지한다"는 홍보이론의 기본에도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 이유가 친노에 대한 적개심 때문만은 아니길 바란다. 김용민 공천은 애초에 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막말 파문이 터진 직후 8년 전 성인방송에서의 발언을 문제 삼는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그 당 의원들이 출연해 만든 연극 환생경제의 막말 책임을 물으며 단호히 맞섰어야 했다. 4.11총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는 새누리당에 맞서 싸우지 않은 민주당의 패배라는 사실을 아래 총선결과 분석이 증명한다.
4.11총선에서 왜 패배했나
구민주당 때 임명된 박순성 민주정책연구원장이 서울대 한상진 교수 연구실에 의뢰해 4.11총선 전후로 조사한 패널 조사자료를 이용한 분석인 논문 '19대 총선 예측 왜 실패했나'를 통해 (해당 논문은 필자의 블로그에 올려놓았으니 누구든 이 자료를 이용해 타당성을 확인해보기 바란다) 내용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진보 지식인들은 자신의 신념이 너무 확고해 과학적 증거마저도 부정하니 소통이 될지 모르겠으나 일단 4.11총선의 승패요인 분석결과를 요약해보겠다.
첫째, 4.11총선에서는 회고적 투표는 없고, 전망적 투표, 즉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가 가장 큰 영향을 발휘했다. 둘째, 새누리당에 대한 안정되고 견고한 지지가 민주당이나 진보당의 지지를 합한 것을 능가했다. 즉, 구조적으로도 4.11총선은 새누리당이 패할 수 없는 선거였고 이번 대선에서도 이 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 셋째, 무당파층을 설득해 득표로 이어진 새누리당의 선거구호는 "이념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 "참여정부도 민간인 사찰을 했다" "거야를 막아 달라"의 순이다. 넷째, 무당파층의 공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반대 정당에 투표하도록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온다. 민주당 공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새누리당 투표로, 새누리당 공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민주당 투표로 이어졌다. 논문복사, 성추행, 공천뇌물로 물의를 일으킨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2배정도 공천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한명숙의 "FTA재재협상" 주장은 득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면서 이념적, 당파적 지지를 드러내 '이념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새누리당의 역공에 빌미를 제공했다. 여섯째, 민주당의 다양한 구호는 전혀 설득력이 없었고 "박근혜와 MB는 한몸이다"가 약간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일곱째, 야권연대는 민주당이나 무당파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진보당의 야권투표에 기여한 것으로 나온다. 여덟째, 김용민 공천이나 막말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민주당을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김용민 공천을 강하게 지지했다.
김진표 공천을 비판하고 한미FTA를 고리로 야권연대를 성사시킨 진보지식인은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필자가 그 동안 줄기차게 해온 주장을 재확인한 것이라 전혀 놀라울 게 없다. 총선 전 90%의 논객이 연대만 되면 야권연대가 압승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필자가 '국민의 명령'의 정책위원장을 맡아 야권단일정당을 주장한 이유는 무리한 야권연대가 4.11총선패배로 이어질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친노 패권주의? 동의하기 어렵다
진보지식인들이 2007년 대선결과를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그들의 전략대로 하면 총선과 대선에서도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고 필자는 본지 기고를 통해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지난 대선의 이명박 당선은 노무현 평가와 무관하다. 특히 노무현의 한미FTA에 대해선 이번 총선에서도 초당적, 탈이념적인 지지가 55% 발견된다. 다만 이명박FTA에 대해선 반대가 65%인 것으로 나오는데 당파적이고 이념적인 반대뿐 아니라 화이트칼라, 저연령, 수도권의 반대가 관찰된다. 경제적 이유로 찬성하는 고소득자와 달리 이명박FTA에 대한 반대는 나꼼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절차적 민주주의를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 이유는 한명숙의 FTA재재협상 주장에 동의하는 유권자가 49.9%로 양분되며 이것이 야권연대 득표에는 전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이명박 FTA가 절차적 이유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외교갈등을 고려할 때 재협상에는 동의하지 않는 유권자가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다. 나꼼수가 4.11총선에서 반성할 점이 있다면 김용민 출마가 아니라 한미FTA 재협상을 쟁점화한 것이다.
지방선거나 재보궐선거에서는 회고적 투표가 이루어지지만 대선이나 대선과 가까운 총선에서는 전망적 투표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필자는 여러 번 주장했었다. 노무현은 서거 전에도 이미 50%의 지지를 받았고 해가 갈수록 박정희보다 더 큰 지지를 받을 것이니 진보진영의 유산을 폄훼하지 말고 반성은 민심을 읽지 못하는 진보지식인이 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초당적 탈이념적으로 제3의 길을 걸었던 노무현에 대한 보수·진보 양진영의 공격이 참여정부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노무현은 민심을 정확히 읽었다. 최근 <시사인>의 대통령 신뢰도 조사에서도 노무현은 박정희를 누르고 가장 신뢰받는 대통령으로 선정되었다. 모바일세력이 친노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정치의식이 높고 깨어있는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노무현과 친노는 부당한 보수세력의 공작에 맞서 싸움을 할 줄 알기 때문에 지지를 받는 것이다. 진보진영 지지자들은 반칙세력에 맞서 정의가 승리하기를 원하지 착한 정치인을 원하는 게 아니다.
문재인도 다른 친노와는 달리 성품이 온화해 무당파층에게는 호감도가 높지만 친노는 하위직까지 다 쳐내고 탈노이미지를 만드느라 지지도가 좀체 오르지 않고 있다. 후보는 좋은 이미지 관리를 하더라도 당이 부당한 공격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진다는 교훈을 4.11총선에서 얻기 바란다. "참여정부도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청와대의 무리한 발표가 새누리당 득표에 도움을 준 것을 보면 모르겠는가. 나꼼수가 왜 팬덤현상을 일으킬만큼 야성향 지지자로부터 인기를 누리는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올 시대정신을 '증오의 종언'이라 규명한 강준만 교수의 책에는 노무현과 친노에 대한 적개심이 흘러넘친다. 호남유권자가 전략적 투표를 하기보다 호남후보를 내세우려면 민주당이 영남에 뿌리를 내려야 가능하다. 목숨 걸고 그 일을 해온 노무현과 이를 계승하는 문재인을 증오하며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정치의 기본은 정당정치이고 정당의 발전은 제도화와 지속성으로 측정된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창당을 끝까지 반대했었다. 민주당 분당은 '천신정'의 작품이지 노 대통령에게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게 바로 왕따현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소속 안철 수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철수 신당을 만들어 또 이합집산을 하자는 말인가. 정당이 또 원점에서 시작한다면 진보와 보수의 균형이 맞춰지는데 수십년 걸리게 될 것이다.
안철수 캠프에서 '친노 패권주의'란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이제 이해가 된다. 단일화의 선결조건으로 안철수 캠프에서 특정인의 배제를 요구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는데 참여정부 때 한나라당의 공격에 방어수로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그 후 그들은 부드럽지 않은 외모와 어투로 또 언론의 부당한 공격으로 이미지가 망가졌지만 진영을 위해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편이라 생각한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상황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결국 그들은 선대위에서 다 물러났다.
보수세력으로서는 아둔하고 분열된 야권과 경쟁하는 게 정말 쉽고 재미있을 것 같다. 조중동이 친노왕따를 시키는 건 이해가 간다. 친노가 새누리당 재집권의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준만 교수마저 우리사회 증오정치의 가장 큰 책임이 노무현과 친노에게 있는 것처럼 묘사한 대목에서는 칼로 가슴을 후벼 파는 통증을 느꼈다. 강 교수가 친노왕따의 강화자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원칙과 상식을 추구한 노무현은 불의에 맞서 단호히 싸웠지만 국민에게는 가장 겸손한 권력이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주장하며 한미FTA로 파이를 키우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복지를 하고 궁극적으로는 북한과 FTA를 해서 평화공영의 길을 놓겠다는 게 노무현의 구상이었다. 국민다수가 당파와 이념을 초월해 이를 지지했다. 이걸 반대한 건 그냥 노무현이 싫은 우파와 이념에 투철한 좌파들이다. 정치적 목적과 이념으로 노무현을 왕따 시킨 좌우세력이 증오의 정치를 한 것이지 이에 맞서 제3의 길을 추구한 노무현이 증오정치의 원인제공자라니.
물론 강 교수가 그렇게 오해를 하게 된 배경은 이해가 된다. 즉, 거대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보수정당은 인구수에서 우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사법, 검찰, 재벌, 언론, 대학 거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독재시대에는 어차피 반대자를 힘으로 눌렀기에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화가 되자 민주진영이 단일화라는 편법으로 두 번이나 정권을 기득권으로부터 빼앗았다.
김대중 정부만 하더라도 보수정당이 금융환란을 초래한 잘못도 있고 보수 세력과 권력을 분점 했으니 참아줄만 했다. 그런데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신의 살을 베어가면서 구시대정치의 치부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드러내니 기득권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기득권세력이 사력을 다해 반격전을 펼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개혁세력과 기득권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노무현 정부 5년이 힘들고 시끄러웠던 게 사실이다.
올 대선 시대정신은 '균형 정치'에 접근하는 것
원래 거대한 집단과 소수 집단의 주종관계가 확실할 때에는 갈등이 없다. 힘의 우위로 안정된 지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갈등은 소수 집단이 힘을 키우면서 기득권에게 맞설 때 가장 심해진다. 양쪽이 사력을 다해 싸우기 때문이다. 갈등이 관리되기 시작하는 건 양쪽이 힘으로 맞섰다가는 서로 망하겠다는 공포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이다. 양자의 힘이 비슷해져야 비로소 협상과 타협의 문화가 싹트게 된다. 그래서 협상이론은 기본적으로 양자의 동등한 권력관계를 상정한다. 힘의 균형이 없는 관계에서 상생이란 강자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약자의 굴욕을 포장하는 수사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우리사회 갈등이 심각한 건 한 번 권력을 빼앗겨본 보수세력이 그 공포감으로 인해 물고기를 죽이는 대신 호수의 물을 빼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방법이 달라졌을 뿐 부당한 인권침해와 언론장악은 독재시대 못지않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이 노무현 정부 때만큼 시끄럽지는 않다.시위 숫자와 부상자 수로 노무 현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노동자 탄압이 더 심했다는 강준만 교수의 주장은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준만 교수에게 천배 만배 동의하는 건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미래세대를 위해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시민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노무현의 협상론>이라는 강좌를 개설했고 그 강좌를 엮어 책으로 출간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양쪽의 힘이 균형을 이뤄 한쪽이 일방적으로 반칙하지 못할 때 가능하다. 선진국도 민주주의 초기에는 반칙과 막말, 육탄전까지 벌였다.
민주주의가 성숙해지면서 말로는 죽일 것처럼 싸우지만 기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한 이유는 공정한 제도가 운영되고 자유로운 정권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사법제도의 공정성은 필수적이다. 우리사회의 검찰과 법원, 헌재가 제 역할을 할만큼 성숙해서 증오의 종언을 시대정신이라 한 건지 강 교수에게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가 만악의 근원도 아니고 정권교체를 한다고 해서 우리경제가 좋아지지 않을 건 분명하다. 그건 강 교수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공정한 사회에 접근할 것이며 언젠가는 여야의 균형이 맞춰지는데 일조할 것이다. 정권교체가 균형정치를 가져온다면 장기적으로는 증오의 정치를 종식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도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올 대선의 시대정신은 균형정치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본다.
안 후보, 시대정신 제대로 읽어야
안철수 후보가 '증오의 종언'을 내세워 무소속 행보를 계속한다면 지지도 하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대정신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안철수 현상의 이면에는 다양한 원인이 공존한다. 서로 영향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상쇄되기 때문에 본인도 자신이 왜 뜨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의 핵심은 노무현 정신과 촛불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안철수 현상은 팬덤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노무현 정신은 문재인에게만 계승되지 않았다. 문재인도 구좌파를 포용하느라 노무현 정신을 일부 포기하고 탈노를 했기에 신좌파인 노무현보다 덜 매력적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신은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 세 후보에게 각각 나뉘어졌다. 이 때문에 안-문 단일화가 성사되어도 정권교체가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는 자만이 이번 대선의 승자가 될 것이므로 다음에는 노무현 정신은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세 후보에게 분산되었는지 쓰겠다.
우리사회에 아직은 여야균형이 없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야권이 또 싸우지 않는 전략을 택한다면 필패가 기다리게 될 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잘못했다고 사과하며 한번만 봐달라고 읍소한 덕분에 참패를 당하고 참여정부에도 치명상을 입힌 열린우리당의 교훈을 아직도 얻지 못한 야권의 무지와 자기 살 깎아 먹는 경쟁이 참으로 안타깝다.
여론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원칙을 지켰던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점점 더 좋아지는 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민주당이 선거에 패하는 건 약자라서가 아니라, 몸에 밴 약자의식으로 반성하고 자해하느라 제대로 된 전략을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한탄이 생각난다.
"얻어맞고 자란 사람은 대들 줄을 모릅니다!"
내가 강준만 교수를 마음 속 은사로 삼게 된 건 그의 저서 <김대중 죽이기>를 읽고 나서이다. 그 책을 통해 <조선일보>의 음습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던 이유를 명료하게 깨닫게 되면서 언론을 보는 눈을 뜨게 되었다. 수구언론의 정치 기사엔 목적이 있으며 그 의도를 읽게 되면서 정치현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정치학도로서 엄청나게 큰 도구를 얻게 되었으니 강 교수에 대한 고마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나는 사람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비록 최근엔 강 교수와 생각이 많이 다르고 그가 노무현에 대한 증오심으로 과거의 총기를 잃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그는 과보다는 공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는 안철수 캠프가 그의 주장을 시금석으로 생각할 것이기에 강 교수의 주장을 무게 있게 검토하려 한다.
'증오의 종언'이 시대정신?
▲ 안철수의 힘강준만 교수가 낸 <안철수의 힘>. '2012년의 시대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다'라는 부제가 붙었다. ⓒ 인물과사상사
대선 직전에 치러진 4.11총선의 승패요인을 살펴보면 대선의 시대정신도 읽을 수 있다. 강준만 교수는 민주당이 4.11총선 패인에 대한 진단을 하지 않는 이유는 김용민에게 사퇴하란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한 문재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겨우 몇 개월 전 입당한 <혁신과통합>이 민주당의 기득권인 것처럼 말하는 강 교수는 사실관계와 인식에서 오류가 많아도 너무 많다. 공개토론이라도 하면 좋겠다. 문성근 권한대행이 총선평가를 시도했지만 더 큰 분열과 상처를 가져올 것이라는 민주당내 반발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강 교수가 총선 공천 배후로 지목한 이해찬은 공천기간 중 한명숙 대표를 만나지도 못했고 친노는 민주당 계파의 수장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느라 친노를 역차별한 한 대표에 대한 원망이 깊다. 독선적이란 이해찬은 당대표가 되어서는 당내 반발로 아무것도 못하고 '탕평해찬'이란 별명만 얻었다. 강 교수는 친노가 40명 당선되었다는데 누가 친노인지 명단 좀 보고 싶다.
민주당은 유동적인 동맹의 부족국가 같아서 대통령 노무현도 개혁을 못했듯이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어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게 정당의 개혁이라는 안 후보의 원론적인 주장은 정치초년생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대표적인 발언이다. 노무현이 정당개혁 대신에 지역주의에 맞서 싸운 이유는 지역주의가 바로 민주당 개혁을 가로 막는 최대 장애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청와대에 있을 때 노 대통령과 많이 싸웠지만 결국 그가 옳았음이 영남 지역주의 투표가 사라진 이번 총선결과가 증명한다. 영남에서 새누리당의 당선은 고연령자의 '정당지지'에 내재된 지역편향성 때문이지 단순한 지역주의 투표 때문이 아니다.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나꼼수 서울광장 집회 이후 오히려 민주당 지지도가 반등한 만큼 김용민이 사퇴했으면 더 크게 패배했을 가능성도 있다. 언론학자인 강 교수가 "양쪽이 팽팽하게 기싸움을 해야 중도층은 양쪽 주장의 타당성을 검토해 한쪽을 지지한다"는 홍보이론의 기본에도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 이유가 친노에 대한 적개심 때문만은 아니길 바란다. 김용민 공천은 애초에 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막말 파문이 터진 직후 8년 전 성인방송에서의 발언을 문제 삼는 새누리당에 대해서는 그 당 의원들이 출연해 만든 연극 환생경제의 막말 책임을 물으며 단호히 맞섰어야 했다. 4.11총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는 새누리당에 맞서 싸우지 않은 민주당의 패배라는 사실을 아래 총선결과 분석이 증명한다.
4.11총선에서 왜 패배했나
구민주당 때 임명된 박순성 민주정책연구원장이 서울대 한상진 교수 연구실에 의뢰해 4.11총선 전후로 조사한 패널 조사자료를 이용한 분석인 논문 '19대 총선 예측 왜 실패했나'를 통해 (해당 논문은 필자의 블로그에 올려놓았으니 누구든 이 자료를 이용해 타당성을 확인해보기 바란다) 내용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진보 지식인들은 자신의 신념이 너무 확고해 과학적 증거마저도 부정하니 소통이 될지 모르겠으나 일단 4.11총선의 승패요인 분석결과를 요약해보겠다.
첫째, 4.11총선에서는 회고적 투표는 없고, 전망적 투표, 즉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가 가장 큰 영향을 발휘했다. 둘째, 새누리당에 대한 안정되고 견고한 지지가 민주당이나 진보당의 지지를 합한 것을 능가했다. 즉, 구조적으로도 4.11총선은 새누리당이 패할 수 없는 선거였고 이번 대선에서도 이 조건은 여전히 유효하다. 셋째, 무당파층을 설득해 득표로 이어진 새누리당의 선거구호는 "이념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 "참여정부도 민간인 사찰을 했다" "거야를 막아 달라"의 순이다. 넷째, 무당파층의 공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반대 정당에 투표하도록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온다. 민주당 공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새누리당 투표로, 새누리당 공천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민주당 투표로 이어졌다. 논문복사, 성추행, 공천뇌물로 물의를 일으킨 새누리당이 민주당보다 2배정도 공천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한명숙의 "FTA재재협상" 주장은 득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면서 이념적, 당파적 지지를 드러내 '이념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새누리당의 역공에 빌미를 제공했다. 여섯째, 민주당의 다양한 구호는 전혀 설득력이 없었고 "박근혜와 MB는 한몸이다"가 약간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일곱째, 야권연대는 민주당이나 무당파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진보당의 야권투표에 기여한 것으로 나온다. 여덟째, 김용민 공천이나 막말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민주당을 신뢰하는 사람일수록 김용민 공천을 강하게 지지했다.
김진표 공천을 비판하고 한미FTA를 고리로 야권연대를 성사시킨 진보지식인은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필자가 그 동안 줄기차게 해온 주장을 재확인한 것이라 전혀 놀라울 게 없다. 총선 전 90%의 논객이 연대만 되면 야권연대가 압승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필자가 '국민의 명령'의 정책위원장을 맡아 야권단일정당을 주장한 이유는 무리한 야권연대가 4.11총선패배로 이어질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친노 패권주의? 동의하기 어렵다
진보지식인들이 2007년 대선결과를 잘못 해석했기 때문에 그들의 전략대로 하면 총선과 대선에서도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고 필자는 본지 기고를 통해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 지난 대선의 이명박 당선은 노무현 평가와 무관하다. 특히 노무현의 한미FTA에 대해선 이번 총선에서도 초당적, 탈이념적인 지지가 55% 발견된다. 다만 이명박FTA에 대해선 반대가 65%인 것으로 나오는데 당파적이고 이념적인 반대뿐 아니라 화이트칼라, 저연령, 수도권의 반대가 관찰된다. 경제적 이유로 찬성하는 고소득자와 달리 이명박FTA에 대한 반대는 나꼼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절차적 민주주의를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 이유는 한명숙의 FTA재재협상 주장에 동의하는 유권자가 49.9%로 양분되며 이것이 야권연대 득표에는 전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이명박 FTA가 절차적 이유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외교갈등을 고려할 때 재협상에는 동의하지 않는 유권자가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다. 나꼼수가 4.11총선에서 반성할 점이 있다면 김용민 출마가 아니라 한미FTA 재협상을 쟁점화한 것이다.
지방선거나 재보궐선거에서는 회고적 투표가 이루어지지만 대선이나 대선과 가까운 총선에서는 전망적 투표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필자는 여러 번 주장했었다. 노무현은 서거 전에도 이미 50%의 지지를 받았고 해가 갈수록 박정희보다 더 큰 지지를 받을 것이니 진보진영의 유산을 폄훼하지 말고 반성은 민심을 읽지 못하는 진보지식인이 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초당적 탈이념적으로 제3의 길을 걸었던 노무현에 대한 보수·진보 양진영의 공격이 참여정부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노무현은 민심을 정확히 읽었다. 최근 <시사인>의 대통령 신뢰도 조사에서도 노무현은 박정희를 누르고 가장 신뢰받는 대통령으로 선정되었다. 모바일세력이 친노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정치의식이 높고 깨어있는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노무현과 친노는 부당한 보수세력의 공작에 맞서 싸움을 할 줄 알기 때문에 지지를 받는 것이다. 진보진영 지지자들은 반칙세력에 맞서 정의가 승리하기를 원하지 착한 정치인을 원하는 게 아니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새로운정치위원회(새정치위) 1차회의에 참석해 "기득권과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 새로운 정치의 시작일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자치단체장과 고위공직자 모두 국민을 위해 일하는데 필요한 권한만 갖고 특권과 기득권은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 남소연
문재인도 다른 친노와는 달리 성품이 온화해 무당파층에게는 호감도가 높지만 친노는 하위직까지 다 쳐내고 탈노이미지를 만드느라 지지도가 좀체 오르지 않고 있다. 후보는 좋은 이미지 관리를 하더라도 당이 부당한 공격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진다는 교훈을 4.11총선에서 얻기 바란다. "참여정부도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청와대의 무리한 발표가 새누리당 득표에 도움을 준 것을 보면 모르겠는가. 나꼼수가 왜 팬덤현상을 일으킬만큼 야성향 지지자로부터 인기를 누리는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올 시대정신을 '증오의 종언'이라 규명한 강준만 교수의 책에는 노무현과 친노에 대한 적개심이 흘러넘친다. 호남유권자가 전략적 투표를 하기보다 호남후보를 내세우려면 민주당이 영남에 뿌리를 내려야 가능하다. 목숨 걸고 그 일을 해온 노무현과 이를 계승하는 문재인을 증오하며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정치의 기본은 정당정치이고 정당의 발전은 제도화와 지속성으로 측정된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창당을 끝까지 반대했었다. 민주당 분당은 '천신정'의 작품이지 노 대통령에게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게 바로 왕따현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무소속 안철 수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철수 신당을 만들어 또 이합집산을 하자는 말인가. 정당이 또 원점에서 시작한다면 진보와 보수의 균형이 맞춰지는데 수십년 걸리게 될 것이다.
안철수 캠프에서 '친노 패권주의'란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이제 이해가 된다. 단일화의 선결조건으로 안철수 캠프에서 특정인의 배제를 요구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는데 참여정부 때 한나라당의 공격에 방어수로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그 후 그들은 부드럽지 않은 외모와 어투로 또 언론의 부당한 공격으로 이미지가 망가졌지만 진영을 위해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편이라 생각한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상황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결국 그들은 선대위에서 다 물러났다.
보수세력으로서는 아둔하고 분열된 야권과 경쟁하는 게 정말 쉽고 재미있을 것 같다. 조중동이 친노왕따를 시키는 건 이해가 간다. 친노가 새누리당 재집권의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준만 교수마저 우리사회 증오정치의 가장 큰 책임이 노무현과 친노에게 있는 것처럼 묘사한 대목에서는 칼로 가슴을 후벼 파는 통증을 느꼈다. 강 교수가 친노왕따의 강화자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원칙과 상식을 추구한 노무현은 불의에 맞서 단호히 싸웠지만 국민에게는 가장 겸손한 권력이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주장하며 한미FTA로 파이를 키우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복지를 하고 궁극적으로는 북한과 FTA를 해서 평화공영의 길을 놓겠다는 게 노무현의 구상이었다. 국민다수가 당파와 이념을 초월해 이를 지지했다. 이걸 반대한 건 그냥 노무현이 싫은 우파와 이념에 투철한 좌파들이다. 정치적 목적과 이념으로 노무현을 왕따 시킨 좌우세력이 증오의 정치를 한 것이지 이에 맞서 제3의 길을 추구한 노무현이 증오정치의 원인제공자라니.
물론 강 교수가 그렇게 오해를 하게 된 배경은 이해가 된다. 즉, 거대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보수정당은 인구수에서 우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사법, 검찰, 재벌, 언론, 대학 거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독재시대에는 어차피 반대자를 힘으로 눌렀기에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화가 되자 민주진영이 단일화라는 편법으로 두 번이나 정권을 기득권으로부터 빼앗았다.
김대중 정부만 하더라도 보수정당이 금융환란을 초래한 잘못도 있고 보수 세력과 권력을 분점 했으니 참아줄만 했다. 그런데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신의 살을 베어가면서 구시대정치의 치부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드러내니 기득권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기득권세력이 사력을 다해 반격전을 펼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개혁세력과 기득권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노무현 정부 5년이 힘들고 시끄러웠던 게 사실이다.
올 대선 시대정신은 '균형 정치'에 접근하는 것
원래 거대한 집단과 소수 집단의 주종관계가 확실할 때에는 갈등이 없다. 힘의 우위로 안정된 지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갈등은 소수 집단이 힘을 키우면서 기득권에게 맞설 때 가장 심해진다. 양쪽이 사력을 다해 싸우기 때문이다. 갈등이 관리되기 시작하는 건 양쪽이 힘으로 맞섰다가는 서로 망하겠다는 공포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이다. 양자의 힘이 비슷해져야 비로소 협상과 타협의 문화가 싹트게 된다. 그래서 협상이론은 기본적으로 양자의 동등한 권력관계를 상정한다. 힘의 균형이 없는 관계에서 상생이란 강자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약자의 굴욕을 포장하는 수사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우리사회 갈등이 심각한 건 한 번 권력을 빼앗겨본 보수세력이 그 공포감으로 인해 물고기를 죽이는 대신 호수의 물을 빼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방법이 달라졌을 뿐 부당한 인권침해와 언론장악은 독재시대 못지않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이 노무현 정부 때만큼 시끄럽지는 않다.시위 숫자와 부상자 수로 노무 현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노동자 탄압이 더 심했다는 강준만 교수의 주장은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준만 교수에게 천배 만배 동의하는 건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미래세대를 위해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시민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노무현의 협상론>이라는 강좌를 개설했고 그 강좌를 엮어 책으로 출간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양쪽의 힘이 균형을 이뤄 한쪽이 일방적으로 반칙하지 못할 때 가능하다. 선진국도 민주주의 초기에는 반칙과 막말, 육탄전까지 벌였다.
민주주의가 성숙해지면서 말로는 죽일 것처럼 싸우지만 기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한 이유는 공정한 제도가 운영되고 자유로운 정권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사법제도의 공정성은 필수적이다. 우리사회의 검찰과 법원, 헌재가 제 역할을 할만큼 성숙해서 증오의 종언을 시대정신이라 한 건지 강 교수에게 묻고 싶다.
이명박 정부가 만악의 근원도 아니고 정권교체를 한다고 해서 우리경제가 좋아지지 않을 건 분명하다. 그건 강 교수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공정한 사회에 접근할 것이며 언젠가는 여야의 균형이 맞춰지는데 일조할 것이다. 정권교체가 균형정치를 가져온다면 장기적으로는 증오의 정치를 종식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도 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올 대선의 시대정신은 균형정치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본다.
안 후보, 시대정신 제대로 읽어야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선거사무실에서 고용·노동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안 후보는 이날 '복지-일자리-성장이 선순환 하는 사회통합적 일자리 경제구축'을 위한 5대 전략과제를 발표했다. ⓒ 남소연
안철수 후보가 '증오의 종언'을 내세워 무소속 행보를 계속한다면 지지도 하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시대정신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안철수 현상의 이면에는 다양한 원인이 공존한다. 서로 영향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상쇄되기 때문에 본인도 자신이 왜 뜨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의 핵심은 노무현 정신과 촛불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안철수 현상은 팬덤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노무현 정신은 문재인에게만 계승되지 않았다. 문재인도 구좌파를 포용하느라 노무현 정신을 일부 포기하고 탈노를 했기에 신좌파인 노무현보다 덜 매력적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정신은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 세 후보에게 각각 나뉘어졌다. 이 때문에 안-문 단일화가 성사되어도 정권교체가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는 자만이 이번 대선의 승자가 될 것이므로 다음에는 노무현 정신은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세 후보에게 분산되었는지 쓰겠다.
우리사회에 아직은 여야균형이 없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야권이 또 싸우지 않는 전략을 택한다면 필패가 기다리게 될 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잘못했다고 사과하며 한번만 봐달라고 읍소한 덕분에 참패를 당하고 참여정부에도 치명상을 입힌 열린우리당의 교훈을 아직도 얻지 못한 야권의 무지와 자기 살 깎아 먹는 경쟁이 참으로 안타깝다.
여론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원칙을 지켰던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점점 더 좋아지는 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민주당이 선거에 패하는 건 약자라서가 아니라, 몸에 밴 약자의식으로 반성하고 자해하느라 제대로 된 전략을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한탄이 생각난다.
"얻어맞고 자란 사람은 대들 줄을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blog.daum.net/leadershipstory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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