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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드렁크 러브' 늦가을 당신이 솔직해져야할 이유

[황상준 음악감독의 영화음악①] 눈과 귀, 마음을 흥분시킨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

등록|2012.10.24 10:12 수정|2012.10.24 12:21
황상준 영화음악 감독이 <오마이스타>를 통해서 매달 챙겨 들어 볼만한 영화음악을 추천합니다. 황상준 음악감독의 추천 영화음악을 통해 영화를 보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듣는 즐거움까지 얻게 되길 바랍니다. 황 감독은 영화 <단적비연수>를 비롯해 <식객><궁녀><미인도><그림자 살인>, 드라마 <신돈><개와 늑대의 시간> 등의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드라마 <무신>과 영화 <댄싱퀸>으로 비장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으로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편집자말]

▲ 아담 샌들러, 에밀리 왓슨 주연의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 포스터. ⓒ New Line Cinema


OST 기사 제의를 받고, 처음엔 쉽게 생각 하다가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부담스러웠다. 어떤 OST를 할까? 영화음악, 작곡가로 음악 얘기만 할까. 그럼 재미없을 텐데...

좋은 영화로 할까? 좋은 음악이 있는 영화로 할까? 개봉영화 중에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영화로 결정했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펀치 드렁크 러브> 쌀쌀한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

하얀 벽에 파란색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투톤 색깔의 사무실 벽. 그 앞 책상에서 파란색 수트를 입고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중인 베리(아담 샌들러). 꼭 보호색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카멜레온처럼 배리는 머리만 떠 있는 투명인간처럼 보인다.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눈에 띄지도 않고, 7명의 누이들 속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안에 숨어 지내는 배리에게도 하나의 희망이 있다. 늘 똑같은 하루하루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 그건 푸딩에 붙어 있는 비행 마일리지를 모아 디스토피아에서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어느 날. 배리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일상에서  똑 같은 어느 날 동시다발적으로 눈앞에서 자동차가 뒤집어지고, 오르간이 버려지면서 그리고 그녀를 만나게 된다.

안정적인 직장에 침착하고 차분한 성격의 레나(에밀리 왓슨). 우연히 직장동료의 가족사진에서 배리를 처음 보게 되고 호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남자 배리를 만나기로 시도한다.

둘의 만남! 주위의 집요한 방해에도 레나는 배리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만, 배리는 기적소리를 듣게 한 레나에게까지 속에 없는 말로 '밀당'을 한다. 그리고 배리는 본능적인 거짓으로 자기 방어를 시작한다.

첫 데이트 후 레나의 집을 나오는 길에 레나의 호출로 다시 레나의 집으로 뛰어 가는 베리.

'이제 나에게도 사랑이 오는 건가?' 그리고 달콤한 첫 키스. 그러나 똑같이 생긴 복도와 비상구(EXIT). 왜 계속 뛰어도 같은 복도만 나올까? 미로 속을 해매고 있는 배리는 비상구를 탈출해 레나에게 갈 수 있을까? 서로 너무 다른 이들이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 <펀치 드렁크 러브>의 주연을 맡은 아담 샌들러. ⓒ New Line Cinema


눈과 귀, 마음을까지 흥분시키기 충분한 <펀치 드렁크 러브>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이 사람의 모든 영화를 봤지만 특히나 <펀치 드렁크 러브>를 보면서 "이 사람은 뭐지?"하는 생각을 했었다.

직업이 음악감독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영화 전반의 정서적 템포감과 기술적 템포감(편집,상황의 호흡 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템포감은 영화 음악가만의 특별한 보상이라 생각해 왔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똑똑한 천재감독이란 얘기에, 나 또한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장면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긴장감, 그리고 관객의 정서적 타이밍을 정확히 본인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사실 얄밉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다.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 해도 허점은 분명 있을 터. 하지만 폴 토머스 앤더슨은 영화적 최소단위의 프레임까지 사람들과 호흡할 줄 아는 섬세한 감성을 가진 감독이다. 이 사람을 누가 안 좋아 할 수 있을까.

▲ <펀치 드렁크 러브>(2002) 한 장면. ⓒ New Line Cinema


이 영화의 음악 감독은 폴 토머스 앤더슨과 늘 같이 했던 그리고 <이터널 선샤인>의 음악을 했던 존 브리옹이다. OST '타블라(Tabla)', 음악 자체가 배리를 상징한다. 이 음악 자체로 배리의 과거와 현재, 모두가 보인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배리의 움직임과 정서적 불안감을 그대로 머리 위에 같이 떠 있듯이 계속 따라다닌다.

OST '펀치 드렁크 멜로디(punch drunk melody)'. 레나가 배리에게 "키스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배리는 레나를 향해 비상구를 뚫고 다시 뛰어 간다. 3박자의 리듬은 우리를 춤추게 만든다. 그리고 배리와 레나도 춤을 추듯 키스를 한다. 시끄러운 군중 속에서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배리에겐 레나의 소리만 들린다.

OST '히 니즈 미(He Needs Me)', 레나의 이야기처럼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바삐 움직이는 군중 속에 시간이 멈춘 듯 둘만의 재회가 시작된다. 엔딩 크래디트과 함께 들리는 'He Really Needs Me' 노래에서 들리는 조율 안 된 업라이트 피아노 소리처럼 사랑은 누구에게나 불안케 하는 다른 사연이 있는 법이다.

바보 같은 배리를 강력한 슈퍼맨으로 바뀌게 한 레나.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와 함께 쌀쌀한 가을날 서로 사랑하세요. 솔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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