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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별 노조의 '원조', 일본이 변하고 있다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 19] '초기업노조'의 가능성

등록|2012.10.23 15:18 수정|2012.10.23 15:20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산별노조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2012 노동 있는 민주주의와 노사관계개혁을 위한 연속기고 -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 연중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2012년 권력교체기, 한국 사회에서 노동 있는 민주주의 담론 확산과 산별노조운동 진전을 위한 실질적인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일본의 노동조합 조직형태는 기업별 노동조합이다. 즉, 기업별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단결권, 교섭권, 행동권인 노동3권을 행사하고 있다. 기업별 노동조합이 처음 본격적으로 나타난 곳이 일본으로서, 일본은 기업별 노조의 원조이다. 일본의 기업별 노조는 세계 제2차대전 패전 후 산별노조운동의 패배와 쇠퇴로 형성·강화되었다. 패전 후 일본에서는 미국의 노동조합 운동 촉진 정책으로 우후죽순처럼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1949년 조직률이 55.8%에 이르게 되었다.

그때 노동운동을 주도한 전국 조직은 산별회의였다. 산별회의는 일본 공산당의 영향하에 산별조직을 기본으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산별회의는 1947년 2월 1일 계획했던 총파업을 미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의 지령에 따라 중지하였다. 그 후 미 연합군은 산별회의의 노동운동이 공산당 운동의 일환이고, 점령정책에 걸림돌이 된다고 인식하였고, 한국전쟁을 전후로 공산주의자 숙청(레드퍼지, red purge)을 전개함으로서 산별회의 운동은 그 영향력을 급속히 잃게 되었다. 그 결과 산별노조 운동도 제동이 걸렸다.

일본 노동운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총평은 노동조합주의를 표방하면서 1950년 결성되었다. 처음은 반공색채를 강하게 띄었는데, 그 후 노선대립을 통하면서 계급투쟁을 기본이념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 노선, 그리고 노조의 조직형태에서도, '위력 있는 대산별 단일조직의 확립'을 지향하였다.

1955년 산별노조운동의 일환으로서 춘투가 시작되었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같은 산업에 속해 있는 기업별 노조가 산별연맹을 조직하여 같은 요구와 일정으로 기업과 임금 등을 둘러싸고 통일교섭을 전개한 춘투에서 대폭 임금 인상을 쟁취할 수 있었는데, 그 배경에는 고도경제성장이 있었다. 하지만 산별노조를 결성하지는 못했다. 기업 측의 반대가 강하였기 때문이다.

기업 측은 기본적으로 산별운동을 계급투쟁운동으로 보고 산별운동이 기업 내에 전개되는 것을 경계하였는데, 산별운동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간 협조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철강산업이었다. 그 결과 산별로 통일투쟁을 전개하지만 교섭은 기본적으로 사철노련 등 일부의 산별은 제외하고 기업별로 전개되었다. 계급투쟁을 지양하고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노동조합주의가 노동운동의 주류가 되면서 산별노조 건설이라고 하는 이념적 지향도 점점 약화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기업별 노조가 본격적인 시민권을 얻고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1973년 석유위기였다. 일본은 1973년 석유위기를 성공리에 극복하였는데, 그 요인 중 하나가 기업별 노사관계라는 인식이 OECD를 통하여 일본에서 확산되면서 기업별 노조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었다. 그 후 일본 노동조합은 산별노조 건설을 지향하는 운동을 전개하지 않았고, 발족 당시 기본이념에 산별노조를 지향하였던 총평도 1989년 해산하여 렝고를 결성하였는데, 그 결과 기업별 노조가 일반적인 조합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기업별노조로 막지 못한 고용·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

현재, 일본에도 산업별 노조가 있지만, 기업별 노조의 산별 협의체에 불과하다. 즉, 노동3권은 기업별 노조가 행사하고 있고, 산업별 노조는 기본적으로 기업별 노조의 노동3권을 제약하지 못한다. 산업별 노조는 기업별 노조간의 임금 등 정보교류, 산업정책 대응 등의 역할밖에 하고 있지 않다. 산업별 노조 중에서도 기업별 노조의 노동3권을 상대적으로 제한하여 산별노조의 역할을 일정하게 행사하고 있는 곳은 UI젠센동맹, 전기연합에 불과하다.

일본의 기업별 노조는 1991년 버블경제 붕괴 후 큰 한계를 겪고 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노조가 고용·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막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과거 20년간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약 20%에서 35%로 증가하였고, 근로자 1인당 평균임금도 1997년에 피크에 달한 후 현재 약 15% 감소하였다. 5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도 약5% 감소하였다.

이러한 고용·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는 노조 조직률의 저하 가운데 진행되었다. 일본의 기업별 노조는 일반적으로 기업과 유니언숍(union shop) 협정을 체결하고 있어, 종업원은 입사와 동시에 조합원이 된다. 그때 종업원은 정규직에 한정되는데, 기업은 인건비 절약과 고용조정의 용이함을 추구하여 정규직 채용을 억제하였다. 그에 따라 조합원도 감소하여 결국 조직률 저하를 초래하였다. 일본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010년 현재 18.5%이다.

저경제 성장하에 비조합원의 고용과 임금이 더욱 악화됨에 따라 결국 조합원의 처우도 낮아지고 있다. 노조가 고용·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막지 못하는 가운데, 그것의 유일한 방패막은 최저임금제도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절대적으로 낮다.

산별노조 건설의 좌절과 고용·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 속에서도, 노조의 존재의의를 높이는 노조도 있다. 비정규직이 많은 대형 수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 그들을 조직화하여 비정규직의 일할 의욕과 노동조건 향상을 꾀하고 있는 노조, 모기업 노조가 법인을 달리하는 자회사의 종업원을 조직하여 경영개혁활동을 전개, 기업의 발전과 조합원의 노동조건 향상, 더 나아가 출산·육아로 퇴직하는 자를 최소화하여 저출산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노조, 그리고 모기업과 자회사의 노조를 통합하여 기업그룹별 노조를 결성하여 기업그룹경영을 견제하고 그로 인한 기업그룹 수익체질 강화와 자회사 노조원의 노동조건 안정과 모기업과의 임금격차 해소, 비정규직의 조직화를 전개하고 있는 노조도 있다.

이러한 노조의 공통점은 순수한 기업별 노조(기업별 정규직 노조)의 한계를 뛰어넘어 조직확대를 전개하였고, 조합원 누구나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여 일과 삶의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직장환경을 만들고, 재고 등 비효율적인 측면을 개선하여 기업의 수익체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노조는 순수기업별 노조의 극복 노조, 즉 초기업노조라고 명명할 수 있다. 앞으로 이러한 노조가 어느 정도 더 많이 나타나면서, 그 지평을 확대하여 산별노조로 승화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초기업노조의 모범사례, 산별노조로 가는 길 될까

노조의 조직형태를 산별로 전환하는 것 자체가 능사는 아니다. 일본의 사례를 통하여, 노조는 보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를 조직하여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그들의 일할 의욕을 높이고, 능력발휘를 통하여 일과 삶의 보람을 높이고, 기업의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개선하여 기업의 수익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노조활동이 사회전체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조직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조활동이 가능한 곳은 순수 기업별 노조를 극복하는 노조이다. 이러한 노조는 활력이 넘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과 인사노무관리의 모순이 모이는 곳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모기업 보다 자회사의 종업원 쪽이다. 기업과 기업그룹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여 경영체질개선과 노동자의 고용·노동조건을 유지·개선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있는 노동자를 조직화하여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사측에 전달하여 개선 압력을 넣어야 한다.

그러한 가운데 노조의 활력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노조 조합원의 약 68%는 1000명이상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들은 상대적으로 '혜택받은 자들'이다. 그들을 위한 조합활동에는 동력이 따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조합원만을 위한 노동운동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사회적 가치를 표출하지 못한다.

현재 일본에서 고용·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활동이 순수기업별 노조를 넘어 기업그룹, 산업, 더 나아가 사회전체와 그 구성원에게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요구된다. 즉 노조의 사회성·연대의 확대가 요구되고 있는데, 그것의 바람직한 모습의 하나가 산별노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산별노조는 아직 멀고도 먼 지향점의 하나이다. 순수 기업별 노조의 주체들이 노조의 한계를 본격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수 기업별 노조 극복운동이 기존 기업별 노조의 한계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게 할 수 있을지가 산별노조를 향한 첫 발걸음의 동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한 초기업노조의 활동은 기업별 노조의 어용노조화를 견제하면서 변화를 자극하고 있다. 순수 기업별 노조가 이러한 자극을 자신의 운동에 살릴 수 있을지 그렇지 않을지가 앞으로 일본 노동운동을 좌우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릴 경우, 산별노조 운동의 강화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초기업노조 활동이 우리나라의 산별노조 운동에도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 주임연구위원입니다.
*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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