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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벗하는 삶으로 일터를 가꾸다

[아름다운마을이야기] 도시 직장인 이서원님을 만나다

등록|2012.10.23 16:36 수정|2012.10.24 11:21

도시 직장인 이서원님서원님은 일터에서 농촌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주말마다 홍천으로 간다. ⓒ 아름다운마을


서울 사는 직장인 이서원님(33)은 주말이면 강원 홍천으로 갔다가 월요일에 다시 와서 출·퇴근하는 생활을 한다. 지난해 8월부터였으니 어느덧 일 년이나 됐다. 처음 홍천마을에 왔을 때는 아이들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도 어색하게 여겨지고, 이곳 생활이 낯설어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주눅이 들었다. 밥상 앞에서 말 한마디 안 하고 밥만 먹은 적도 있단다. 이젠 아이들이 먼저 장난을 걸 정도로, 주말 농촌 일상이 자연스러워진 게다.

서원님은 금요일 업무를 마치면, 홍천 효제곡마을로 간다. 그리고 월요일 새벽 5시 반쯤 나온다. 오전 7시 경기 과천에 있는 일터에 도착해서 미숫가루로 속을 든든히 하고 도시의 한 주를 시작한다. 주말마다 시골로 가는 서원님을 보고, 주위에서 농사 지으러 가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물론 작은 텃밭을 얻어 친구와 같이 농사도 짓는다. 그렇다고 주말 내내 일만 하다 오는 건 아니다.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온갖 시름을 다 내려놓고, 낮잠도 자고, 공부도 하고, 묵상도 한다. 단순하고 여유로운 농촌 일상이다. 밤이 되면 온 세상이 깜깜해진다. 뒷 간에 가려해도 손전등이 있어야 한다. 보통 10시, 늦어도 11시면 잠이 든다. 직장일도 다 잊고, 직장 동료처럼 강남으로 이사 가려고 어떻게 대출을 받아야 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 남자의 신나는 이중생활

올 가을부터 홍천에서 주말학교 선생님을 하는 서원님. 둘째 넷째 주 토요일마다 아이들 9명과 사진 수업을 하고 있다. 친구들에게 사진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서원님은 마을이나 직장에서 행사 사진을 맡아달라는 제의도 종종 받는다. 요즘에는 직장에서 지원받아 퇴근 후 일주일에 이틀씩 사진학원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은 자연 속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을 찍고 싶어한다. 자신들이 바라보는 사건을 사진 한 장에 천천히 담아내도록 하는 훈련을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오래된 필름카메라 9대를 구해서 아이들에게 나눠 줬다. 필름 한 통을 한 번에 다 쓰지 않도록 세 롤로 잘라서 나눠주고, 서원님이 손수 현상도 해볼 거란다.

서원님 본업은 농어촌희망재단 복지팀 과장이다. 농어촌 여성, 아동, 노인, 그리고 마을공동체를 지원하는 일을 한다.

"제가 하는 일이, 농촌사람들에게 필요한 복지를 제공해주는 일인데, 농촌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한다면 기만적이 되기 십상이에요. 그동안 농림부장차관 중에 경제인 출신이 많다고 해요. 순수하게 손으로 흙 만지며 농사 지어 본 사람이 장차관이 된 적은 없었어요. 농정책이 파행으로 가는 이유가 다 거기 있던 거지요.

올 초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2015년까지 마을 단위 공동경영체 5000개를 육성하겠다고 했는데, 농촌마을을 관행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라 할 수 있지요. 사람과 관계는 보지 못하고, 성과물과 수치만 보는 겁니다. 제가 주말마다 홍천으로 가는 건 똑같이 그런 패러다임에 갇히지 않기 위한 거에요. 땅과 벗삼아 지내는 삶이야말로, 일에서 농생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농정을 안타깝고도 애정있게 바라보는 젊은이의 쓴소리다.

마음 녹인 친구들 노래

한 달 전 서원님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 친구들 9명이 그의 일터로 찾아왔다. 늘상 그가 홍천으로 가서 환영받고 대접받는 쪽이었는데, 이번엔 그가 과천에서 맞이하게 된 거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채비해서 먼 걸음 나왔을 친구들을 기다리며 모처럼 사무실 자리도 청소했다.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친구들이 불러준 노래에 그의 마음이 녹았다.

직장생활 7년, 스스로 세운 원칙대로 고집스럽게 타협하지 않고 일해온 그였지만,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직장에서 쉽게 무너졌거나 동화되었을 수도 있었을 거란다. 버팀목이 되어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때에 맞게 변화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멀리 떨어진 직장에서도 친구들이 지켜본다는 마음으로 더 잘 지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홍천에서 받은 좋은 기운으로 지금 있는 일터에서 즐거운 꿈을 꾸고 새로운 시도도 한다. 그가 요즘 일하면서 즐거운 분야는 이주여성 농업인 고용 지원이다. 제3세계에서 온 이주민, 농업인의 아내, 한국사회에서 가장 소외계층인 이주여성들이 농촌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여성농업인센터에서 방과 후 교실을 열어 아이들에게도 좋고, 이주여성들도 일자리가 생긴다.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기쁘다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서원 님 얼굴도 밝은 미소가 뜬다.

앞으로 농촌 사람들이 스스로 힘 모아 꾸리는 활기찬 마을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아름다운마을> 10월호에 실렸습니다. 이 기사는 생명평화연대 홈페이지(welife.org)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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