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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파견 판치는데, 노동청은 팔짱만 꼈다"

권리찾기사업단 "인천에 무허가 파견업체 최소 75개 영업 중"

등록|2012.10.25 18:22 수정|2012.10.25 18:30

▲ 무허가 등록업체에 의한 불법 파견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 한만송


[기사 수정 : 25일 오후 6시 30분]

"블랙박스 내지 후방카메라를 제조하는 업체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는 제조 성수기가 지나자 아웃소싱(기업 업무의 일부분이나 과정을 제3자에게 위탁해 처리하는 것) 업체 사장으로부터 '알바로 근무할 거면 계속 일하고, 그렇지 않으면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4대 보험도 받지 못하고, (하청)업체만 바뀌면서 원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다. 연차 휴가나 수당 청구는 상상도 못 한다. 불법 파견업체가 넘쳐나지만, 노동청은 이를 외면하고 정보(점검 결과) 공개도 하지 않고 있다."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한 김아무개(32)씨는 1년 8개월째 이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서류상으론 회사를 세 차례나 옮긴 것으로 돼있다. 같은 일터에서 동일한 노동을 하지만, 근로계약만 세 번을 쓴 것이다. 김씨는 정규직 직원이 받는 근속수당·퇴직금·연월차 수당에서 손해를 보았다."

사회양극화를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불법 파견이 도를 넘어서고 있지만, 행정 당국은 팔짱만 끼고 있어 원성을 사고 있다.

노동조합과 정당,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인천지역 노동자권리 찾기 사업단(아래 권리찾기사업단)'은 지난 24일 인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지역 불법 파견 의심업체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번째 조사 보고서 발표다.

권리찾기사업단은 지난 5월 한 달 동안 파견업체 표본조사를 실시해 6월에 불법 파견 실태를 고발했다. 주로 부평·주안·남동공단과 가까운 갈산역·주안역·동암역 등지에서 파견 업체 140여 개를 조사, 그중 불법 파견이 의심되는 업체 81개를 고발했다.

이번 2차 조사도 부평·주안·남동공단과 각각 연계된 갈산역·주안역·동암역 주변에서 7월 한 달 동안 진행됐다. 미등록 불법 파견 의심업체를 방문해 사진을 촬영하고 업체 유무와 사업 현황을 전화 통화로 확인했다. 조사 대상 업체는 112개소였으며, 이중 등록 업체는 34곳에 불과했다. 권리찾기사업단은 인천에 최소한 75개가 넘는 불법 파견업체가 영업 중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청, 관할 아니라는 이유로 관리감독 소홀"

▲ 인천지역 노동자권리 찾기 사업단은 지난 24일 인천시청에서 2차 인천지역 불법 파견 의심업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한만송


권리찾기사업단은 "서울·경기 소재 파견업체들이 남동·계양·부평지역에서 파견 사업을 수행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고 밝힌 뒤 "하지만 노동청은 관할 지청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권리찾기사업단은 "㈜롯데스텝스·㈜디스·㈜이포산업·등의 경우 '알바몬' 누리집에서 여러 업체 명의로 구인정보를 등록, 파견 사업을 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에는 한 군데 업체만을 신고하고 나머지는 무허가 파견 사업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올해 초에 적발된 '시에스(CS)그룹'처럼 세금 포탈 가능성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권리찾기사업단은 "파견업체를 통해 인력을 고용하는 업체가 대부분 삼성·엘지·한국지엠의 계열사거나 사내 하청 형태"라며 "대기업의 이익은 파견노동자의 노동 착취를 통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대자동차 불법 파견 사례와 마찬가지로 제조업 생산 공정에서는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음에도 한국지엠 사내·사외 하청업체에 파견된 노동자들이 범퍼·라이트 조립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 등록된 인천지역 파견업체는 118개소다. 권리찾기사업단의 이번 실태조사는 특정 지역에 한정한 것이라, 인천 전체적으로 볼 땐 불법 파견 업체 수는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행 근로자파견법에 따르면, 31개 업종만이 파견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다. 제조업의 경우 질병·출산·부상이 발생한 근로자를 대신해 통상 3~6개월 동안 파견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악용해 업체를 바꿔가며 고용하는 등의 편법을 이용한 불법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데 있다.

근로자파견법에는 '불법 파견이 적발될 경우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해당 파견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인천지역 무허가 파견 의심 사업장 특별 점검 결과'를 공개하지 않아 의혹을 사고 있다.

또한 정부에서 운영하는 취업 정보 포털 '워크넷'이 제공하는 취업 정보 중 상당수 업체가 미등록 불법 파견 업체라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인천지역 노동청 "시일 두고 조사할 것"

▲ 무허가 미등록 업체가 ‘H-2’(방문취업 비자) 소지자들도 파견하고 있다. ⓒ 한만송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취업 과정에서도 불법 파견이나 위법의 소지가 발견됐다. 'F-2'(동거 비자-결혼이주자)·'F-5'(영주 비자) 소지자의 경우 파견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업체에 파견돼 일을 해도 문제는 없지만, 'H-2'(방문취업 비자-중국·옛 소련 지역 동포)나 'E-9'(비전문취업-고용허가제노동자)의 경우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근로 계약 체결에 제한을 받는다.

하지만 파견업체 일부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과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하고 자격이 없는 외국인노동자를 파견하고 있다. 불법 파견업체 또한 외국인노동자를 파견하고 있다(위 사진 참고).

이대우 금속노동조합 인천지부 수석 부지부장은 "조사된 미등록 파견 업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인천에만 20만 제조업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데 불법 파견 근로자는 더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청이 의지를 가지면 된다"며 "(노동청이) 인력이 없다고 핑계를 대는데 금속노조가 부족한 인력을 채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불법 파견 업체나 불법 파견 의심 현장을 가서 제대로 조사하면 불법 파견 실태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며 "사람을 파는 노예 시장과 무엇이 다르냐"고 노동부를 비난했다.

채규전 금속노조 인천지부 지부장은 "지난 6월에 노동부에 1차 실태 파악 자료를 제출하면서 제대로 된 근로 감독을 요청했지만, 4개월이 지나도록 전혀 달라진 것이 없어 이렇게 실태를 폭로하게 됐다"고 기자회견 취지를 밝혔다.

'고용노동청의 직무 유기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채 지부장은 "필요하다면 관계기관 공무원을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인천북부고용노동지청 근로개선지도과 직원은 "인력이 부족해 현장을 나가서 조사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만 해명했다. 하지만 나중에 전화 통화를 할 때는 "1차 때 금속노조의 제보를 받고 조사해 업체 4곳을 사법 처리했다"며 "북부와 중부고용노동청 관계자들이 대책회의를 열어 조사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력 문제 등으로 당장은 힘들지만 시일을 두고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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