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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방울눈에 송곳니...난 네게 반했어

중요 민속문화재 통영 문화동 벅수를 만나다

등록|2012.10.26 12:37 수정|2012.10.26 15:49

문화동 벅수중요민속문화재 제7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벅수는, 고종 10년인 1906년에 벅수계를 만들어 세운 것이다 ⓒ 하주성


머리에는 관(벙거지)을 쓰고,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파여 있다. 왕방울만 한 눈은 툭 튀어나오고, 양편의 송곳니가 밖으로 삐죽 솟아 있다. 길가에 이런 해괴한 모습으로 서 있는 '벅수'는 마을을 지키는 비보(裨補) 역할을 한다. 지난 13일, 경남 통영시 문화동 세병관으로 오르는 길가에 서 있는 통영 문화동 벅수의 모습이다.

중요민속문화재 제7호로 지정이 돼 있는 이 벅수는, 고종 10년인 1906년에 벅수계를 만들어 세워진 것이다. 벅수 옆에 서 있는 비석에는 이 벅수가 '마을의 전염병과 액운을 막기 위해 '동남방이 허하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세워졌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같아 보이는 장승, 각기 다른 기능이 있다

얼굴채색을 한 벅수의 얼굴이 해학적으로 생겼다 ⓒ 하주성


복판벅수의 복판에는 토지대장군이라고 음각해 놓았다 ⓒ 하주성


장승은 그 기능에 따라 '경계표시 장승' '로표 장승'' 비보 장승' 등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장승의 기능은 대개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경계표시 장승은 사찰 등의 입구에 세워지는데, 잡귀들의 출입을 막고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한단다. 또, 로표 장승은 길목에 세워지는데 길 안내를 역할로 삼는다고.

광주 엄미리의 장승은 마을의 비보 장승임과 동시에 로표 장승의 역할도 겸한다. 목장승 밑에는 광구 OO리, 이천 OO리 등을 적어 놓아 행로 안내를 하고 있다. 비보 장승은 마을의 안녕을 구가하는 장승으로, 모든 장승들은 이러한 비보적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 전국적으로 장승은 지역적 특성이 반영돼 있기도 하다.

마을의 허한 곳을 보충하는 토지대장군

측면길게 늘어진 귀가 마치 석불과 닮았다 ⓒ 하주성


흔히 마을입구나 사찰 입구 등에 세워지는 장승은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르게 불린다. 흔히 '장승' '장생' '장성' '벅수' 등으로 불리는데, 통영에서는 '벅수'라고 부른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 역할도 한다.

문화동 벅수는 남녀 한 쌍이 짝을 이뤄 서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장승은 하나만 서 있는 독장승이다. 독장승은 홀로 서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 문화동 세병관 부근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낮은 지대에 있어 기(氣)를 보강해주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뜻에서 이 벅수가 세워졌단다.

벅수는 벙거지를 쓰고 있다. 또, 턱 밑에는 굵은 선으로 세 가닥의 수염이 표시돼 있다. 벅수의 앞면에는 '토지대장군(土地大將軍)'이라는 글귀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광무십년병오팔월일동낙동 입(光武十年丙午八月日同樂洞 立)'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이 독벅수는 익살스러운 민간 특유의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벅수에 반해 걸음을 떼지 못하다

둥그런 왕방을 눈이 튀어나올 듯하다 ⓒ 하주성


통영 문화동 벅수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채색된 벅수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벅수는 U자형으로 벌린 입과 큼직한 이, 그리고 솟아난 송곳니를 갖고 있다. 비보 장승으로서의 모습이 잘 표현된 것이라 평가된다. 벅수의 높이는 198cm, 둘레는 160cm. 문화동 벅수의 모습에 반해 쉽게 걸음을 떼지 못했다.

벅수 하나만으로도 중요 민속문화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벅수의 중요성이 인정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3일, 통영 답사 2일 차에 찾아간 세병관. 관람을 마친 사람들이 우르르 벅수 앞으로 몰려온다. 그리고 벅수를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더니 다시 동피랑 벽화마을로 향한다. 하지만 난 쉽게 동피랑으로 걸음을 옮길 수 없다. 벅수의 기운을 좀 더 받아가기 위해, 한참이나 손을 떼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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