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선생님, 약속하셨잖아요!"

작은 혁신학교 이야기

등록|2012.10.27 20:43 수정|2012.11.14 14:00
4. 학급이름 짓기

학급이름을 지었다. 아이들과 학부모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의 하나로 학급이름 짓기를 했다. 공모를 한 결과 22가족 중에서 18가족이 응모를 해 주었다. 응모를 위한 기준은 한글이름으로 하되 4글자까지로 글자 수를 제한했다.

추석을 지내는 동안 온 가족들이 모여서 학급이름을 고민하였다. 아빠, 엄마는 물론이고 형과 동생,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까지 참여하였다. 응모한 이름을 보면 나래, 한누림, 꿈마니, 꿈송이, 꿈, 정다운반, 다정한반, 바다, 참나무, 개미, 희망, 하늘, 꽃내음, 꽃잎, 산새소리, 해찬솔, 어깨동무 등이다. 가정통신문을 통해서 학급이름 결정을 위한 가족투표를 진행했다. 한 가족 당 두 개의 이름에 표를 줄 수 있게 했다.

개표를 하는 날에 아이들도 선생님도 마음이 두근두근 하였다. 학급 다모임 진행을 맡은 아이들이 나와서 학급이름을 부르면 선생님이 칠판에 표시를 했다. 그리고 학급이름이 정해졌다. 5표를 얻어서 결정된 우리 학급의 이름은 '정다운반'이었다. 이름을 낸 이유를 다시 읽어보니 '따뜻한 정이 흘러넘쳐 언제나 웃음꽃 피는 사이좋고 정다운 우리들이 되자'라고 적혀 있었다. 1반이나 2반처럼 업무의 편의를 위해 의미 없는 숫자로 표시되는 반 이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정성을 가득 담아 정한 이름이다.

다른 반의 이름도 보았다. 무지개반, 이슬반, 잔디반, 꿈나무반, 사과나무반, 가람슬기반, 무궁화반, 누리반, 미리내반, 푸르미르반, 한빛반, 가을반, 라온반, 밑거름반, 해바라기반 모두 16개의 제각기 다른 이름이 정해졌다. 교실 문 앞에 학급이름이 적힌 예쁜 문패를 달 적에, 이름을 함께 지었던 이들의 정다운 마음도 함께 달린 것을 보았다.

5.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집안에 상(喪)이 나서 특별휴가를 받았다. 아이들에게 내일은 선생님이 학교에 오지 못한다고 말하고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들의 반응이 영 심상치가 않다. 내일 학교에 오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는 아이도 있고, 선생님 가지 말라고 조르는 아이도 있고, 하루 종일 주변을 떠나지 않고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까지.

하교 길에 아이들을 바라다 주러 밖으로 나가는데 아이들이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자석과 같다. 아이들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슬픔이 느껴진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학교 정문 밖까지 겨우 겨우 아이들을 떼어서 보냈다. "요즘 아이들은 선생님을 저렇게 좋아하나!" 지나가시던 아저씨 한 분이 혼잣말씀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 안에 내가 바라던 무언가가 생긴 것을 느낀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을 끌어당기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던 마음으로부터 온 것이다. 여러 가지 시선들은 교사를 주눅들게 할 수 있다. 나 또한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하루에도 여러 번 실패를 하고 또 실패를 하는 것이 또한 교사이다.

하지만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사방치기를 할 때에 죽어도 툴툴 털고 다시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그 과정을 수없이 되풀이 하고도 끄떡없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그때에 마음에 자석이, 아니 빛이 하나 생겨난다. 우리 아이들과 내가 좋아하는 달처럼 별처럼 반짝이는 빛이다. 아이들을 품었던 감각이 오래도록 남아서 잊혀지지가 않는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약속했던 맛있는 선물을 고르러 나가야지~

6. 선생님, 약속하셨잖아요!

세* 어머니께서 내게 전화를 두 번이나 하셨을 때, 나는 동학년 교사들과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서 현장체험학습 사전답사를 하고 있었다. 교사들이 만든 안내책자와 어린이 대공원에서 관찰하게 될 동물들의 순서를 꼼꼼하게 체크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등교시간에 찾아오신 세* 어머니와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세*이가 학교생활을 잘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혁신학교 한다고 담임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을 때, 막상 아이는 학교에도 가기 싫을 만큼 힘든 일들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마음 속에서 들렸다.

하루 종일 마음이 우울하다. 1교시에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세*이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도 전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선생님을 부르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한다. 수학 수업을 하고 중간놀이를 하고 숲으로 가서 나뭇잎으로 모자 만들기를 한다. 시간은 다시금 빠르게 돌아간다. 알림장을 쓰려는데 아이들이 이런 저런 질문을 쏟아낸다. 급식시간에 맞추어 가려면 빨리 알림장을 써야 하는데……. 세*이도 질문을 한다. "세*아,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줄게"라고 대답한다. 그때에 세*이가 다시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아까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참 그랬지. 선생님이 약속을 깜빡 잊을 뻔 했구나! 정신을 차리고 세*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오늘은 학교 설명회가 있는 날이다. 엄마, 아빠 모두 오시라고 저녁 시간을 잡아 놓았다. 설명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교문 앞에 나가서 보안관 아저씨와 함께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둠이 깔려서 얼굴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낯선 학부모님들께 정다운 인사를 한다. 간간히 우리 반 어머니와 꼬맹이들의 모습이 보일 때에는 더욱 반갑다.

마지막 순서는 우리들의 지나온 기록이 담긴 동영상이다. 여름 방학 때, 공사 중인 학교에서 개교 업무를 보다가 화장실이 완공되지 않아 단체로 지하철 화장실로 가던 교사들의 사진도 보인다. 학교를 열 때에 박을 깨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 교장 선생님께 교가를 배우던 모습, 중간놀이 시간에 모래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 송편 만들기, 배추심기, 숲속으로 산책가기……. 한 달 동안 정신없이 살았는데 우리가 한 일이 참으로 많았구나!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마음 속에 있던 근심걱정도 사라져 간다. 내가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쏟아 부었던 몇 달의 시간들이 나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을 본다. 엄마를 따라 함께 학교에 왔던 세*이는 학급 설명회가 끝난 후에도 교실에서 더 놀겠다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아, 집에 가서 잠 자고 내일 학교에 와야지~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가시는 학부모님들을 교문까지 배웅하는데 이곳이 진짜 학교인가 싶어진다. 나도 오늘은 집에 가서 잠만 자고 와야겠다. ^^

교표'함께하는 프로젝트'에서 공모로 당선된 학부모 작품 ⓒ 이은주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