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쑥대밭 마을... 날만 새면 미친듯이 철탑으로"

[기획- 원전을 버리자⑥] 밀양 송전탑 반대하는 30장 탄원서에 담긴 노인들의 절규

등록|2012.11.04 16:02 수정|2012.11.04 16:02
대선을 맞아 <오마이뉴스>와 녹색당은 원자력 발전 등 국가 에너지 정책 전환을 화두로 던집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원전 찬반 논란이 뜨겁습니다. 한국에서도 고리와 월성 원전에서 고장사고가 자주 발생해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획 '원전을 버리자'를 통해 안전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원전 문제는 우리 일상, 그리고 미래와 관련이 깊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제안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 이응인


"제 나이 26살에 이곳에 터를 잡고 한평생 자식 6남매 낳고 온 식구 배고파 가면서 손바닥만한 땅을 평생 일구어 이제 늘그막에 영감 할멈 마음 편히 살아보려 했는데, 난데없이 고압 철탑이 웬말입니까. 나는 피땀 흘려 가꾼 이 논밭과 우리 목숨을 이 철탑과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를 죽이고 철탑을 세울 겁니까. 누구를 위한 법입니까. 만약에 이 늙은이의 뜻이 받아들여진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 길 밖에 없습니다. 지금 남편은 병이 들어 어디로 가서 살 데도 없습니다. 우리는 보상도 필요 없고 옛날처럼 밭에 채소 일구면서 지금 이대로만 살게 해 주세요. 이 늙은이를 살려 주세요. 부탁하옵나이다."

경남 밀양시 부북면 대항리 평밭마을에 사는 구화자 할머니가 쓴 탄원서다. 초고압 송전철탑이 들어서면 "죽는 길 밖에 없다"며 "지금 이대로만 살게 해 달라"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 밀양시 산외, 부북, 상동, 단장면 주민들이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에 반대하며 한국전력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나이 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법원에 내기 위해 '탄원서'를 자필로 작성했다. 사진은 구화자 할머니의 탄원서. ⓒ 윤성효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가져가기 위해 송전선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간에 변전소를 연결하는 송전선로다. 우선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공사부터 진행하고 있다.

밀양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탑이 건설될 경우 환경 훼손뿐만 아니라 전자파로 인해 동식물과 사람까지 살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송전탑 건설 이야기가 나온 7년 전부터 땅값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매매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

주민들은 끈질기게 싸우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고 이치우(74) 어르신이 분신자살했으며, 지금은 밀양 단장,산외,부북,상동면 주민들이 대책위를 구성해 싸우고 있다. 주민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움막과 천막을 설치해 놓은 현장은 9곳이나 된다. 주민들은 밤낮으로 교대로 보초를 서다시피 해왔다.

한국전력은 송전탑 건설 공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송전탑 건설 부지 수용은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 한국전력과 주민대표들이 10월말부터 대화를 진행하면서 현재는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그동안 두 차례 '사전 실무회의'가 열렸지만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갈등은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

대책위, 법원에 낼 주민 탄원서 받아

765kv 초고압 송전철탑 건설에 반대하고 있는 밀양 단장,산외,부북,상동면 주민들이 자필로 탄원서를 썼다. 모두 30장 정도다. 이 탄원서는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고 이치우 열사 분신대책위원회'가 법원에 낼 목적으로 받아둔 것.

탄원서에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절박함이 묻어 있다.  자필로 쓴 이 탄원서들은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있지만 의사 전달은 충분하다. 어르신들은 탄원서에 주소와 이름을 적은 뒤, 붉은색 손도장을 찍어 놓았다.

탄원서에 한결같이 나오는 문구는 "이대로 살게 해달라"는 것. 그들은 이곳에서 살다가 죽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마치 유서와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한국전력공사 측은 공사를 막는 주민들에 대해 고소고발과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다. 주민대표들이 지난 10월 30일 열린 '실무회의' 때 한국전력 측에 고소고발 취하를 재차 요구했지만, 법적 문제는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은 "한국전력측은 한 달 소득이 50만원도 안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손배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손배를 왜 걸었을까 생각해보면 겁박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탄원서에 대해 이계삼 사무국장은 "어르신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비슷한 말을 써놓았다. 오직 이대로 살다가 죽게 해 달라는 것이다"며 "탄원서를 읽어 보면 가슴이 뭉클한 내용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다음은 어르신들이 쓴 일부 탄원서의 내용이다.

▲ 밀양시 산외,부북,상동,단장면 주민들이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에 반대하며 한국전력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법원에 내기 위해 '탄원서'를 자필로 작성했다.사진은 구덕순씨의 탄원서. ⓒ 윤성효


"철탑 공사를 강행한다면 한 목숨을 바쳐 막을 것이다. 한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농민으로서 고향 산천을 지키려는 서민의 마음을 제발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진해권).

"철탑 때문에 땅이 매매가 되지도 않을뿐더러 지가는 터무니없이 내려가서 제가 땅 매입시보다 막대한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부디 철탑이 서지 못하도록 하여 주십시오"(김서백).

"17살에 시집 와서 80평생 농사지으면서 자기(자식) 낳고 살고 있습니다. 송전탑이 들어서면 조상님한테 죄가 되는 짓 같아 죽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땅 우리가 지키는 것이 죄가 됩니까. 도와 주십시오"(손희경).

"우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움막에서 밤을 새우며 송전탑을 막는 것은 우리의 자손들이 행복한 고향을 찾을 수 있도록 마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송전탑이 들어선다면 난 불 살고 죽을 겁니다"(박순연).

"아무리 국가기간산업이라 할지라도 연로하고 병약한 농촌의 청정마을마다 엄청난 규모의 송전선로가 건설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물적·정신적 피해가 발새알(발생할) 것이며, 특히 화악산 평밭은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이로 인해 경제적 소득을 일구며 살아온 지역으로 송전사업의 환경훼손으로 생업 활동에 큰 피해를 모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이희암).

"불안합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몇 안되는 동네 분들과 싸워여 하는 고통을 누가 안단 말입니까. 살이 떨립니다. 처음 겪어보는 불면증을 앓고 있습니다. 한전과 정부가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고 언제까지 싸워야할지 걱정입니다. 날마다 어지럼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면서도 날만 새면 산으로 미친듯이 철탑 막으러 달려 나옵니다. 집안 일은 엉망이 된지 1년이 넘었습니다"(배수철·전혜영).

"우리는 요대로만 살고 싶습니다. 보상을 더 받으려고 공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송전탑이 꼭 필요한 전기공사라면 사람이 안 사는 먼 곳으로 공사를 하든지 백지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땅갑 하락과 생명에 지장을 주는 전자파의 위험에서 제발 살게해 주시기 바랍니다"(정임출).

"이 노파는 81세 된 할머니입니다. 너무나 억울함을 금할 길이 없어서 거친 글이나마 펜을 들었습니다. 화악산 기슭 오솔길. 비가 오면 돌부리에 발가락 차여 아파하며 10리길을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남편 없이 4남매를 (키웠습니다.) 내 온몸 수족이 굳어 쓸 수 없이 병에 걸려 죽을 판에(지경이 되어) 이곳에 와서 병이 다 회복되었습니다. 삼년 전 일인데 아득합니다. 내 생명을 연장하여 우여곡절 끝에 잘 살아가고 있는데, 아니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이 푸른 숲으로 녹색이 꽉찬 이 유명한 화악산에 765kv 송전탑이 웬말입니까. 한전 사장이 정부와 짜고, 이렇게 무참히 우리집 뜰 앞으로까지 재산을 송두리째 강탈을 당하고 너무너무 억울합니다. …"(이금자).

"이 할매들(한테) 이 나라가 이렇게 고통을 줍니까. 매일 같이 산에서 생활해야 하니 죽을 지경입니다. 송전탑이 세워지지 않으면, 농사만 지으면서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이 할매는 욕심이 없습니다. 오직 요대로 살다가 죽도로 해주십시오"(구덕순).

▲ 밀양시 산외,부북,상동,단장면 주민들이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에 반대하며 한국전력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법원에 내기 위해 '탄원서'를 자필로 작성했다.사진은 이금자 씨의 탄원서. ⓒ 윤성효


▲ 밀양시 산외,부북,상동,단장면 주민들이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에 반대하며 한국전력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법원에 내기 위해 '탄원서'를 자필로 작성했다. 사진은 정임출씨의 탄원서. ⓒ 윤성효


▲ 밀양시 산외,부북,상동,단장면 주민들이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에 반대하며 한국전력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법원에 내기 위해 '탄원서'를 자필로 작성했다. 사진은 박순연 씨의 탄원서. ⓒ 윤성효


▲ 밀양시 산외,부북,상동,단장면 주민들이 765kv 송전선로 건설공사에 반대하며 한국전력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법원에 내기 위해 '탄원서'를 자필로 작성했다.사진은 손희경 씨의 탄원서. ⓒ 윤성효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