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딱지 붙은 사람들, 쿵쿵 걸어 시청 앞으로
[생명평화대행진③] 유린된 결사·표현의 자유 외치며 걷는 사람들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을 벌이는 강정마을 주민들, 용산참사 유가족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 이 땅에서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 10월 5일 제주도에 모였다. 이들의 발걸음에는 '생명평화대행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섬을 한 바퀴 돌고 뭍으로 올라 서울을 향해 걷기 시작한 지 20여 일이 지나고 있다. 이제 막바지다. 지난 29일 평택을 출발해 오는 11월 3일 서울광장에 도착하는 마지막 일정 참가자들이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말]
'지금 이 시간(오전 2시가 넘었습니다)에도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새벽 첫차로 일터에 가기 위해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 내일 일거리가 없을까봐 걱정하며 잠든 일용직노동자도 있겠구나. 그런데 일하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너무 많구나.'
행진단을 걸음에서 만난 전국의 투쟁하는 노동자들, 추워진 날씨에도 거리의 천막에서 내일의 투쟁을 위해 잠들었을 그들을 떠올려봅니다.
▲ 지난 8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역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SJM과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사측에서 동원한 용역폭력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조합원들의 실태를 토로하고 있다. ⓒ 남소연
민주노조 활동이 해고 사유가 된 전남의 '보워터코리아', 심각한 환경파괴와 노동자들을 탄압으로 성장한 광양의 '포스코', 2009년 250여 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한 창원의 '대림자동차', 민주노조를 없애려고 친인척을 동원한 회유와 협박·부당해고를 일삼는 '㈜센트랄',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은 무시한 채 손배가압류와 부당징계로 노동자를 탄압하는 울산의 '현대자동차'.
청와대·경찰·사측이 합작한 노조파괴 공작이 이뤄진 구미의 'KEC', 쓰레기 수거업무 등을 하청업체에 위탁해 청소노동자들은 착취하는 경산시청, 부동산 투기를 위해 매각과 정리해고를 저지른 부산의 '풍산마이크로텍', 노조 파괴 전문회사인 창조컨설팅과 노동부가 함께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짠 '유성기업'.
이제 그 걸음이 경기도의 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시그네틱스·동서공업·3M·주연테크·포레시아·파카한일유압·쌍용자동차·수원여자대학의 노동자들과 인천의 콜트콜텍·대우자동차판매 노동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그리고 행진단이 미처 만나지 못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봉쇄당한 노동자들의 외침 그리고 '결사와 표현'의 자유
▲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와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이 지난 17일부터 울산 현대차공장 명촌중문 인근 9호 송전탑에서 정규직 전환 이행을 촉구하는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천의봉 사무국장이 송전탑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 정민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은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자로 살아가기 힘든 사회가 또 있을까요? 노동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 힘겨운 노동에 삶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 불안정한 노동과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폭력으로, 법으로 봉쇄당하고 있습니다.
인간다운 삶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해고되거나 감옥에 가게 됩니다. 용역과 경찰의 폭력에 시달리고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을 떠안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권력을 가진 자들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세상에서 삭제시키려고 합니다.
"함부로 해고하지 말아라, 비정규직이라고 차별하지 말아라, 불법파견을 반대한다, 특수고용노동자도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라, 최저임금을 높여라, 건강하게 일할 수 있게 하라, 원청사용자가 책임져라, 노동조합활동을 보장하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나요? 그들의 목소리가 모든 사람들에 닿아 함께 연대하고 세상을 바꾸길 희망하는데, 권력과 폭력으로 가로막힌 벽은 두껍게만 느껴집니다. 시민들의 비판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권력은 노동자들에게 더욱 강도 높은 탄압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업과 정권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투쟁의 날들은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봉쇄되는 이유는 그들의 목소리로 바뀔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자본의 편에 서 있는 자들은 그 두려움 때문에 노동자들의 권리와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질 때도 많은 저항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들의 요구로 노동자들의 권리는 세계인권선언 23조로 선언됐습니다.
이 조항은 노동자도 시민이며 시민으로서 기본적 인권을 갖지만 개별 노동자로서는 시민에게 보장된 기본권을 제대로 누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개별 노동자가 이윤만 생각하는 자본가에 대항에 자신의 기본권을 누리기가 어려우니 단결해서 싸울 수 있는 권리를 통해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한 조치입니다.
▲ 세계인권선언 23조. <만화로 보는 세계인권선언> 중 ⓒ 국가인권위원회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세계인권선언 23조 4항)
노동자의 권리 중 결사의 자유는 노동권의 핵심입니다. 세계인권선언뿐만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ILO 헌장 서문에서는 "세계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를 기초로 함으로써만 확립될 수 있으므로, 생산에 참여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중략) 결사의 자유 원칙의 승인 등이 급선무이므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다음을 포괄하는 권리를 수립했습니다.
1. 노동자의 조직을 결성하거나 가입할 권리
2. 스스로 선택한 지도자를 선출할 권리
3. 노동자 조직이 스스로의 프로그램을 개발할 권리
4. 노동자 조직을 통하여 고용주에게 집단적 항의를 할 권리
5.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조직을 인정하고 단체협약에 도달할 목적으로 선의로 협상할 고용주의 의무
6. 교착상태의 경우 노동자의 파업권
이 모든 선언과 약속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에 저항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은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지속적인 진보에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했습니다. 노동자들이 함께 연대하고 결사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자 민주주의 기본바탕이 되는 표현의 자유는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권리입니다. 또한 표현의 자유가 폭력과 억압에 맞서는 민중의 힘이 되기 위해서는 결사의 자유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노동자들의 표현이 불법이 되는 나라
▲ 현대차 비정규직 집회 지난 8월 21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떤가요? 헌법에도 노동삼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파업과 표현 행위들은 불온시하고 있습니다. 불법딱지를 붙여 경찰을 동원하고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감옥에 가두면서, 용역과 경찰의 폭력에는 눈감는 사회입니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파업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경총 "공공부문 노조 총파업 엄정 대처해야" (뉴시스, 2012.10.30)
충북교총 "학생을 볼모로 파업과 선전 선동 말라" (<충청일보>, 2012.10.25)
철도노조 27일 파업돌입... 3년전 악몽 재현되나(한국경제TV, 2012.10.22)
학교 비정규직 총파업 예고... 급식·행정 업무 대란 오나(<경인일보>, 2012.10.23)
무림페이퍼 파업장기화... 진주경제 악영향(<국제신문>, 2012.10.17)
기아차 파업손실 예상보다 크네(<매일경제>, 2012.10.12)
사회보험 6개 노조대선 앞두고 정치파업 (<서울경제>, 2012.10.10)
기재부, 파업·태풍 8월 경기 부진에 악영향(SBS, 2012.10.09)
최근 한 달 동안의 파업과 관련된 기사의 제목들입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제목의 기사들은 많지만 노동자들의 파업의 중요성이나 정당한 권리행사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기사는 없습니다. 특히 경제인, 경제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파업이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정부와 경찰의 입을 빌어 '불법파업 엄정대응'이라는 기사를 실어 보냅니다.
이런 보도 때문에 노동자들의 파업은 시민들을 볼모로 해 불편을 초래하고 경제상황을 악화시키며, 폭력과 불법이 난무하니 처벌돼야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 자본의 폭력은 더욱 심합니다. 자본의 폭력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희망의 삶을 꿈꾸는 노동자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습니다. 그 자본의 폭력을 폭로하는 노동자들의 표현이 불법이 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한국 노동자들의 이런 현실에 대해 국제인권기구는 "파업권에 대한 규제는 지나치게 제약적이고, 노동자들의 행위의 합법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정부당국에게 거의 절대적인 재량권이 주어져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파업행위를 범죄시하는 정부의 접근방식은 '전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것'이며, 과도한 경찰력이 사용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형사소추를 중지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업무방해'에 관한 형법 제314조에 근거한 노동자들에 대한 기소 및 과도한 물리력 사용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파업뿐만 아니라 유인물만 돌려도 '업무 방해'로 처벌하는 것은 합법성·정당성의 이름으로 억압(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폭력에 맞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오는 생명평화대행진
▲ 비가오는 청주시내를 걷고있는 생명평화대행진 행진단원들, 비로 인해 신발이 젖어 맨발로 걷는 행진단원들도 생겼다. ⓒ 장현우
권력을 가진 자들의 폭력에도 여전히 자신의 권리를 외치는 노동자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생명평화대행진이 모아오고 있습니다. 그 걸음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은 우리 모두의 삶의 모습이며 우리 모두의 목소리입니다.
이 땅의 고통받는 이들의 삶과 투쟁을 만나는 '2012 생명평화대행진' 한 달간의 여정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행진단의 발걸음이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당당하게 투쟁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그 이야기들을 안아오는 행진단의 걸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쿵! 쿵! 걸음을 걸을 때마다 쌓여가는 이야기만큼 그 소리가 커져 이 땅을 울리는 큰 울림이 돼 인간다운 삶의 세상을 좀 더 앞당겨 주리라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랑희님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민주노동자연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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