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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이 바꾼 내 인생

옥동초 작은음악회를 위한 교사 밴드 연습기

등록|2012.11.01 11:14 수정|2012.11.01 12:06
언제나 따라가기만 했다.

대학교 다닐때는 관숙이를 따라했고 초등학교 다닐때는 지연이를 따라했다. 공부 잘하는 지연이를 따라서 도서관도 가 보았고 중학교때는 우등상을 타고 싶어하는 그녀를 따라서 같이 열을 올리며 공부했다. 대학때 관숙이가 채식을 한다기에 얼른 따라했었고 2학년 여름방학때 어학연수 갔다 오길래 그 다음해에 혼자 배낭여행을 떠났다.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 본적도 없다.

뒤에서 궁시렁 궁시렁 거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또랑또랑 내 의견을 말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서투르다. 하다못해 월요일마다 교무실에서 하는 학교 직원회의 시간에도 맡은 일과 관련해서 전달사항을 쭈빗거리면서 말하기 싫어 메신저로 내용을 전하고 침묵하는 편이다.

드럼을 치고 내가 달라졌다 

▲ 퇴근후 연습하는 모습. ⓒ 김광선


그런 내가 요즘, 리더가 되었다. 옥동초등학교에서 학예회 대신, 겨울이 오기 전 달빛을 맞으며 늦은 저녁 느티나무 아래에서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거기서 음악을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모여서 밴드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학생밴드는 이미 활약중에 있어서, 반년 넘게 점심시간이나 방과후활동시간에  다목적실에서 흘러나오는 윤도현밴드의 '나는 나비'나 클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를 들으면서 많은 선생님들이 흐뭇함 반, 부러움 반으로 바라보고 있던 터였다.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퇴근 후 같이 연습해보자고 했다. 거기서 나는 덜컹 드럼을 맡았다. 드럼을 잘 치시는 유형욱 선생님이 따로 있긴 한데, 겁 없이 달려든 건, 단순히 '나도 드럼을 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피아노를 오랫동안 배워서 건반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기타도 '죽어라'연습하면 될 것 같았지만 왠지 끌리는 건 4박자만 겨우 익힌 드럼이었다.

"으하하하. 역시 자유로운 영혼이야. 열심히 해 보세요."

레슨비는 따로 없지만 술만 사면된다는 유형욱 선생님의 말에 얼른 드럼 막대를 잡았다. 밴드곡은 들국화의 '행진'이었다. 악보를 받은 바로 그날부터 학교버스 아이들 태워서 보내고 업무 마치고 오후 5시에 연습실로 향했다. 베이스 기타는 3학년 박근호 선생님, 일렉트릭 기타는 2학년 남현선 선생님, 건반은 도움반 이순영 선생님,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신 이영숙 행정선생님이 또 다른 피아노를 맡고 노래는 교무부장인 유형욱선생님이 기타를 치면서 부르기로 했다. 

▲ 드럼악보 ⓒ 김광선


3일 정도는 개인 연습을 하고 4일째 되던 날부터는 같이 합주를 했다. 드럼 치느라 무릎 관절이 허해지고, 어깨 아프고 엉덩이 쑤신 건 그래도 참을만했는 데, 확실히 후회한건, 드럼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냥 쭉쭉 나가줘야 다른 악기들이 따라올 수 있다는 걸 알고부터였다.

'슬쩍 슬쩍 쳐도 되고 가끔 가다가 작은 소리로 틀려도 되는 다른 악기로 할 걸.'

한참을 행진하고 또 행진하고 있는 데, "그만, 그만" 카리스마 넘치시는 유형욱 선생님의 외침이 한구석에서부터 펴져 들려왔다.

"박자가 왜 이래?" 

눈썹이 위아래로 산을 긋고 고개가 갸우뚱해지신다. 다들 걱정하는 눈으로 나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긴장한 나는 "건반이 가다가 느려지 길래, 얼른 느리게 쳤는데요" 라고 말하니, 이순영선생님은 "드럼이 '행~진'부분에서 느려져서 맞추느라 그랬는데......"라고 대답한다. 어처구니 없다는 어두운 표정과 함께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냈다는 밝음을 동시에 갖고 유형욱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베이스 드럼을 발로 빵빵 차 주세요! 앞서서 나아가세요. 드럼이 리드(이끌다)를 하는 거지. 서로 따라가면 안돼요."

순간 깨달음 하나가 공중을 빙빙 돌면서 원을 그리다가 가슴 속에 확 박혔다.

'아, 이제는 내가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구나.'

옆 사람 참견하지 말고 누구 따라가지도 말고 그냥 묵묵히 갈 길을 가야한다. 정해진 박자에 가슴에 불이 지펴 올라도 손과 발은 스틱(손 막대)과 킥(발로 차는 것)으로 냉정하게 쿵쿵 밟아줘야 한다. 그래야 그걸 보고 다른 악기를 치는 사람들이 따라온다.

어쩐지 빛나는 드러머(드럼치는 사람)와 훌륭한 지도자는 서로 많이 닮았더라. 내 모습도 드럼 덕분에 많이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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