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서 밥 굶기 싫다면? 기억하세요 '7-12-7'
[역사와 함께하는 쿠바 자전거기행10] 산티아고 데 쿠바-까마구웨이
▲ 바야모 까사 주인과 함께, 그의 집 앞에서 ⓒ 이규봉
전혀 성탄절 같지 않은 분위기의 성탄절 아침, 닭이 외치는 울음소리와 소란스러운 말발굽 소리에 잠이 깼다. 이날 여정은 라스 투나스(Las Tunas)주의 주도인 라스 투나스까지 80km 정도. 무척 여유가 있다. 산티아고 까사에서 지불한 것과 똑같이 하루 숙박에 25세우세, 아침에 3세우세 점심 도시락으로 2세우세를 지불했다. 주인 식구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바야모를 출발했다.
지도를 잘 봤지만,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 올긴(Holguin)으로 가고 있었다. 고 원장이 바로 알아챘다. 바야모 북쪽에는 올긴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곳 가까운 데에 카스트로의 고향이 있다. 역시 함께 온 보람이 있다. 자칫했으면 방향이 완전히 다른 길로 갈 뻔했다. 지나는 행인한테 방향을 묻고 있는데, 옆에 있던 빨간색 옷을 입은 한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며 자신을 따라오라는 몸짓을 한다. 골목을 몇 차례나 지나더니 곧바로 가라며 "아디오스!"를 외친다.
가는 길은 너무 지루할 정도로 곧게 나 있다. 고개는커녕 굽은 길도 별로 없을 정도. 수십 킬로미터가 곧은 길이다. 라스 투나스까지 가는 도중에 길가에서 토마토를 파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자기 집 앞 도로에 잘 익은 토마토를 한 30개쯤 놓고 팔고 있었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신선한 과일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맛볼 수 있는 활력소가 된다. 흥정을 할 것도 없이 한 통 전부에 1세우세란다. 30개씩은 필요하지 않고 10개만 해도 충분해서 10개 정도를 1세우세로 사서 그녀의 집 앞 그늘에 앉아 나눠먹었다. 집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그 텃밭에서 기른 토마토인 듯. 이렇게 해서 푼돈을 좀 벌면 배급 받는 생활이 조금이라도 윤택해질 수 있겠지...
더 이상은 까사를 이용하지 않겠다
낮 12시가 좀 지나 라스 투나스에 도착했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라스 투나스 호텔이 멀리서도 잘 보였다. 오늘은 호텔서 묵자고 제안했다. 까사의 가격이 동일한 게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호텔 하루 숙박비는 아침식사까지 포함해 33세우세였다.
이제 실마리가 풀렸다. 까사 주인들이 우리가 가는 마을의 까사를 찾아주겠다고 너무도 친절하게 알려준 것은 그들끼리의 카르텔이지 않았을까? 미리 가격도 다 맞춘 것이다. 숙박비 25세우세에 두 사람 아침 6세우세를 포함하면 까사에서 두 사람당 31세우세를 지불한 것이다. 호텔비와 거의 같다. 그러나 편안한 걸 따지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호텔이 좋다.
앞으로는 가능한 호텔에서 숙박하자고 합의를 봤다. 물론 까사의 좋은 점도 있다. 주인과 소통할 수 있는 점이 바로 그것. 하지만 어차피 말도 거의 안 통하니 한계가 있다. 지방에 있어서인지 호텔 프론트에 있는 직원들은 거의 영어를 할 줄 몰랐다.
맛있는 닭고기 수프... 하지만 성탄잔 만찬은 꽝
체크인을 하려니 아직 이르다며 오후 2시까지 기다리란다. 마침 점심 때고 해서 식당 겸 까페에 들어갔다. 식당 겸 카페에 붙어있는 넓직한 바깥 옥상으로 나갔다. 맑은 하늘을 쳐다보며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맥주를 주문했다. 배가 고파 아이패드에 있는 스페인 사전을 찾아보며 닭 수프를 주문했다. 평소 습관대로 스프에 뿌릴 후추를 부탁하려 했으나 후추에 해당하는 스페인 단어를 알 수 없었다.
스페인어 사전을 이용해 검색해 보니 검은색 후추는 '삐미엔따 네그로'이었다. 바로 효과를 보았다. 가져온 후추를 스프에 넣어서 음미하니 맛이 최고였다. 이렇게 맛있는 닭고기 스프를 먹어본 적이 없다. 정말 맛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너무 배고프고 목이 말랐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정말 맛있다. 맥주를 더 마시고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오후 4시. 그제서야 호텔 관계자로부터 체크인을 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약속한 시각보다 2시간이나 지나서야...
성탄절 저녁 만찬을 기대하며 호텔에서 랑고스타(바닷가재), 비프스테이크, 생선필렛, 과일샐러드 등을 주문했다. 그러나 모두 만족하지 못했다. 과일샐러드라는 것이 파파야 4조각과 파인애플을 얇게 썰은 4조각이 전부. 2011년 성탄절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생전 처음 성탄 분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곳에 있었으며, 결혼한 이후 처음으로 아내와 떨어져 보낸 성탄절이기 때문이다.
라스 뚜나스 호텔 카운터의 남자 직원은 영어가 수월했다. 따라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일정 중에서 하루 주행 거리 주변에 큰 도시가 없어서 숙소를 찾기 어려워 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의 정보를 얻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물어보기로 했다. 그곳은 산타클라라와 마탄사스 사이의 콜론 지역이었다. 그래서 전 선생이 그 지역의 숙소에 대해 물어보기로 하고 저녁을 먹고 로비로 내려갔다. 카운터의 직원은 숙소에 대해 이것저것 뒤져가면서 정보를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또한 전화도 걸어서 확인까지 해줬다. 적어도 콜론에는 '호텔 산티아고 아바나'가 있다는 것이고 외국인도 잘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타지 여행에서 작은 정보는 위안이 된다. 로비에는 밤이 되면서 젊고 늘씬한 몸매의 쿠바 아가씨들이 여럿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아마 늙수그레한 캐나다 남자 관광객들과 어울려 있는 것을 보니 이곳에도 자본주의의 물이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운터에서 일하는 사람 이야기에 의하면 성매매가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성탄절 하루가 마무리됐다.
아시나요? 쿠바 식사시간은 '7-12-7'
아침에 윤 원장의 자전거 바퀴가 납작해졌음을 알아차렸다. 아주 미세한 구멍으로 실펑크가 난 것이다. 아주 가느다란 것에 찔려 공기가 아주 조금씩 새나가 주행 중에는 알지 못하고 있다가 밤새 공기가 모두 빠진 것이다. 쿠바의 길은 정말 깨끗하다. 물자가 부족해서 길에 있는 못 하나라도 필요해 챙겼기 때문일까. 아무튼 베트남을 다녔을 때와 비교하면 길은 너무 깨끗했고 그래서인지 펑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이후로 아바나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의 펑크도 없었다. 참으로 다행이다. 한 번 펑크로 30분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고 원장은 아침마다 자전거를 점검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고 원장 부부는 쿠바에 가려는 마음에 자전거에 늦게 입문했다.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그들이 보름 넘게, 그것도 방학 중에 병원을 쉬고 여행 간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고 원장은 나와 함께 대전의 한 시민단체 공동대표로 있다. 내가 쿠바에 자전거 여행을 간다고 넌지시 말했더니 자기도 가겠다고 한다. 그런데 부부가 함께 가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난감했다. 초보에다 남자도 아닌 여자와 함께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간다면 여행 일정이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가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 실은 고 원장이 쿠바에 꼭 가보고 싶은데 아내를 두고 떠나기 싫어서 막무가내로 같이 가자고 했단다. 그 부부는 예전에도 병원을 1년 쉬고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것도 젊은 나이에. 돈 버는 것보단 얼마나 잘 쓰나를 생활 철학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절대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 모범적이고 보기 드문 참살이 의식이 있는 의사다.
아침식사는 7시부터다. 하지만 10여 분이나 늦게 문을 열었다. 물론 문은 그 시간까지 잠그고 있어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사회주의 전통 때문인가. 아침은 오전 7시, 점심은 낮 12시, 저녁은 오후 7시가 돼야 할 수 있다. 이른바 7-12-7 식사. 그 시간 이전에는 들어갈 수 없다. 우리 식대로 하면 참말로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 자본주의 의식이 덜 스며들어 노동자들은 그만큼 여유를 갖고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식이 그야말로 웃기는 것 아닐까.
파리 가득한 식탁
▲ 우리가 지나간 거의 모든 길이 이렇게 생겼다. ⓒ 이규봉
체크 아웃을 하려고 했더니 바로 보내주지 않는다. 방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다는 것. 아침부터 기분이 상했다. 전 선생이 말한다. 중국은 이것보다 훨씬 심하다고. 심지어는 체크 아웃할 때 이런 문제로 싸움이 잦다고 한다. 중국인의 상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돈 생길거리를 만드는 것을 두고 말함인가.
도로는 역시 직선으로 곧게 뻗었고 매우 완만했다. 고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히 오르막이 없으니 내리막의 즐거움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길가는 목장과 사탕수수밭뿐이다.
한참을 가자 길거리에서 바비큐를 썰어 빵에 싸주는 가게가 나왔다. 맥주와 함께 간식으로 먹었다. 점심 때 도착한 마을에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매우 허름했고 식탁에는 파리가 가득했다. 둥그런 식당에 연신 파리가 날아들었지만 에어컨도 있고 다른 식당에도 우리에게 눈웃음을 던지는 쿠바 사람들이 맥주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샐러드, 밥 그리고 맥주를 주문했다. 쿠바에서 밥은 우리식으로 하면 팥밥이다. 짭짜름한게 우리 입맛에 딱 맞다. 식사 비용은 210세우페였다. 팁까지 230세우페를 지불했다. 물론 쿠바에서는 유럽인들의 전매 특허인 팁 문화는 아직 형성돼 있지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 물결이 몰아치면 분명 팁 문화도 형성되리라.
이제 까마구웨이까지(Camaguey)는 40km 쯤 남았다. 점점 서쪽으로 가면서 아무것도 없던 도로에 점차 물건 파는 곳이 나타났다. 한 마을을 지날 때 보니 주로 아프리카 풍의 목공예품이 길가에 진열돼 있었다.
쾌적은 한데 시끄러운 쿠바 건축물
쿠바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까마구웨이에 도착해서 시내로 들어갔다. 도시 입구 길가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까마구웨이 호텔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해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봤더니 이미 지나쳤으니 뒤로 돌아가란다. 다시 돌아가면서 잘 살펴보니 학교 비슷한 건물이 나타나 가까이 가보니 그것이 까마구웨이 호텔이었다. 길가에 간판이 전혀 없어 지나친 것이다. 숙박료는 45세우세로 어제보다 비쌌으나 묵기로 했다. 자전거는 뒷마당 보관소에 따로 보관했다.
1층 바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 잠을 방해한다. 시간이 지나도 그칠 줄 모른다. 이후 모든 호텔이 한밤 중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 매우 시끄러웠다. 밤이 깊어도 집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 길가에서 떠드는 사람들, 또는 나무에서 지저귀는 새떼들의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호텔 바에서 트는 음악 소리 때문에 여행하는 동안 잠드는 것이 힘들었다.
쿠바 사람들은 음악에 취해 소음에 너무 관대한 것 같다. 쿠바의 건축물은 스페인 식으로 천정에 충분한 공간을 둬 쾌적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방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은 것 같다. 심지어 호텔에서도 방음이 잘 되지 않아서 호텔 로비에서 틀어놓은 음악소리가 밤새도록 들리기도 하고 호텔 창 밖에서 떠드는 소리도 그대로 들린다. 아마 사회주의의 감시체계를 건물에도 반영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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