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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도 더 된 작품, 지금도 똑같네

[리뷰] 연극 <스트린드베리와 춤을>, 부부사이에 감춰진 애증관계 고발한 문제작

등록|2012.11.07 18:03 수정|2012.11.07 18:03
100년 전 희곡으로 부부 간의 애정과 사랑, 증오를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석하여 화제가 되었던 극작가 스트린드베리이의 <죽음의 춤>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최근 이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연극<스트린드베리와 춤을>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보았다.

지난 4일 일요일 오후 친구들과 서울 용산구 서계동에 위치한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스웨덴 출신으로 북유럽의 대문호이고 개성이 강하기로 유명했으며 근대 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극작가 스트린드베리이 원작의 연극<스트린드베리와 춤을>을 보았다.

스트린드베리와 춤을포스터 ⓒ 극단 마고


첫 장면부터 부부 간의 애정 없는 섹스신과 음식을 구하기 위해 밖에서 몸을 파는 부인 앨리스의 가련하고 때로는 불행하기도 하고 절망스럽지만 끝까지 우아한 모습을 지키려고 하는 자태를 보면서 나는 부끄러움에 눈을 제대로 뜨고 그녀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근대 연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스트린드베리이는 현대 연극의 문을 열었고, 부조리한 삶에 대한 저항을 광적인 독설로 쏟아낸 고독한 방랑자였다.

그의 작품은 심리학과 자연주의를 결합시킨 새로운 종류의 서구 극을 만들어냈으며, 이것은 후에 표현주의 극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스웨덴 출신이었던 그는 평생 유럽연극의 변방작가일 수밖에 없었다.

스트린드베리와 춤을주연배우 이남희와 이경성 ⓒ 김수종


현재 국내에서는 스트린드베리이 서거 100주년 기념 페스티벌이 지난 9월 13일부터 130일간 4개의 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이 페스티벌은 극작가 스트린드베리이의 작품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행사이며, 페스티벌 중 세 번째 작품인 <스트린드베리와 춤을>은 국내 초연작이다.

이번 <스트린드베리와 춤을> 공연은 11월3일부터 9일까지 열리며, 스트린드베리이가 가장 좋아했으며 그의 인생관을 표현한 원작 <죽음의 춤>을 각색한 것이다.

<스트린드베리와 춤을>은 스위스출신으로 독일어권 변방작가였지만 세상을 부조리하게 바라보며 브레히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서사극적 연극 양식을 사용하는 한편,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개인이 소멸되는 사회로 성찰했던 사실주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가 <죽음의 춤>을 각색하여 희비극으로 바꾼 것이다.

이 작품은 지난 1971년 뉴욕을 초연으로 유럽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번 작품의 연출은 수원여대교수며 극단 마고의 대표인 장용휘 선생이 맡았다.

원작 희곡 <죽음의 춤>은 본시 감옥이었던 탑에 사는 포병대위와 옛 여배우였던 아내가 고독하게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사랑과 미움을 그린 것으로 아내에게 예전에 호감을 느꼈던 쿠르드가 나타나며 반전이 시작된다.

스트린드베리와 춤을주연배우 홍서준 ⓒ 김수종


하지만 결국은 아내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죽어가는 남편에게 평화가 깃들라고 합장하는 아내는 남편이 늘 미웠지만 사랑도 함께했던 엄숙한 반려자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막이 내려간다. 이 극은 인생의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희비극으로 사실적 자연주의극 계통을 이은 작품이다.

장용휘 연출가는 이번 연극을 준비하면서 스스로도 스트린드베리이의 광신도가 된 듯 "스트린드베리이의 서거 100주년, 난 뒤렌마트의 스트린드베리이다, 이 땅에 스트린드베리이는 난해함을 이유로 특별히 조명 받지 못했다, 창작극 위주의 작업을 한 나에게 더 난해할거라 생각했다, '인간이 불쌍하다' 이 축제의 주된 상징어이다, 작업을 하면서 이 양반을 느낀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래서 재미가 있다, 누군가 말했던 무모하지도 않다, 스트린드베리이를 좀 더 알고 싶다, 뒤렌마트를 좋아할 것 같다"고 했다.

연극 <스트린드베리와 춤을>은 사랑 없는 섹스신을 시작으로 하여 외딴섬에 살며 평범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왕년에 잘나갔던 군인 '에드거'(이남희 분)와 인기 여배우였던 '앨리스'(이경성 분) 부부는 오늘 저녁식사가 맛있길 바라며 서로를 위한 음악을 연주하고 서로를 위한 춤을 추려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중년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평화로워 보이는 주변과는 달리 매일 전쟁을 치르는 그들의 가정에 앨리스의 첫사랑 '커트'(홍서준 분)가 섬에 있는 검역부 소장으로 발령을 받아 나타나면서 복잡한 심리싸움이 시작되고 극의 긴장감이 고조된다.

에드거와 앨리스 부부의 25년 결혼 생활 끝에 쌓인 것은 내면의 불신과 증오뿐이다. 그들은 이제 배우자가 죽기만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다.

25년을 부부로 살아오면서 이제는 더 이상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가 행복한지도 모르는 50대 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은 결혼 생활의 무미건조함과 퇴색된 사랑을 풍자와 해학으로 고발하고 있다. 100년도 훨씬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부부생활의 모습과 별반 다름이 없는 애정전선에 사실 놀라움이 크다. 

스트린드베리와 춤을홍보 자료 ⓒ 김수종


연극은 3인극이다. 그러나 두 부부의 대화가 극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연극으로 기혼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짜릿하고 자극적이고 중독성 있는 대화들의 향연이 이어진다. 부부가 결혼초기에는 사랑으로 살다가 아이가 크고 나면 정으로 산다는 옛말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중년 부부들을 위한 치유극이기도 하다.

연극은 세 명의 등장인물들이 인생의 긍정과 부정,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로 90분 동안 사람의 가슴 속에 내재된 수많은 감정들을 표출하며 부부사이에 감춰진 이중성을 사실적으로 고발하고 있어 더 재미를 주는 것 같다.

출연배우로는 한국 연극계의 중심배우로 최고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으며 폭발적인 카르스마로 무대를 장악하는 이남희가 권위를 중요시하는 군인인 남편 에드거 역을, 동국대를 나와 국립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으며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열성적인 여배우 이경성이 앨리스로 나온다.

여기에 대학로의 떠오르는 신예로 내면의 감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홍서준이 앨리스의 첫사랑이며 사랑을 중요시하는 커트를 연기하고 있어 주목하고 볼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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