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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희망식당 개점..."따신 밥 먹고 힘 내이소"

문전성시에 첫날부터 음식 바닥나

등록|2012.11.08 11:13 수정|2012.11.08 11:26

▲ 트위터를 보고 한 가족이 대구희망식당을 찾았다. ⓒ 조정훈


▲ 한 어린이가 희망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맛있어요'라고 방명록을 쓰고 있다. ⓒ 조정훈


"인터넷으로 희망식당을 개업한다는 소식을 보고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왔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습니더. 대구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았네예. 따신 밥 먹고 힘 내이소."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다음번에는 친구랑 가족들 데리고 와야겠어요. 특히 유기농 반찬이라 그런지 더 맛있게 먹었습니다. 힘내세요."

대구에서 해고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따신 밥을 먹자며 문을 연 희망식당에 많은 손님과 후원이 이어져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있다.

지난 4일 대구시 서구 평리동에서 문을 연 희망식당은 정서적으로 보수적인 동네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듯 오전부터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자마자 몰려든 손님은 식당 문을 닫을 때까지 북적거렸다. 이날 음식은 100인분을 준비했지만 손님은 200명이 넘었다.

특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인 '의자놀이'를 쓴 공지영 작가가 1일 주인장으로 나서자 손님들은 사인을 받기도 하고 핸드폰을 꺼내 기념사진을 찍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공 작가는 반찬을 식탁으로 배달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으로 손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공 작가는 "어머님들이 생협에서 가져온 친환경 재료로 음식을 만드니 나도 많이 먹고 싶다"며 "내 이웃이 절망에 빠져서는 진정한 희망이 우리에게 없듯이 우리가 조금씩 힘을 모아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공지영씨는 대구에 내려오기 위해 예정에도 없던 사인회 일정을 잡고 사인회가 끝난 후에는 늦은 오후까지 희망식당에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에 지역의 대학생기자단과 인터뷰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 노동자풍물패 '열림터'가 희망식당의 발전을 기원하며 길놀이를 하고 있다. ⓒ 조정훈


▲ 대구희망식당의 발전을 바라며 고사를 지내는 중 축문을 읽고 있다. ⓒ 조정훈


▲ 공지영 작가가 대구희망식당의 발전을 기원하는 고사에서 절을 하고 있다. ⓒ 조정훈


"오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연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대구경북 희망식당을 알리고자 하오니 좌로는 앞산지신, 우로는 와룡지신, 남으로는 고산지신, 북으로는 팔공산지신으로 배경하니 이 자리를 굽어 살펴보시며 그 속의 모든 생육들을 지켜주시는 신령님께 고하나이다. 다양한 대중적, 문화적, 투쟁적, 공동체로 어울려 벗 삼아 마음과 영혼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연대노래로 빛내게 하시어 대구경북 모든 사람들이 이 식당에서 많은 희망과 소통을 쌓아 비정규직 없는 세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의 길로 인도하게 도와주소서."

이날 오후에는 희망식당의 발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고사상에는 돼지머리 대신 큼지막한 돼지저금통이 놓였고 실묶음으로 묶은 북어와 떡, 과일 등이 놓였다. 노동자풍물패 '열림터'가 먼저 길놀이로 고사의 시작을 알린 뒤 축문을 읽고 식당 관계자들은 해고노동자 복직과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기원하는 절을 올렸다.

이날 희망식당을 찾은 조은희씨는 "유기농으로 만든 음식이라 더 맛있었다"며 "희망식당이 없어져야 하는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해고자 없는 날까지 잘 되도록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트위터를 보고 가족을 데리고 찾아왔다는 김태용(47, 자영업)씨도 "좋은 뜻을 가지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모두 힘 내시고 계기가 된다면 자원봉사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희망식당의 위치가 도로에서 조금 떨어져 찾기 어려웠다는 애교어린 불평도 있었다. 손희정(39)씨는 "트위터를 보고 지도를 찍어서 왔는데 일반 사람들은 찾기가 쉽지 않은것 같다"며 "이런 식당이 안 생기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대구희망식당 일일호스트를 맡은 공지영 작가가 손님으로부터 막걸리 한사발을 받고 즐거워하고 있다. ⓒ 조정훈


▲ 대구의 희망식당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 조정훈


대구에서 희망식당이 문을 연다는 소식에 후원도 이어졌다. 아이쿱 대구생협과 행복생협, 참누리생협에서는 각종 양념류와 반찬을 후원했다.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농부장터'는 유기농 쌀과 야채를, 진보정의당 대구시당과 아이쿱 대구생협 회원들은 쌀을 짊어지고 나타났다. 환경운동연합 간사인 정숙자씨와 최지혜씨는 김치 등 반찬을 들고 오기도 했다.

대구희망식당을 주도한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활동가는 "대구에서 처음 희망식당을 한다고 했을 때 이렇게 많은 기부와 많은 사람들이 찾을 줄 몰랐다"며 "해고와 비정규직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분들이 대구에도 많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오는 11일에는 1일 호스트를 4.9인혁재단 함종호 상임이사가 맡는다. 함 이사는 대구에서 유명한 진보인사로 1908년 민주화의 봄 당시 학생운동을 했으며 대구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는 4.9인혁재단과 체인지대구 상임대표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첫날 메뉴로 돼지고기 볶음과 잡채, 전과 유기농 김치를 준비했던 희망식당은 11일 메뉴도 미리 공개했다. 11일에는 안동의 간재비가 절묘한 솜씨로 간을 낸 안동간고등어와 구수하고 깔끔한 근대국이 기본 반찬과 함께 나온다.

한편 첫날 수익금도 예상 외로 많았다. 한 끼 밥값 5000원 외에도 후원한 금액 등을 합쳐 모두 188만3500원이 모였다. 이 금액들은 전액 대구의 해고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위한 운동에 쓰인다. 대구에는 영남대의료원과 상신브레이크, 대구지하철 해고노동자가 있다. 경북에도 경주의 발레오만도, 구미 KEC 등 해고노동자들이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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