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수학여행 갔다 뇌사상태, 학교 책임 없다?

대전시교육청 "안전공제 급여대상 아니다"

등록|2012.11.09 09:08 수정|2012.11.09 12:44

▲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자료사진) ⓒ 김환희


한 여고생이 수학여행 도중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졌지만 학교안전공제회가 책임이 없다며 공제급여 지급을 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학교 측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김성희(가명,17)씨는 대전의 한 여고 2학년 학생이다. 성희는 지난 9월 11일 평소보다 이른 새벽 5시경에 일어났다. 제주도로 3박 4일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다. 새벽 6시 10분까지 학교에 집합해야 한다. 전날 짐을 다 꾸려놓긴 했지만 유부초밥을 싸고 머리감고 하다 보니 벌써 6시가 가까워졌다. 아빠를 졸라 승용차를 타고서야 겨우 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했다.

휴게실에 들러 간단히 식사를 하고 충남 서천 장항항까지 가는 데 5시간 정도가 걸렸다. 12시경 장항항을 출발한 배는 2시간여 만에 제주도 서귀포시에 도착했다. 관광버스를 타고 첫 견학지인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섭지코지를 둘러보고 1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숙소인 제주시로 들어섰다.

새벽 5시 일어나 12시간 만에 숙소에...학교측 "무리한 일정 아니다" 

이제 좀 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관광버스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숙소가 변경됐단다. 다시 30분을 달려 진짜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6시 반이다. 집을 나서 꼬박 12시간여 만에 짐을 풀었다. 해당 숙소 관계자는 "여행사와 혼선이 생기면서 예약 장소가 겹쳐 급히 숙소를 바꿨다"고 말했다.  

성희의 아버지 A씨는 "이날 밤 8시 경 딸과 화상전화를 했다"며 "'많이 피곤하다'고 재차 말했다"고 밝혔다.  

성희의 방에는 반 친구 등 모두 7명이 배정됐다. 곧바로 저녁을 먹자 숙소 지하에 있는 노래방 출입이 허용됐다. 한 현장 관계자는 "이날 저녁 오후 7시 경부터 약 2시간 동안 학생들이 노래방에서 술과 담배를 피우며 놀았다"고 말했다. 성희는 밤 8시 반 경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숙소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지하 노래방을 무료로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술과 담배를 피웠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해당 학교 관계자는 "노래방 이용시간은 1시간 정도였고 담임교사 등이 노래방 안팎에서 현장을 지도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새벽 1시 "심장이 빨리 뛰어"...새벽 4시 경 쓰러져

노래방 여흥의 여운은 이어졌다. 성희 친구들은 밤 9시 반경 방으로 돌아왔지만 11시경 친구들과 통닭을 시켜먹었다. 일부 학생들은 술을 나눠 마시기도 했다. 밤 12시 20분 경 담임교사가 방에 들어와 일부 남아 있던 술병을 압수하고 훈계를 한 후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새벽 1시 반 경까지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성희가 마신 술은 맥주 반잔 정도다.

성희가 친구들에게 이상 현상을 호소한 것은 이날 새벽 1시경이다.

"온 몸이 빨갛고 심장이 빨리 뛰어... 힘들어."

하지만 다들 '술 먹은 탓'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성희는 곧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고는 새벽 4시 경 쓰러졌다.

"코고는 소리가 들려 자던 애들이 모두 일어났어요. 성희가 코를 골다 갑자기 일어나 앉더라구요. 잠꼬대를 하는 줄 알았는데 5초 정도 앉아있다 옆으로 픽 쓰러지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심호흡을 서너 번 하는가 싶더니 조용해졌어요. 옆에 있던 친구가 성희가 숨을 안 쉬는 것 같다고 해 불을 켜보니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있었어요." (같은 방 친구 증언)

119가 도착해 급히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성희는 '무산소성 뇌손상'으로 뇌사상태에 빠졌고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병원측은 "무호흡상태가 상당시간 지속되면서 뇌손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행자보험' 들지 말라더니... 학교안전공제회 "급여대상 아니다"

학교측은 대전시학교안전공제회(대전시공제회)에 보상(치료비 지급)을 신청했다. 학교안전공제회는 초중고의 교육활동 중 일어난 사고를 보상해 주는 곳으로 각 학교는 가입한 지역 학교안전공제회를 통해 치료비를 보상받을 수 있다. 교육활동에는 학교 안팎에서 학교장의 관리·감독 아래 이뤄지는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

하지만 대전시공제회는 최근 '취침 중에 일어난 심장마비 사고로 교육활동 중 일어난 일로 볼 수 없고 급여대상이 아니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해당 학교 B교감은 "대전시교육청에서  '학교안전공제만으로도 보장이 되는 만큼 여행자보험에 이중으로 가입하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와 여행자보험에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리한 일정과 지도감독 소홀이 사고원인"

성희의 아버지 A씨는 "수학여행 당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취침하기까지 무려 20시간이 지났다"며 "무리한 일정과 학교 측의 소홀한 지도감독으로 사고가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멀쩡한 아이가 수학여행 기간 중 뇌사상태에 빠졌는데도 취침 중 발생해 보상책임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안전사고법에 따르면 지병(심장마비) 또는 취침 중 발생한 사고는 공제급여대상이 아니다"며 "해당 학교 교감 등을 상대로 확인결과 여행 일정이 무리하다거나 지도감독이 소홀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 7일 대전지방법원에 대전시학교안전공제회를 상대로 공제급여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또 해당학교에 대해서도 "수학여행기간  중 학생 안전관리 및 지도감독을 소홀히 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A씨는 8일 오후에도 딸을 만나기 위해 중환자실로 향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