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장밋빛 호들갑, 이젠 그만
협동조합기본법 "너무 갑작스럽게 정치적으로 이뤄졌다"
▲ 6일 오전 국무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협동조합 및 사회적 협동조합 등 운영에 관한 내용을 정하는 시행령안이 처리됐다 ⓒ 청와대
협동조합 '바람'이 거세다. 출자금 제한 없이 조합원 5명이 시도지사에게 신고만 하면 협동조합 설립을 가능토록 한 '협동조합 기본법' 발효(12월 1일)를 앞두고 있는 지금, 협동조합은 불황을 타개하거나 자본주의 부작용을 줄이는 새로운 기업 모델 또는 비정규직·청년 실업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신뢰도 확고한 듯하다. 지난 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초 "협동조합은 시장과 정부가 실패한 분야에서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언론 보도 또한 대부분 그러하다. 협동조합에 있어서는 '좌우' 가리지 않고 긍정적인 미래를 쏟아내고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올 것 같은 '꿈같은 이야기'
AP 통신, FC 바르셀로나, 알리안츠 생명, 썬키스트, 몬드라곤 등 세계적인 협동조합 우수 사례들이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특정 대주주가 경영권을 휘두르지 않고 노동자가 조합원 모두가 주인인 협동조합, 거센 경제위기 한판에도 단 한 명의 종업원도 해고되지 않는 협동조합,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가 당장 '내일'이라도 우리 앞에 펼쳐질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에 지자체들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보도만 살펴봐도 경기도는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정책협의체'를 구성했으며, 수원시는 '기본법' 발효를 앞두고 협동조합 업무를 담당할 수도록 조직을 개편하고 관련 조제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라북도는 협동조합의 세계적 권위자를 초청해 국회에서 국제컨퍼런스를 열기도 했다. 지방 경제 활성화에 좋은 '약'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협동조합의 '미덕'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부터 특히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공동출자, 공동 소유, 공동 수익 배분, 공평한 의결권 등 협동조합이 갖는 '민주성'이 여러 차례 강조됐었다. 그로 인해 무리한 사세 확장이나 방만한 경영이 구조적으로 어렵고, 종업원의 주인의식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점들이 위기 때 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알려져 왔다.
정부로서는 고용 창출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미국, 일본, 프랑스 인구 3분의 1 정도가 협동조합 조합원이란 '통계'는 정부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더불어 업종별로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이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영세 카센터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힘을 모으면 대기업 정비업체와도 맞설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그 예 중 하나다.
변하지 않는 '소비자의 선택' 문제... 그리고 '제도'
하지만 협동조합이 곧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 소유·운영·분배 시스템이 다를 뿐이다. 역시 핵심적인 문제는 '소비자의 선택'이다.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좋은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협동조합이란 모델이 해소할 수 없는 문제다.
보도에 따르면 김수환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떤 사업을 어떤 노하우로 운영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콘텐츠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며 "기존 업체와 경쟁도 해야 하고 마케팅에서 밀리지 않아야 조합원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한참 쏟아져 나오고 있는 '꿈같은 이야기'보다는 훨씬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적이다.
이와 관련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지난 9월 <주간경향>을 통해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세계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급증한 바 있다"며 중요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그런데 왜 협동조합은 지배적 범주가 되지 못한 것일까"이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상황이 좋아지면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더 많은 단기적 이익을 약속하는 자본부의 기업을 선택해 왔다. 하지만 협동조합에 유리하도록 법적 근거를 만들고 자체의 금융기관이나 교육기관을 갖춘 곳에서는 따뜻한 공동체적 경제가 지배적이다."
물론 위 글에서 정 원장은 '우리 한국이라고 그리 되지 말란 법이 있느냐'며 이번 대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돕겠다고 하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협동조합 바람이 한참 불고 있는 지금도 유효한 것이다.
"너무 갑작스럽게 정치적으로 이뤄져" 기본법과 특별법 갈등 예고
실제로 농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협동조합' 바람이 정부 주도로 불면서 중요한 문제들이 외면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6월 지역재단이 주최한 '지역리더포럼'에서는 "농업·농촌 진영의 경우 협동조합기본법의 필요성과 새로운 협동조합 설립의 가능성, 농협과의 관계 등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없었고, 충분한 공감대 형성 없이 기본법 제정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정치적으로 이뤄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또한 지난 50년간 농협과 함께 살아온 농민들이 있는 것이 현실임에도 "기존 농협과의 관계 설정 문제" 또는 "기존 농협과의 경쟁과 협력" 등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들보다 "도시 소비자들의 관심을 담는 선"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졌다는 비판도 나왔다. 기존 협동조합의 존재 근거가 되는 '특별법'과 '기본법'간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법'의 개선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농민신문>은 특히 "법상 협동조합 설립은 자유로운 반면 이에 대한 관리·감독 규정이 없기 때문에 기존 협동조합과의 분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며 "협동조합의 공신력을 악용해 수시로 설립과 해산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협동조합의 '미덕'은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유효하다. 그만큼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쉬운 '단골 소재'란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의 나라 성공신화 '재방송'이 아닌 우리 현실에 맞는 협동조합 제도에 대한 관심, 이것이 지금 언론이 할 일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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