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생후 6주 새끼 늑대, 그가 내 인생을 바꾸었다

[서평]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 늑대 브레닌과 11년 동거기

등록|2012.11.12 15:03 수정|2012.11.26 09:53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가치는 잴 수도 거래할 수도 없다.'
'가끔은 하늘이 두 동강 나도 옳은 것은 해야 한다.'

폐부를 푹 찔러 오는 울림이 있는 이 말들은 누가 했을까? 시인? 웅변가? 아니면 대선주자? 믿기지 않겠지만, 이 멋진 말의 주인공은 늑대다.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느니 하는 표현은 지금부터 이야기하게 될 늑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늑대에게 이런 표현을 쓴 것이 잘못이다. 늑대는 결코 음흉하지도, 잔인하지도 않다. 그것은 그저 인간의 특성일 뿐이다.

▲ <철학자와 늑대> ⓒ 추수밭

웨일스어로 '왕'이라는 의미의 브레닌은 철학교수에게 철학을, 그것도 제대로 된 철학을 가르친 늑대다. <철학자와 늑대>(추수밭)는 늑대인 브레닌에게 철학과 인생을 배운 철학교수가 브레닌을 통해 깨닫게 된 사랑과 죽음, 행복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성찰한 책으로, 출간 후 전 유럽을 늑대앓이에 빠뜨렸다.

저자는 마이애미 대학교의 철학교수이자 대중철학서 <SF철학>, <내가 아는 모든 것은 TV에서 배웠다> 등으로 유명한 철학자 마크 롤랜즈다. <철학자와 늑대>는 늑대를 개로 둔갑시켜 데리고 다니는 음흉한 철학자 롤랜즈와 실존과 본질의 혼란을 야기하는 우아한 늑대 브레닌의 11년간의 동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삶의 의미를, 인간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늑대인 브레닌에게 배웠다고 고백한다. 브레닌의 삶은 저자의 삶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어우러졌고, 저자는 자신의 존재를 브레닌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정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내 안의 유인원>을 쓴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철학자와 늑대>를 읽고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관한 회고록 같다'고 평했다. 한 마리 동물이 이토록 깊은 성찰을 이끌어 낸 데 대한 놀라움의 표현이다. 또한 철학자 존 그레이는 '인간 자신에 대한 시각을 재평가하게 만드는 역사적 철학서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했다.

저자에게 브레닌은 반려동물이 아니었다. 당연히 애완동물은 더더욱 아니다. 브레닌은 저자의 형제였다. 브레닌이 없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며, 브레닌보다 더 훌륭한 형은 없을 것이라 저자는 확신한다. 철학이 사라진 시대라지만, 늑대가 전해주는 삶의 철학이 깊은 울림으로 전해지는 책, <철학자와 늑대>를 만나보자.

강의실에서 하울링을

나도 개를, 특히 큰 개를 무척 좋아하지만, 늑대를 집에서 키운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늑대를 실제로 본 적도 없지만 말이다. 이러한 성향은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부터 개와 함께 살았던 저자는 '96% 새끼 늑대 판매'라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에서 생후 6주된 진짜 늑대를 만난다.

보송보송한 털에 꿀처럼 노란 눈, 모난 데 하나 없이 동글동글한 모습에 반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새끼 늑대를 입양하고 만다. 그가 바로 브레닌이다. 그러나 그토록 귀여운 모습과 달리 브레닌은 집에 오자마자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브레닌을 혼자 둘 수 없었던 저자는 심지어 강의실마저도 브레닌과 동행하는 사이가 된다.

문득 강의실에서 들려오는 브레닌의 하울링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매 순간, 매 장소를 함께 해야 했기에 저자는 브레닌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개를 훈련할 때 사람들은 두 가지의 오류를 범하는데, 하나는 훈련을 동물과의 기싸움으로 여긴다는 것과 또 하나는 보상을 통해 훈련하려 한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복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동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동물을 훈련시킬 때 특히 늑대를 훈련시킬 때는 어떤 상황에서도 명령에 굴복해야 하는 지배적이며 자의적인 권위가 아니라, 세상이 늑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어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에게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인간이 늑대보다 우월해?

늑대는 말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이해하기도 쉽다. 늑대들이 못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래서 늑대는 문명사회에 맞지 않는 것이다. 늑대도 개도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본문 88쪽)

흔히 다른 동물들보다 덩치가 크지도, 그렇다고 힘이 세지도, 빠르지도 않은 인간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뇌에서 비롯된 지능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때의 지능은 역학적 지능이 아니라 사회적 지능이다. 사회적 동물의 뇌는 일반적으로 혼자 생활하는 동물의 뇌보다 크다고 한다. 왜 그럴까?

역학적 지능은 사물 간의 관계만 이해하면 되지만, 사회적 동물은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타인이 자기를 속이는 것을 알아챌 정도의 지능이 필요하고, 또 속지 않으려면 속일 줄도 알아야 한다. 또한 사회 속에서 특정 구성원을 이용해 다른 구성원에 대항하려면 계략을 꾸밀 줄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장류의 사회적 지능의 핵심은 속임수와 계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늑대과보다 높은 지능을 말할 때 그것은 상대적 우월성이다. 즉 영장류는 늑대보다 계략과 속임수에 더 능하며, 지능의 차이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인류의 과학적․예술적 지능은 속임수와 계략의 피해자가 되기보다 가해자가 되고자 하는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악의 평범성,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 ⓒ 오퍼스픽쳐스


달려오던 SUV 자동차와 부딪치고도 멀쩡했던 브레닌이 아일랜드의 소목장에 쳐놓은 전기담장에 살짝 닿은 후 전기라면 기겁을 하게 된 일을 떠올리며 저자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순수, 창조, 자유의 가치 속에 숨겨진 인간의 사악함을 알고 싶다면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들이 개발한 전기왕복상자를 보라고 말한다.

이 전기왕복상자는 한쪽 구획에 개를 넣고 바닥에 강한 전기충격을 주어 개가 본능적으로 울타리를 뛰어넘어 반대편으로 가게 하는 실험이다. 실험이 반복될수록 울타리의 높이는 높아지고 간혹 양편에 모두 전기가 흐르기도 한다. 개는 전기충격을 피해 반대편으로 뛰어오르지만 결국은 전기가 흐르는 바닥에서 감전에 괴로워하며 고통 받는다.

이러한 일이 10~12일 정도 반복되면 개는 더 이상 충격에 저항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실험을 통해 개를 고문한 학자들은 이후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우울증의 원인인 절망의 반복학습에 대한 모델을 증명하기 위해 30년 이상 사용되었던 이 실험은 그 후 헛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저자는 인간이 밑에 깔린 추악한 모습보다는 화려하게 빛나는 동기에만 주의를 빼앗긴 나머지 세상의 악을 보지 못한다고 갈파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주의가 분산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악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일반적이며 진부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악은 의외로 평범한 것이라는 말에 절대 공감한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가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칸트는 해야 한다는 말은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정확히 말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말하자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안 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악의 보편성을 능력의 부재라는 관점에서 논한다면 이는 매우 편리한 변명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실제 벌어진 상황을 불가항력이라고 하면 죄를 모면하게 되지만, 그렇게 쉽게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군사 쿠데타와 유신 그리고 독재가 당시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저 면죄부를 위한 변명일 뿐인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초래하는 대부분의 악행이 악한 동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인식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인간이 동기라는 가면에 지나치게 큰 가중치를 두고 그 속에 추악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면, 그 가면부터 벗겨야 인간의 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11년의 동거 후 브레닌은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브레닌의 부재는 저자에게 더 깊은 사유와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순간 순간들이라고 말한다. 이 순간의 그림자 속에서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바로 그 순간들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어떠한 모습이나 어떤 형태를 하고 있든 간에 자신이 이 우주가 생산해 낸 가치 있는 피조물이라면, 바로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준 것이 바로 늑대였다고 이야기한다. 깊어가는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 속에서 늑대가 전해주는 삶의 의미를 사유하여 지내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철학자와 늑대>,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추수밭 펴냄, 2012년 10월, 1만5000원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