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클럽데이도 아닌데, 사람들이 새까맣게..."
[마을의 귀환 22] 서울 금천구 남문시장 야시장 개장
'미래세계의 희망은 모든 활동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뤄지는 작고 평화롭고 협력적인 마을에 있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2012년, '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서울 곳곳에서는 '마을공동체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함께 '집밥'을 먹고 책을 읽고 텃밭을 가꾸는 것부터, 아이를 같이 키우고 일자리를 나누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 반세기 전 간디의 정신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례를 통해 마을이 왜 희망인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추억의 8090으로 돌아간 남문시장
▲ 9일 오후, 서울 금천구 독산동 남문시장에서 야시장이 열렸다. 이날 남문시장에는 시장통 문화학교의 공연과 먹거리 장터, 아트마켓 등 볼거리와 먹거리로 가득찬 축제가 이어졌다. ⓒ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
야시장 때문이다. 물건을 사고팔던, 에누리와 덤을 흥정하던 남문시장이 '불타는 금요일',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축제를 연 것이다.
야시장의 테마는 'Back To The 8090'이다. 1980~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40, 50대 상인들에게 청춘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기획됐다. 그 시절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폴라로이드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추억의 DJ박스'도 설치됐다. 폭탄 가발을 쓴 DJ, '미스터 백'은 상인과 주민들에게 받은 신청곡과 사연을 받아 감미로운 DJ 멘트를 흘려 보냈다.
"오늘 야시장을 찾아준 언니, 오빠들께 감사드리면서 한 곡 올릴게요. 오늘은 왠지 이 노래가 듣고 싶네요. 나훈아의 <청춘을 돌려다오>, 부탁해요~."
▲ 9일 남문시장 내 설치된 '추억의 DJ 박스'에서 DJ '미스터 백'이 주민들에게 신청곡을 받아 감미로운 DJ 멘트로 음악을 틀었다. ⓒ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
이날 열린 야시장은 남문시장의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가 기획했다. 자바르떼는 하루 1000여명이 오가는 남문시장에 이날은 평소보다 2배가 넘는 2000여명의 주민들이 시장을 방문한 것으로 추정했다.
120개 점포를 가진 남문시장은 지난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자바르떼는 '시장통 문화학교'를 열어 상인과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기타, 풍물, 노래, 스윙댄스 등 예술 문화 활동을 벌이고 있다. (관련기사 : 남문시장 '빨간 고리바지'의 비밀, 아시나요?)
"오늘은 바로 내가 남문의 스타"
▲ 9일 오후 남문시장 내에 설치된 무대에서 기타 동아리, 시장기인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타 솜씨를 뽐내고 있다. ⓒ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
시장 한가운데에 차려진 무대에서는 '시장통 문화학교'의 공연이 이어졌다. '시장가인'(市場歌人)의 황화실(66), 오태숙(57)씨 등 10명의 상인들은 남문시장의 <남문쏭>, <사랑의 트위스트>, <백만송이 장미>를 부르며 노래 솜씨를 뽐냈다.
기타모임인 '시장기인'(市場其人)의 박은옥(73), 김호자(54)씨 등 4명도 무대에 올라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 서울트리오의 <젊은 연인들>을 연주했다. 이들 공연에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주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화답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부럽지 않다'는 풍물패, '신바람'은 시장 곳곳을 돌며 야시장 개장을 축하하는 풍악을 울렸다. 지난 6월 결성된 '남문밴드'는 젬베, 키보드, 기타, 베이스, 드럼의 조화로 첫 공연을 훌륭하게 치렀다. 80년대 유행했던 치마와 드레스를 입은 '남문 댄스'도 무대에서 춤바람으로 일으켜 불타는 야시장에 흥을 더했다.
▲ 남문시장 중앙에 설치된 무대 앞으로 지역 주민들이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자바르떼 밴드의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시장통문화학교'의 기타, 노래, 스윙댄스 동아리가 무대에 올라 닦은 실력을 뽐냈다. ⓒ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
시장가인의 오태숙씨는 "내가 즐기며 좋아서 했던 일이라 상인들에게, 시장 손님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오늘은 내가 바로 남문의 스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공연을 지켜본 이석화(44)씨는 "단골로 가던 과일 가게 사장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걸보니까 남문시장이 다르게 보였다"며 "직장 다니면서 취미 생활하기 어려운데 억척같은 상인들의 삶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유모차를 끌고 야시장 구경을 나온 박성은(27)씨는 "완전 불타는 금요일 밤, 불금불금"이라고 환호하면서 "홍대 클럽 데이도 아닌데 전통시장에 새까맣게 사람들이 모였다. 신기하다"고 말했다.
"체리부로 사장님은 이뻐, 강정은 맛나~"
축제에 먹거리가 빠질 수 있으랴. 남문시장 상인조합 내의 여성 상인회 회원 20여 명이 먹거리 장터를 열었다. 족발, 순대, 닭강정, 돼지곱창, 홍어, 국수 등의 메뉴가 준비됐다. 메뉴판에는 상인들의 장터를 소개하는 '체리부로 사장님은 이뻐, 강정은 맛나~'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남문시장 북쪽 입구에서부터 테이블 100여 개와 의자 1500개가 준비돼 손님을 맞았다. 3m 간격의 시장 통로는 테이블과 먹거리를 사려는 주민들로 미어터졌다.
▲ 남문시장 진흥조합의 여성상인회 회원들이 먹거리 장터에서 국수를 준비하며 촬영을 위해 활짝 웃고 있다. ⓒ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
▲ 9일 남문시장 여성상인회 회원들이 먹거리 장터를 열었다. 여성상인회는 장터의 수익금을 인근 지역의 불우한 노인에게 기부할 예정이다. ⓒ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
이순금(65) 여성상인회 회장은 "상인들이 팔던 족발, 순대, 닭강정 등을 먹거리 장터를 위해 싼 값에 내놓았다"며 "이렇게 모인 수익금은 독산동 인근의 어려운 노인들에게 기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야시장에는 상인만이 아니라 인근의 고등학생들도 동참했다. 청소년과 멘토링 활동을 벌이는 '꿈지락 사업단'은 금천구의 문일고, 독산고, 금천고 등의 학생들이 시장에서 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들은 야시장이 열리기 며칠 전부터 시장 인근에 포스터를 붙이고 체험 프로그램인 '등만들기' 재료를 준비했다.
홍진기(18, 문일고)군은 경제동아리, 'e-프론티어' 10명의 친구들과 추운 날씨에 상인들이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쉼터를 준비했다. 홍군은 "물건만 사고파는 마트에서는 주민과 상인이 만나는 축제가 불가능하다"며 "남문시장이 이런 축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서 기쁘다"고 말했다.
남문시장의 불야성은 오후 11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 9일 오후 7시, 서울 금천구 독산동 남문시장의 상인들이 점포의 셔터를 내리고 야시장을 열었다. 남문시장의 불야성은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사그라졌다. ⓒ 신나는 문화학교 자바르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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