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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 바다, 해무를 한 컷에... 이런 곳 또 없어요

굴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진전 <굴업도의 바람>, 종로 류가헌에서 25일까지

등록|2012.11.14 15:03 수정|2012.11.14 18:06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이 13일부터 갤러리 류가헌에서 굴업도 사진전을 열었다. 인천에서 90km 남짓 떨어진 여의도 1/5 크기 작은 섬 굴업도는 흔히 '한국의 갈라파고스 섬'으로 불린다. 왕은점 표범나비, 검은머리 물떼새, 매 등 멸종위기 생물들과 파도의 침식이 빚은 기암들과 절벽 등으로 환경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굴업도의 자연환경이 파괴될지도 모른다. 굴업도 토지의 98.2%를 소유한 CJ그룹의 시앤아이(C&I)가 수천억대의 예산을 들여 이 섬 전역에 오션파크 관광단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시앤아이는 사전환경성검토 용역을 모 업체에 의뢰했다고 밝혔다. 2010년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발로 사전환경성검토 용역을 자진철회한 바 있는 시앤아이가 오션파크 관광단지 개발 재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대표: 김원)은 종로 통인동에 위치한 갤러리 류가헌에서 사진전을 열어 자연환경 파괴 위기에 직면한 굴업도를 널리 알리고 있다.

포클레인으로 퍼가면 사라질 굴업도의 처지

사진전 <굴업도의 바람>을 전시중인 갤러리 류가헌사진전 <굴업도의 바람>은 13일부터 25일까지 종로 통인동의 류가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 이규정


5명 작가의 사진 48점이 전시된 갤러리 류가헌은 ㄷ자 한옥을 개조한 작은 규모의 갤러리다. 거대한 자본의 개발을 앞두고 작가들은 굴업도 사진에 '사라짐'의 정서를 담았다.

조명환 사진작가가 찍은 굴업도의 바위조명환 작가는 "“2m 남짓한 크기의 이 바위의 독특한 무늬와 결은 수천, 수만년 동안 만들어졌지만 포크레인이 한 번 푸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조명환


조명환 사진작가의 사진은 단적으로 굴업도의 처지를 보여줬다. 2010년 이후 6차례 굴업도를 방문한 그는 시앤아이의 개발 재추진 소식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달 중순 굴업도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그는 초지에 서 있는 바위에 주목했다. 그는 "2m 남짓한 크기의 이 바위의 독특한 무늬와 결은 수천, 수만년 동안 만들어졌지만 포클레인이 한 번 푸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이 바위가 굴업도가 처한 상황 같았다"고 설명했다.

제주도 출신인 유별남 작가는 굴업도에서 바라본 풍경을 찍었다. 그는 "뭍사람인 우리는 밖에서 굴업도를 보거나 안에서 굴업도의 풍경을 볼 수밖에 없다"며 "굴업도가 사라지면 굴업도에서 보는 바깥 풍경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굴업도에서 찍은 선단여와 덕적군도 풍경을 대표작으로 꼽았다. 섬에서 자란 사진작가라 그런지 발상이 다르다.

그가 찍은 선단여에는 섬 특유의 전설이 담겨있다.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의 이수용씨는 "선단여에는 마귀할멈의 농간으로 사랑에 빠진 친남매가 벼락맞았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에 따르면 외부와 차단된 섬에는 이처럼 근친상간을 경고하는 전설과 민담이 많다고 한다.

건축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박영채 작가는 원경으로 7~8가구 남짓한 굴업도의 작은 마을을 담았다. 그가 찍은 굴업도의 우체통 모습도 귀엽다. 딱 10개인 우체통은 굴업도 전 주민의 소식통이다. 그는 "굴업도 민가가 다른 곳과 비교해 특별한 점도 없고 가건물 수준의 허름한 집이다"며 "뭍에서는 다 개발하기 때문에 이런 풍경을 볼 수 없다"고 했다.

굴업도를 지켜주세요 엽서에 쓰인 석정민 작가의 사진굴업도에서는 사구, 바다, 소사나무 군락, 해무 등을 한 컷에 잡을 수 있는데 이런 출사장소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 석정민


석정민 작가는 굴업도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바다와 별이 어우러진 사진이 눈에 띈다. 공기가 맑고 주위에 밝은 빛이 없는 굴업도에서는 말 그대로 별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그의 다른 사진은 굴업도 엽서에도 쓰였다. 사구, 바다, 소사나무 군락, 해무 등을 한 컷에 잡은 사진인데 이런 출사장소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한다. 그는 "굴업도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알게되면 굴업도를 지키는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용씨는 40여 차례 굴업도를 방문하며 기자, 환경운동가, 동호회 등의 안내를 도맡았다. 그는 주로 굴업도의 작은 동·식물을 근거리에서 찍었다. 굴업도 사진 아무거나 들고 물어봐도 웬만하면 대답을 할 만큼 그는 굴업도 식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12일에도 그는 전시장 관람객들에게 굴업도의 식생에 대해 설명했다. 이씨는 "굴업도 식물 하나하나 이름이 있고 보존가치가 높다"며 "개발을 막아야한다"고 했다.

이들이 찍은 풍경은 '지금 그대로의 굴업도가 아니면' 사라질 풍경이다. 조명환 작가의 이름 모를 바위, 유별남 작가가 섬에서 바라본 선단여와 덕적군도, 박영채 작가의 10개의 우체통, 석정민 작가가 찍은 굴업도의 별과 이수용 씨의 들꽃 등 모든 풍경이 그렇다. 어떻게 굴업도를 지킬 수 있을까?

사진전 <굴업도의 바람>의 사진작가들왼쪽부터 유별남, 박영채, 이수용, 석정민, 조명환 ⓒ 이규정


굴업도의 바람, 굴업도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의 바람

굴업도를 지켜주세요! 한 관람객의 인증샷사진전 주최 측은 오션파크 관광지 개발 반대 메시지를 담은 엽서에 관람객들의 서명을 받아 CJ그룹 이재현 회장 집무실로 보낼 예정이다. 사진은 서명을 한 관람객이 인증샷을 찍는 모습이다. ⓒ 이규정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은 전시장에 작은 이벤트를 마련했다. 주최 측은 오션파크 관광지 개발 반대 메시지를 담은 엽서에 관람객들의 서명을 받아 CJ그룹 이재현 회장 집무실로 보낼 예정이다. 석정민 작가의 사진이 담긴 엽서에는 "굴업도 오션파크 관광단지 개발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짧은 편지가 담겨있다. 굴업도 지키기에 참여를 원하면 엽서 하단 서명란에 서명해 전시장에 마련된 엽서통에 넣으면 된다.

엽서에 담긴 마지막 문구가 눈에 띈다.

굴업도가 세계적인 문화 예술 섬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기를
사람들의 바람을 모아 이 엽서를 보냅니다.


전시회를 기획한 박민영씨는 "굴업도의 바람은 굴업도에 부는 해풍이기도 하고 굴업도가 망가지지 않고 지금의 모습 그대로 유지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바람'이기도 하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그가 기획한 엽서 전달 이벤트도 사람들의 바람을 CJ 측에 전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시장은 굴업도를 지키고자 하는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관람객으로 온 고 장준하 선생의 큰 며느리 신정자 씨고 장준하 선생의 큰 며느리 신정자 씨가 엽서 이벤트에 참여하고 있다. ⓒ 이규정


기자는 그 중에서도 조금 독특한 관람객을 만났다. 서촌 한옥지키기 운동을 하고 있는 미국인 로버트 파우저씨는 "이렇게 자연생태가 풍부한 섬에서 개발이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 충격이다"며 "공익에 대한 논의 없이 재산권만 강조되고 있는데 그 사이에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 장준하 선생의 며느리인 신정자씨는 "굴업도에 3차례 다녀왔다"며 "외국생활을 오래했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보지 못했다. 굴업도의 아름다움을 꼭 지켜내야한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서명한 엽서를 엽서통에 넣었다.

배편이 적어 최소한 1박 2일 일정을 잡아야하기 때문에 굴업도에 쉽게 방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사진전에 가보는 건 어떨까? 직접 굴업도에 가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굴업도의 다양한 풍경을 담은 사진전을 통해 굴업도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도 있다. 사진전은 13일부터 25일까지 종로 통인동의 류가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주최 측은 전시작품과 굴업도사진으로 만든 달력도 판매해 굴업도 지키기 기금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02-7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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