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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해발 800미터 아소산 분지 넘어 오이타까지

[일본 자전거 여행④] 에도 시대의 흔적 고스란히 간직한 다케타시

등록|2012.11.14 15:58 수정|2012.11.14 15:58

▲ 아소산 기슭에서 바라본 아소 분지를 둘러싼 주변 산 ⓒ 이윤기


일본 자전거 여행 둘째 날, 아침 일찍 아소산 라이딩을 마치고 유스호스텔로 내려와 점심을 먹고 오후에 오이타를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아소유스호스텔에서 오이타역까지는 75.6km를 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아소시를 벗어나면서부터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소시는 아소산과 더불어 주변에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입니다. 아소시는 대부분 해발 500미터 이상 지역인데, 오이타로 가기 위해서는 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고개를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소산 기슭에서 아소시가지와 아소산을 둘러싸고 있는 고개를 넘어야 외부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오이타현으로 가기 위해서는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해발 800미터가 넘는 고개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아소유스호스텔을 출발하여 5km쯤 달렸을 때 눈앞에 가파른 고개가 나타났습니다. 여름 호우에 고개길 일부가 무너져서 복구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해발 530미터에서 해발 8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야 오이타현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 스마트폰 GPS로 기록한 아소시에서 분코다케타역까지 라이딩 지도 ⓒ 이윤기


자전거를 가장 잘 타는 동료 한 명은 이 고갯길을 세 번이나 다시 내려갔다 올라오면서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일행들의 배낭을 메고 올라왔습니다. 약 5km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는데 선두 그룹은 30 ~40분쯤 걸렸습니다만, 후미 그룹이 다 도착하여 잠깐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 준비를 하고나니 무려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버렸습니다.

아침 일찍 아소산을 올라갔다 내려 온 체력적인 부담이 있어서 그런지 고개 마루에서부터 다케다시까지 대부분 내리막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행 전체의 라이딩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습니다.

선두 그룹은 평균 시속 20km 이상, 내리막길에서는 시속 40~50km를 넘나드는 빠른 속도로 달렸지만,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고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는 후미 그룹이 계속 뒤처졌기 때문에 선두 그룹이 일정 구간마다 서서 후미 그룹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 스마트폰으로 측정한 고도와 속도 기록 ⓒ 이윤기


결국 전체의 라이딩 속도는 시속 10km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오후 라이딩 계획을 변경하여 다케다시까지만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로 하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20분에 아소유스호스텔을 출발하여 오후 5시가 분고다케다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소유스호스텔을 출발하여 35km 라이딩을 하는 데 3시간 40분이 걸린 셈입니다.

만약 거꾸로 자전거를 타고 아소까지 가야 했다면 더 힘든 라이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 일행들은 후쿠오카로 입국하여 하카타역에서 전철을 타고 해발 500미터가 넘는 아소역까지 이동했기 때문에 아소 분지를 넘는 해발 800m 고개만 넘고 나서는 분코다케타역까지 쭉 내리막길 라이딩을 하였던 것입니다.

▲ 아소유스호스텔에서 35km를 달려 분코다케타역 도착 ⓒ 이윤기


다케다역에서 6시에 출발하는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타케다시를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다케다시는 2005년에 나오이리군을 비롯한 4개의 군, 정을 합쳐 다케다시로 통합하였다고 합니다. 2005년 행정 통합 전 다케타시는 인구 2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였다고 합니다. 오이타현에서 가장 인구가 작은 도시이고 큐슈에서 두 번째, 일본 전체에서도 인구 하위 10위권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다케타시는 큐슈 올레길 '오쿠분고' 코스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오쿠분고 코스는 분고오노시 기차역 JR아사지역에서 다케타시의 성하마을까지 걷는 코스인데 바로 다케타시에 일본의 전형적인 사찰과 산촌마을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된 목조건물 ⓒ 이윤기


다케타시에 있는 아이젠도 절은 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으며 마을 전체는 에도 시대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에도시대의 건물들이 중앙 통로를 따라 쭉 이어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유후인(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곳) 같은 조용한 관광지였으며, 분코 다케타역 건너편 중앙로에는 에도 시대의 건물들이 여전히 상가 건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 에도 시대 모습을 간직한 시가지 건물들 ⓒ 이윤기


오후 5시쯤 되어 자전거를 타고 다케타 시가지를 둘러보았는데,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기 위하여 정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마침 시가지 한 복판으로 들어서자마자 정각 오후 5시를 알리는 종이 울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돌기둥에 매달린 일본스럽지 않은 유럽풍의 종이 있는데, 마침 저 앞을 딱 지날 무렵 종이 울리더군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스피커를 틀어놓은 것이 아니라 돌기둥에 매달린 종들이 흔들리면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었습니다.

▲ 오후 5시 정각, 음악을 연주하던 종 ⓒ 이윤기


최근에는 제주에서 벤치마킹한 큐슈 올레길 오쿠분코 코스로 주목받으면서 적지 않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가 되었지만, 에도 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고도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도시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데는 30~40분이면 족하였습니다. 시가지를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분코다케타 역으로 돌아와서 하천을 따라 시가지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다 합쳐봐야 1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철을 타고 오이타로 가야하는 차 시간 때문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이곳저곳 좀 더 자세히 둘러보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었습니다. 다케타시가지를 자전거로 둘러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곳은 바로 '역사자료관'과 '도서관'이었습니다.

▲ 다케타시 역사자료관 ⓒ 이윤기


인구 2만도 안 되는 작은 도시에 '역사자료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그 규모도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들이 시립박물관 같은 것은 만들어 놓아도, 도시의 역사와 기록자료를 보관하는 자료관을 만드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일본의 작은 도시에 마을의 역사를 모아 놓은 '역사자료관'이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더군요.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내부를 둘러볼 수 없었던 것도 아쉬움이었습니다.

조용한 산촌 마을은 자연환경도 잘 보존되어 있는지 마을 한 켠에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안내판도 있었습니다.

▲ 반딧불이를 알리는 안내판 ⓒ 이윤기


일본 자전거 여행, 둘째 날은 아침 일찍 아소산 라이딩을 하고 오후에는 다케타시까지 라이딩을 하였습니다. 이날 하루에 대략 66km 정도 라이딩을 하였네요. 분코다케타역에서 전철을 타고 오이타역까지 이동하였습니다.

둘째 날도 전철을 타고 오이타역까지 이동하였기 때문에 어김없이 자전거를 분해하여 가방에 담고 어께에 메야 했습니다. 첫 날 여러 번 자전거를 분해하였기 때문에 자전거를 분해하여 가방에 담는 데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분코다케타역 앞에서 자전거를 분해하여 가방에 완전히 담는 시간을 재보니 6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날은 오이타역 바로 앞에 있는 전형적인 일본의 비지니스호텔에 묵었는데, 침대 세 개가 놓인 방에는 분해하여 가방에 담아놓은 자전거조차 세워놓을 공간이 없어서 호텔 복도 구석에 자전거를 쌓아놓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역 근처에 있는 호텔이어서 주변에 식당과 상점들이 많아서 늦은 시간에도 식사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자전거 여행 이틀째, 여행사가 진행하지 않는 프로그램의 장점일까요? 당초 계획은 그때그때 사정에 맞춰 바뀌지만 대중교통인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탓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일본 숙소와 일본 출입국만 빼고는 대부분 그때 그때 사정에 따라 바뀌었습니다. 숙도 도착 시간에 맞추어 라이딩 거리가 줄어들고, 줄어든 라이딩 거리만큼 전철을 타고 이동하였습니다.

첫 날부터 둘째 날까지 대부분의 시간계획은 모두 바뀌었습니다. 그런 자유로움이 만들어내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더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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