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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설움' 없는 나라, 어떻게 만들까

[주장] 부동산은 투기의 관점이 아니라 살림살이의 관점으로 봐야

등록|2012.11.14 16:24 수정|2012.11.14 16:24

▲ 서울 용산 근처의 아파트단지 ⓒ 대전충남인권연대


지난 10월 말, 금융당국과 금융연구원은 한국은행·통계청이 실시한 가계금융조사를 토대로 '가계부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2011년을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480만3000가구 중 12%인 56만9000가구의 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60%를 초과했다. DSR은 배우자 및 자녀를 포함한 전체 가계 구성원의 세전 소득 가운데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카드대출 등 금융권 부채의 원리금을 상환하는 데 들어간 돈의 비율이다.

이 비율이 60%를 넘으면 사실상 생활 과정이 만성 적자에 시달리기 쉽다. 집 한 채를 사느라 빚을 내는 바람에 오히려 생활고를 겪는 것이 '하우스 푸어'인데, 약 57만 가구가 준(準)깡통주택을 소유한 채 실제로는 힘겹게 산다는 얘기다. 지역별로는 수도권(33만9000가구)이 가장 많았다. 게다가 10만 가구 정도는 현재의 집값이 대출받은 돈보다 낮아 집을 팔아도 빚도 못 갚는 이른바 '깡통주택' 소유자다. 이 10만 가구의 총부채만 해도 무려 47조 원을 넘는다.

일례로, 40대 중반의 A씨는 2008년에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로 2억3000만 원을 빌려 서울 마포에 중소형 아파트를 장만했다. 당시 6억 원대였던 아파트 가격은 현재 5억 원 초반대로 떨어졌다. "시세차익을 염두에 두고 투자했는데, 그간 나간 은행이자를 포함해 1억2000만 원 정도 손해를 봤다"며 "생활비가 부족해 신용대출로 메운다"고 할 정도다.

또 다른 경우도 있다. 50대 중반의 B씨는 2009년 서울 도봉구에 작은 연립주택 한 채를 샀다. 그간 모은 돈 3000만 원에 7000만 원 대출을 끼고 1억 원으로 마련한 집이었다. 그런데 올해 남편이 명예퇴직한 뒤에는 이자 내기도 버겁다. 김씨는 "1억 원짜리 집이 5000만 원까지 떨어졌으니 이젠 팔아도 빚을 다 못 갚는다"며 "집을 내놓아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할 지경이다.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지는 경우, 부실도 눈덩이처럼 더 늘어난다. 집값이 내리거나 소득이 주는 경우가 문제다. 집값이 20% 하락하면 깡통주택은 현재보다 4만6000가구 는다. 가계소득이 20%가 줄어도 3만5000가구가 새로 깡통주택이 된다. 집값과 소득이 함께 20%씩 줄어들면 깡통주택은 9만6000가구나 늘어난다. 현재의 거의 2배 수준이다.

이 경우 금융권의 부실도 현재 10조7000억 원에서 17조9000억 원으로 커진다. 한국이 가진 총부채(가계, 기업, 금융권,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314% 수준으로, 최근 재정위기로 곤란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와 같은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거품경제 붕괴도 초를 다투고 있다고 한다.

'하우스푸어' 문제 심각... 왜 빚을 내어 집을 사야 했을까

이 지점에서 몇 가지를 따져보자. 첫째, 왜 사람들은 무리해서 빚을 내어 집을 샀을까? 그것은 당연히도 시세차익이 있을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월급을 모아봐야 부자 되기는 힘들고 또 어느 이웃이 부동산 투자를 잘 해서 큰돈 벌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나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주거용이던 아파트가 투기용으로 변질되었다.

"저 산과 들과 강과 바위는 모두 우리의 형제자매들"이라 외쳤던 북미 인디언 시애틀 추장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겐 모두 사라지고 땅은 한갓 '부동산'에 불과하며 '한탕주의 돈벌이'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천문학적 빚을 내서라도 집 한 채 장만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는 법.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실업자가 급증했으며 '경제 대통령'이 통치하는 기간조차 경제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시장 할머니들조차 등을 다 돌려버렸다. 물가는 오르되, 부동산 시장은 포화 상태에서 '빈 집'이 급증했다. 소득은 줄고 집값이 폭락하니, 무리해서 집을 샀던 사람들은 한숨만 푹푹 쉰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줄만 알았지 내려갈 줄은 상상도 못한 어리석음 탓이다. 탐욕이 세상을 망친 셈이다.

둘째, 집이나 땅을 주거나 살림살이의 관점이 아니라 투기나 돈벌이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기본적으로 우리는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의 말처럼 토지, 노동, 화폐 등은 상품화하지 말아야 한다. 일례로, 중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는 집을 짓더라도 토지 자체는 사유화를 못하게 하고 다만 건물만 사적 소유나 매매가 가능하게 하고 있다.

독일 같은 경우는 토지와 건물의 사적 소유 및 매매는 가능하게 하되, 자가 주택의 경우 세금을 많이 매기기 때문에 굳이 자기 집을 살 필요가 없다. 더구나 월세로 사는 사람들의 권리를 철저히 보호하고 있어, 한국과 같은 '집 없는 이'의 서러움도 없다.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에도 투기하고픈 심리가 없다. 불행하게도 미국이나 캐나다 등 한국 교포들이 많이 사는 동네들에서는 한국인들 사이에 투기 열풍이 불면서 집값도 치솟는다고 한다. 제발, 사람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짓은 수출하지 않았으면 한다.

셋째, '하우스 푸어' 외에도 '워킹 푸어'나 '에듀 푸어'도 증가한다. '워킹 푸어'는 일하는 데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들이다. 대개 비정규직 또는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정규직이라도 중소 영세기업 소속이면 워킹 푸어가 되기도 쉽다.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워킹 푸어들이다. 그리고 '에듀 푸어'는 자식 교육을 위해 빚을 내거나 알바라도 뛰어야 하는 경우다. 사교육비, 대학 등록금, 영미권으로의 해외 유학 등이 돈을 많이 들게 하는 요인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소득을 증가시키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지출을 줄이는 방식이다. 후자는 주거, 교육, 의료, 노후 문제를 사회공공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 재원은 당연히 세금인데, 상후하박 식의 누진제를 실시하고 탈세와 누세를 철저히 포착하며 낭비성 지출을 없애면 충분하다.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삶의 구조를 만들면 개별 가구는 풍요롭게 살 여유가 생긴다. 반면 전자의 소득 증대 방식은 갈수록 일중독과 소비중독을 조장한다. 생활물가는 계속 오르고 벌고 벌어도 끝이 없다. 소득이 늘어봐야 '말짱 도루묵'이다.

이제부터라도 거품 경제, 투기 경제, 중독 경제의 길을 청산하고 내실 경제, 생활 경제, 만족 경제를 일궈야 한다. 돈벌이가 아니라 살림살이, 그것도 행복한 살림살이가 우리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돈벌이는 그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을 뿐이지 않던가. '경제 민주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는 순간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고려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입니다.
* 이 기사는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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