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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찍어준 인증샷... 내일 울산으로 와주세요

저는 오늘 저녁에도 '철탑'으로 갑니다

등록|2012.11.16 18:29 수정|2012.11.16 18:29

▲ 아들이 찍어준 철탑농성 30일차 인증샷! 전국에서 그날 많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울산으로, 울산 현대차 명촌 문 철탑농성장으로 집결! ⓒ 변창기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문 쪽엔 높은 철탑이 서너 개 정도 있습니다. 그중에 중간지점에 있는 철탑 30여 미터 위에 최병승, 천의봉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올라가 있습니다. 최씨는 대법원 판결 승소자이고 천씨는 현재 비정규직 노조 사무국장입니다. 두 비정규직 노동자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내렸는데도 진지하게 해결하려는 협상은 하지 않고 고립시키는 노무관리를 펼쳐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으로 올랐다고 합니다.

두 노동자는 현재 3가지를 현대차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불법파견 인정하라!
신규채용 중단하라!
정몽구 회장 구속하라!

11월 15일 목요일로 '철탑농성 30일차'를 맞았습니다. 저는 어지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철탑농성장에 들릅니다. 날이 갈수록 더 빨리 어두워지고 더 많이 추워집니다. 바닷가 근처고 허허벌판에 가까워서 강한 바람도 자주 불어옵니다. 높은 철탑 위는 더 춥고 더 강한 바람도 맞으며 버텨야 합니다.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 저도 환호했습니다

▲ 지난 10월 27일 비오는 가운데 방송국에서 철탑농성장 촬영중. ⓒ 변창기


현대차는 2004년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최병승씨는 하청업체 입사한 지 2년이 지난 후였고 노조활동을 이유로 해고되었습니다. 그 후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서 현대차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현대차는 김앤장이라는 유능한 법률사무소에 의뢰해서 최병승씨 소송에 맞대응했습니다. 고등법원 패소, 그리고 검사의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은 최병승씨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원을 절망케 했습니다. 저도 2000년 7월 초에 현대차 사내 하청업체에 들어가 일했고 노동부 불법파견 판정소식을 듣고 노조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던 때였습니다.

담당검사의 무혐의 처분은 저에게도 심한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게 2005년이었습니다. 최병승씨는 "이왕 시작한 거 갈 데까지 가보자"며 생계를 힘들게 이어가며 대법원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대법원 하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매우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곳이라 여깁니다. 최병승씨도 속으론 '이길 수 없겠다'고 여겼을 정도이니 그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현대차는 막대한 돈을 써서 유명한 변호사를 채용하여 대응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희망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헌데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절대로 노동자 편에 있지 않을 거 같다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뒤엎고 2010년 7월 22일 대법원 판사는 '현대차는 불법파견'이라고 판결 내린 것입니다. 현대차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통해 즉각 항소했으나 2012년 2월 23일 다시 한번 불법파견을 확인하는 최종판결을 내렸습니다.

최종판결이 나던 날 저도 대법원에 있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승소 당사자인 최병승씨는 그자리에 없었습니다. 현대차가 그를 2011년 12월 25일간 지속된 점거파업 주동자로 몰아 고소했고 검찰은 즉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최종판결이 있는 그날도 대법원에 나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수긍하겠다"던 현대차는 그 발표를 뒤집고 다시 행정소송을 진행했습니다. 불법파견 대법판결에 대해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버틸 수 있는 한 버티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었습니다. 온당치 못한 대기업 행위에 대해 저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그런 가운데 철탑에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살고 싶어서 철탑에 올라왔다"는 최병승씨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10년 일한 현대차에서 말 한마디로 해고당한 '그날'

▲ 철탑농성장에 걸려있는 현수막 중 하나 ⓒ 변창기


저는 2000년 7월 초 현대차 사내하청에 입사해서 일했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3월 중순경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그날 일은 저의 노동일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010년 2월 25일 오전 9시 30분에 업체장이 날 불러 정리해고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3월 14일까지 일할거라 함. 3월 15일 공사 들어가 2011년 2월까지 공장 합리화 공사 진행한다 함. 2011년 2월 후 자리나면 재취업 해준다 함. 여의치 못하면 사내 다른 업체라도 취업알선 해준다 함. 그도 안되면 외주업체 알선 해준다 했음.

그러나 2년 넘게 아무런 연락도 없습니다. 아니, 연락없는 게 당연합니다. 원청사인 현대차 노무팀에서 저를 블랙리스트 올려놓고 그 어느곳에도 취업하지 못하게 막아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1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생계가 막막해 아무 일이나 해야 할 입장에 처한 저는 교차로 보고 일자리를 찾던 중에 경주에 있는 한 부품업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업체가 저에게 시킨 일은 현대차 사내 공장에 들어가 부품을 정리해놓는 일이라 했습니다. 3차 하청업체여서 월급은 적었지만 더운밥 찬밥 따질 상황이 아닌지라 뭘 시키든지 하겠다 했습니다. 시원해서 좋다며 업자는 서류를 준비해서 현대차 울산공장 문으로 오라 했습니다. 서류 준비해 오라는 곳으로 가서 기다렸습니다. 경비들이 힐끔힐끔 저를 보았습니다만 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업자가 경주에서 트럭을 몰고 왔습니다. 서류를 주며 인사를 하니 그 업자는 서류를 들고 경비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업자는 경비실에서 나오며 "거 이상하네요. 변창기씨는 출입할 수가 없다네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경비에게 항의했지만 경비는 "출입 못하는 이유는 변창기씨가 더 잘 알 것 아니냐"며 밀어냈습니다.

철탑농성만이 '희망'... 오늘 저녁에도 철탑으로 갑니다

▲ 17일 토요일 오후부터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문 근처 철탑농성장에서 제 3차 포위의 날이 진행됩니다. ⓒ 변창기


저는 생각할수록 억울해집니다. 불법고용으로 노동착취 당해온 것도 억울하고, 10년 비정규직 다니다 정리해고 당한 것도 억울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상황도 억울합니다. 저는 철탑농성이 저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래서 매일 저녁 일용직 일 마치고 철탑농성장에 가는 일이 힘들지만 그래도 가봅니다.

철탑농성이 저에겐 희망이고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답을 줄 수 있는 곳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철탑의 승리는 곧 저의 승리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요즘 저는 그 어떤 일보다 철탑농성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17일. 저는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문 쪽 철탑농성장에 가서 밤새우려 합니다.

철탑농성 30일째였던 지난 15일은 1년 전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농성을 시작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났어도 손배가압류, 징계해고, 폭력이나 일삼는 현대차에 맞서 10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1공장의 한 라인을 점거한 농성입니다. "25일간 진행되는 동안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했다"고 철탑에 올라 있는 천의봉 사무국장이 말했습니다.

날이 저무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추위는 더해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매일 건강을 물어봅니다. 매일 저녁 철탑 아래에서 열리는 집회에는 전국에서 참석하기도 하고 농성 후원금도 보내줍니다. 매일 수백여 명의 노동자, 지역 주민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17일 토요일 오후부터는 '제3차 현대차 불법파견 중단 포위의 날' 집회를 연다고 합니다. 저는 포스터 한 장을 얻어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초등학생 5학년인 아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습니다. 인증샷을 찍어올리는 이유는 그날 더 많은 분들이 울산으로 달려와 함께해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날 많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이 오시고 사회적으로 더 많이 관심을 가진다면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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