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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시민불복종을 선언했나?

강정에서 몸으로 헌법을 배우다

등록|2012.11.21 14:16 수정|2012.11.21 14:16

▲ 제주해군기지 공사를 위해 강정 앞바다에 투하된 아파트 8층 높이인 약 20미터에 무게만 1개당 8800톤이 나가는 케이슨이 태풍 볼라벤과 덴빈에 의해 7개 모두 파손됐다. 이 가운데 2개는 유실됐다. ⓒ 강정마을회 제공


해군은 지난달 25일부터 경찰력을 동원하여 24시간 공사를 강행하기 시작했고 이를 저지하려는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 경찰과 하루에도 수십 차례 대치하면서 강정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현장소식이 실시간으로 올라왔고 그것을 보는 제 마음은 납덩이가 짓누르듯 무거워져만 갔습니다.

특히 이영찬 신부님의 구속 소식에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언젠가 이영찬 신부님은 제게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차분한 어조로 말씀을 해줘서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신부님이 '영어의 몸(감옥에 갇히다)'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면서 시종일관 합법운동을 주장해 왔습니다. 작년 9월 2일 천 명이 넘는 경찰력이 강정마을을 침탈했을 때도 욕먹을 각오를 하고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에게 합법투쟁을 호소한 적도 있습니다.

법률가가 법 어기면서까지 반대운동 할 수는 없다는 신념 때문에

물론 공사현장에서 온몸으로 공사를 저지하다 고착은 물론 체포연행과 구속까지 당하는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볼 때마다 저 역시 함께 행동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되는 행위가 되는데 법률가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반대운동을 할 수는 없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반대운동을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합법운동에 대한 회의가 커졌습니다. 강정현장에서는 불의가 판을 치고 있으나 이를 저지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변호사이자 로스쿨 교수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절망할 뿐이었습니다.

작년에 해군은 여성 평화활동가를 폭행했고, 대학생들도 수차례 폭행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로인해 처벌을 받은 군인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작년 가을에는 송강호 박사가 기도하러 구럼비 바위에 들어가다가 바다 한 가운데서 해군의 특수부대(SSU) 대원들에게 폭행과 물고문을 당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하고 고문하는 것은 전쟁 때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 강정 주민들과 제주지역 시민단체들은 격분하여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형사 고발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해야 할 경찰은 해군과 공사업체의 용역으로 전락하여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법 체포·연행을 일삼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심한 폭행도 있었고, 평화활동가들은 이가 깨지고 턱이 찢어지는 등 심한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평화활동가들이 그 불법성을 울부짖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거나 검찰에 고발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강정마을은 인권의 사각지대로 전락했다는 사실만 절감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해군과 공사업체는 공사하면서 건설기술관리법위반, 환경영향평가 협의사항 위반 등 온갖 불법·탈법을 밥 먹듯이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도지사는 솜방망이 제재만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에 의해 총리실이 제주해군기지 관련 크루즈 선박 입출항에 관한 2차 시뮬레이션 검증 시 진실을 은폐하고 국민을 기만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지난 여름 태풍 때 케이슨이 모두 파손된 이유가 부실공사 때문이라는 것이 공사장 인부들에 의해 폭로되었음에도 진상규명이나 책임추궁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공사는 계속 강행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강정은 무법천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합법운동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이런 상황에서 합법운동이라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외면하기에는 양심의 가책이 너무 컸습니다. 법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며 수수방관하기에는 강정의 상황이 너무 절박했습니다.

결국 물질적으로나마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돕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지난 10월 31일 수요일 저녁 여성평화활동가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활동가는 공사현장에서 온몸으로 공사를 막다 경찰에 의해 고착 당하는 생활을 매일 되풀이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활동가에게 뭔가 물질적으로 도울 일이 없느냐고 묻자 그 활동가는 그보다는 법 공부를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은 법을 몰라 당하는 것 같다며 만일 법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경찰의 불법 고착도 막을 수 있고 불법공사도 저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활동가와 헤어지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그 활동가에게 법적 조언을 한다면 공사현장에서 몸으로 공사를 막는 행위는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가 있으니 더이상 그런 행위를 하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 조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활동가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행위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저 역시 그 활동가의 행위를 조금이라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격려의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활동가에게 당신은 지금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니 그만 두라고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문득 강정현장은 실정법과 양심의 법이 충돌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비록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실정법을 위반하고 있을지는 모르나 그 보다 상위의 법인 양심의 법, 정의의 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떠오른 단어가 '시민불복종'이었습니다. 강정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그동안 시민불복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음이 몹시 심란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겁하게 외면할 것이냐, 아니면 용기 있게 저항할 것이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때 떠오른 단어가 '시민불복종'이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떠올랐습니다. 시민불복종운동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인도를 독립시킨 간디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간디에 관한 글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그 중 이상수 교수가 쓴 "간디의 시민불복종"이라는 글이 제일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특히 "예컨대, 만약 우리 사회에 어떤 사람이 있어, 권력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신 그리고 진리정신이 충만한 채로, 시민불복종에 따르는 모든 희생과 고통을 불사하면서, 어떤 특정 법이 문제가 있으며 개선해야 한다고 온몸으로 호소할 때, 누가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구절이 제 가슴이 꽂혔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민불복종을 선언하려고 하니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족에 대한 걱정이 크게 들었습니다. "만일 내가 잘못되면 아내와 두 아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불안감이 저를 주저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몸만 건강하다면 어떻게든 가족을 부양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려놓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집착을 다 내려놓을 때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간디를 읽었습니다.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이 모든 일을 감수할 만큼 충분한 힘이 생겼음을 확신했을 때에야 시민불복종을 시작할 수 있다."

간디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겁에 질려 나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고 가버린다 해도 나는 결코 시민불복종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저는 제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너는 간디처럼 할 수 있는가?"

간디는 위대한 성자입니다. 저는 간디의 온전한 삶을 도저히 따라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간디의 용기만큼은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고민 끝에 양심의 소리에 따르기로 결심이 섰습니다. 곧장 강정으로 가서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에게 제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고권일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조직적으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며 한번 시민불복종운동을 조직해 보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토요일에 관련 단체들끼리 회의를 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고권일 위원장의 제안이 일리가 있다 생각하여 승낙한 후 토요일 저녁 강정마을회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회의는 생각보다 지지부진했습니다. 이러다가 시민불복종운동이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시민불복종운동을 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양심의 소리에 따르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조직적으로 시작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저 혼자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강정주민들, 평화활동가들과 함께 공사장 정문을 지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침 일요일은 공사가 없다고 하므로 월요일인 12일 오전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일요일에는 책상 앞에 차분하게 앉아 시민불복종의 정당화 요건을 검토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법률가인데 무작정 법을 어기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판례에 의하면 시민불복종이 정당행위로 인정받아 무죄가 되기 위해서는 ① 행위의 동기와 목적의 정당성, ②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③ 보호이익과 침해이익의 법익균형성, ④ 긴급성, ⑤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을 갖춰야 합니다. 저는 위 5가지 요건을 제 경우에 비춰 하나하나 따져 보았습니다.

첫째, 제가 시민불복종을 하는 동기나 목적은 양심의 소리에 따라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여 정의로운 법을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권력에 의해 침탈된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동기나 목적은 정당합니다.

둘째, 저는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정신에 입각한 시민불복종의 3대 실천원칙인 비폭력, 사람존중, 자기수난을 그대로 따를 생각입니다. 따라서 그 수단이나 방법도 상당합니다.

셋째, 저는 시민불복종을 통해 헌법의 최고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고자 합니다. 그로 인해 침해되는 이익은 공사 지연에 따른 금전적 손실 정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보호이익이 침해이익보다 월등히 우월합니다.

넷째, 정부와 해군이 공사 강행을 몸으로라도 막지 않으면 공사가 계속되어 훗날 제주해군기지사업이 철회되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것입니다. 따라서 긴급성도 인정됩니다.

다섯째, 정부와 해군의 공사 강행을 막을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강정에서 법은 강자의 도구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몸으로 막는 것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습니다. 보충성 역시 인정됩니다.

그렇다면 제가 하고자 하는 시민불복종은 무죄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분명 저와 다르게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저는 업무방해죄로 기소될 것이고 법정에서 무죄투쟁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일요일 밤에는 잠을 거의 설쳤습니다. 긴장이 지나쳤는지 월요일 아침에는 두통까지 생겼습니다. 약국에 가서 타이레놀을 사먹고 차를 몰고 강정으로 갔습니다. 공사장 정문 앞에서 "시민불복종은 정의로운 법을 세우는 몸짓입니다"라는 글귀가 써진 피켓을 들고 서 있었는데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경찰들이 다가왔습니다. 경찰들은 저를 둘러싼 후 도로 옆으로 이동시키고 고착했습니다. 월요일 하루 동안 그런 식으로 일곱 번이나 고착을 당했습니다. 경찰들은 또한 스크럼을 짠 평화활동가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고착했는데 그 과정에서 들리는 여성평화활동가들의 비명소리가 제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공사장 정문 앞에서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인권이 유린되는 강정의 현실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강단에서 헌법을 가르쳐왔다. 그런데 지금 나는 몸으로 헌법을 배우고 있구나."

지난 19일에는 검증위원회에 참여했던 교수의 증언을 통해 제주해군기지 관련 크루즈 선박 입출항에 관한 2차 시뮬레이션 검증이 허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장하나 의원의 의혹제기가 사실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결국 정부는 제주해군기지가 민군복합관광미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국민을 속여 왔던 것입니다.

문득 공자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공자는 정치에 있어 중요한 것은 안보와 경제, 그리고 백성의 신뢰인데 그 중 백성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해대니 누가 정부를 믿을 수 있을지 걱정이 큽니다. 정부는 대한민국 공동체를 뿌리 채 흔드는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갖 불법과 탈법을 일삼고 국민을 속이기까지 하면서 강행되는 제주해군기지 사업에 저항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저는 민주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도 공사현장에서 수난을 겪고 있는 강정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을 떠올리며 다시금 다짐을 해 봅니다. 해군기지 공사가 중단되는 그날까지 그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시민불복종운동을 계속 해나갈 것을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주지역 인터넷 신문에도 기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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