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만져주니 좋든?" 성추행범을 응징하다
[나의 황당 해외여행기] 연수차 갔던 필리핀서 재판까지 경험했어요
▲ 필리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정집 ⓒ 김다솜
2011년엔 두 번의 여름이 있었다. 겨울방학 때 필리핀 전공 연수를 떠나게 된 것이다. 내가 가게 된 곳은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에 위치한 다바오 시티(Davao City)였다. 여행자 보험을 신청하기 위해 보험사를 찾았다.
"여행 위험 지역에는 왜 가세요?"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 내가 연수를 가게 된 민다나오 섬은 필리핀 정부와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연수비용은 이미 지불한 상태였다. 학교에서 설마 위험한 곳에 연수를 보낼까 자기위안을 했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불안감을 안고 두 번째 해외여행 길에 올랐다.
도착한 지 이틀이 겨우 지났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다바오 시티는 안전했다. 다바오 시티는 무슬림 반군이 있는 곳과 차로 16~20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이 꼽은 살기 좋은 도시 1위에도 선정된 곳이란 소리를 들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밤바다 보러 나선 길, 골목에서 낯선 손이...
▲ 펜트하우스 옥상에서 바라본 풍경. 바로 앞 해변에 가려다 봉변을 당했다. ⓒ 김다솜
나는 모험심으로 무장한 채 지도 한 장만 달랑 들고 다바오 시티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모험심이라 부르던 그 마음이 엄청난 일을 부를 줄은 이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머무르게 된 곳은 해변가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였는데, 풍경이 일품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다음 날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마음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후 10시. 나는 룸메이트 친구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해리야. 해변가에 누워서 별 보면 기분이 어떻겠노."
"내는 안 갈란다. 니 트라이시클(필리핀의 대중 교통 수단) 아저씨들이 우리 쳐다보는 눈빛 못 봤나." (필리핀 사람들은 피부가 까매서, 한국 사람처럼 하얀 피부의 동양인을 무척 좋아한다.)
"개안타. 내 통뼈다."
그렇게 룸메이트 친구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펜트하우스에서 해변까지는 걸어서 7분 정도 걸렸다. 해변가로 가려면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만 했다. 시커먼 골목길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벽에 붙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만졌다. 여자의 직감은 무섭다. 나는 순전히 감에 의존해 놈(?)을 향해 발길질을 해댔다.
나는 화가 나서 그 녀석에게 한국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그 녀석의 목덜미를 잡고 밝은 곳으로 끌고 나왔다. 앳된 얼굴이었다. 정수리를 기준으로 한 쪽은 검은색, 한 쪽은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꼬질꼬질한 농구복은 만지기도 싫었다. 그 녀석 뒤에는 더 무섭게 생긴 녀석들이 있었다. 아마도 친구들인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다짜고짜 때렸다. 내 주먹이 솜주먹인가. 내가 때리고 있는데도 그 녀석은 안 아프다는 듯이 실실 웃고 있었다. 그 녀석은 웃으면서 친구들과 어두운 곳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내가 말한 한국 욕을 따라 하면서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쫓아가고 싶었지만, 무서웠다.
내가 아는 영어로 된 욕을 총동원해서 그 녀석의 뒤통수에 날렸다. 점점 녀석들의 웃음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계속 씩씩 거리고 있었다. 짧은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같이 밖에 나온 룸메이트 친구는 "무슨 일이냐"고 계속 되물었다. 나는 분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필리핀의 대중교통 수단인 트라이시클 ⓒ 김다솜
주변에 있던 필리핀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국민성을 지니고 있다. 화가 나도 소리 지르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나는 이내 정신을 차려 필리핀 사람에게 정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내 엉덩이를 만졌어요. 저 사람 이름이 뭐죠?"
그제서야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은 그 녀석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곧장 펜트하우스로 달려 나가 니키타를 찾기 시작했다. 니키타는 펜트하우스 관리인으로 나와 절친한 친구였다. 니키타에게 상황을 이야기 하고, 그 녀석의 외모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니키타는 단번에 그의 이름은 "조말"이라고 말했다. "꼬질꼬질한 농구복은 조말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말했다.
"조말은 이 동네에서도 악명이 높아. 건들지 않는 게 좋아. 칼부림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야. 네가 그래도 경찰서에 신고를 하겠다면 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앞으로는 밤에 절대 나가지 말고, 문단속에 신경 쓰도록 해."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분했다. 비행기를 4시간이나 타고 온 이곳에서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결국, 나는 조말을 경찰에 신고하기로 마음 먹었다.
경찰서에 온 조말 엄마의 한마디 "엉덩이 만져줘서 좋든?"
▲ 필리핀에서 물심양면 나를 도왔던 니키타 ⓒ 김다솜
필리핀은 행정 구역이 작은 단위까지 쪼개져 있다. 바랑가이는 몇 백 가구에서 몇 천 가구까지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긴장한 얼굴로 바랑가이에 앉아 조서를 작성했다.
"걱정하지마. 바랑가이 캡틴은 나하고 친한 친구야. 바랑가이 캡틴이 선거 운동할 때 내가 적극적으로 유세에 나섰다니까. 내가 말하면 뭐든지 들어줄 거야."
니키타의 말에 마음이 놓였다. 바랑가이 캡틴은 멋진 콧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앞니에는 금니가 반짝거렸다.
나와 룸메이트 해리는 손짓 발짓으로 바랑가이 캡틴에게 조말의 나쁜 짓을 낱낱이 고했다. 알고 보니 조말은 전과가 있었다. 외국인 성추행은 기본이요. 주민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있어 바랑가이의 주요 인물이었다. 그런 조말이 18살이라는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바랑가이 캡틴은 "곧 해결해주마"라며 든든하게 말했다.
필리핀에서 산과 해변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가정 형편이 어렵다. 그래서 기본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나는 경찰서에 갈 때부터 고소할 생각이 없었다. 조말의 사과만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바랑가이에서는 조말에게 매주 소환장을 보냈지만, 그는 답이 없었다. 어느덧 2주가 지났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일주일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나는 조말의 보복이 두려워 밖에도 제대로 못 나가고 펜트하우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바랑가이에서 연락이 왔다. 조말의 엄마가 대신 찾아 왔다는 것이다.
아들이 성추행을 저질렀다면 보통의 엄마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무릎을 꿇고 "선처를 베풀어 달라"며 울었을 것이다. 나 또한 조말의 엄마를 만나기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괜히 두려웠다. 조말 엄마가 사과한다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말의 엄마는 내 예상과 달랐다. 팔짱을 끼고 앉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웃었다. 조말 엄마는 "조말이 엉덩이 만져주니 좋았냐"고 물었다. 나는 "지금 장난하냐"며 대꾸했다. 당장 조말을 데려오라고 바랑가이 캡틴한테 떼를 썼다.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한마디에 '상황 역전'
▲ 필리핀의 라이브 클럽. 조말과의 일이 있기 전만 해도 밤마다 놀러 다니기 바빴다. ⓒ 김다솜
나는 영어 회화를 못 한다. 1학년 때 필수 교양이었던 영어 회화는 F를 받았다. 그 이후로 영어 회화 재수강을 2번이나 했다. 물론 졸업을 앞둔 이번 학기도 영어 회화는 재수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만큼은 영어가 술술 나왔다. 물론 저렇게 정확한 의미를 담아 이야기하진 않았을 거다.
"필리핀은 법치 국가 아니에요? 더군다나 다바오 시티 시장이 여자라면서요? 여자한테 이런 수치심을 느끼게 해놓고 그냥 넘어가는 게 말이 되나요?"
결국, 바랑가이 캡틴은 조말을 잡아 왔다. 감옥에 보내기 전 작은 재판이 열렸다. 세 명의 재판관이 들어왔다. 필리핀의 사법 체계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바랑가이에서 열린 재판은 고소 직전의 단계인 것 같았다. 이윽고 조말도 나타났다. 조말과 조말의 엄마는 나란히 앉아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갔다.
"근데 당신은 일주일 뒤에 한국에 돌아가야 하지 않나. 조말을 고소하려면 한 달이 걸린다. 당신은 조말을 고소 못하는 상황이다."
아. 재판관의 말을 듣고서야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갔다. 조말과 조말의 엄마는 내가 고소를 못 하는 상황에 있는 걸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소환에도 불응했고, 나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조말을 혼내줄 수 있을까.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조말을 고소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순간 조말과 조말 엄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말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조말의 엄마는 나에게 "Sorry"를 연발했다. 내가 고소를 하게 된다면 조말에게는 최소 6개월의 형이 내려진다. 조말이 소환에 불응한 점, 무례한 태도 등을 감안한다면 형량은 언제든지 더 늘어날 수 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Kneeling!"
나는 조말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라"고 말했다. 조말은 쭈뼛 쭈뼛 서 있기만 했다. 다시 한번 "Kneeling!"을 외쳤다. 조말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조말이 정말 나에게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분해서인지 울기 시작했다. 아마도 후자일 거다. 조말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Sorry"라고 말했다. 나는 조말에게 한 차례 훈계하기 시작했다. 이 훈계는 전날 영어 사전을 뒤적여서 준비했던 말이었다.
"나는 22살이고, 너보다 4살 많은 누나거든? 니가 잘못 해놓고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 정말 나쁜 짓이야.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는 벌을 받게 돼있는 걸 알아야 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니 용서해줄게.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길 바라. 재판관님. 조말이 나이도 어리니 고소는 하지 않을 게요."
재판관들이 동시에 일어나 박수를 쳤다. 조말에게 악수를 건넸다. 눈물을 닦으며 조말은 내 손을 잡았다. 그 일이 있은 직후 나는 펜트하우스에 몽둥이를 두고 잘 정도로 예민해졌다. 사실 조말이 엄청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해코지를 할까 두려웠다. 다행히 나에게 조말의 보복은 없었다. 그 일로 끝났다. 나는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때는 커다란 점이었던 일이 지금에 와서는 작은 점이 되었다. 조말과의 일은 추억 아닌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쯤 조말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 두 달 동안 내가 묵었던 방. 매일밤 조말이 찾아올까봐 문단속을 철저히 했다. ⓒ 김다솜
덧붙이는 글
'나의 황당 해외여행기' 응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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